코르셋과 경쟁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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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르셋과 경쟁력
  • 박교연
  • 승인 2018.07.25 06:3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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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칼럼] 박교연 / '페이지터너’ 활동가

미용업계 사람들이 꼽는 부의 척도가 3가지 있다. 피부, 머리카락, 치아. 뒤집어 말하면 풍족하지 않으면 가장 늦게 관심 가는 것들이다. 자본주의에서 돈만큼 강한 권력은 없다. 그래서 부의 상징과도 같은 것들을 우리는 가지려 노력한다. 피부는 매끄럽게, 머리카락은 찰랑찰랑, 이는 고르고 하얗게. 화장은 포기해도 피부관리는 포기할 수 없고, 머리를 짧게는 잘라도 삭발할 수 없는 게 이 때문이다.
 
사실 권력의 이미지를 체화하려는 건 전혀 이상하지 않다. 하지만 문제는 이미지로 실질권력을 가질 수 없다는 거다. 특히 패션, 뷰티는 예전부터 여성에게 허락된 유일한 사치였다. 차라리 사들이는 게 금이면 좀 낫다. 금본위제가 폐지된 이후, 계속해서 화폐가치는 떨어지고 현물 가치는 올라가고 있으니까. 금은 영원히 투자가치가 있는 제1 금속일 거다. 하지만 나머지 것들은 시간에 따라 가치가 가변하는 것들이다. 게다가 패션업계는 빠르게 트렌드를 주도하며 1년 전 물건의 잔존가치를 낮춘다.
 
여성들이 패션, 뷰티에 돈을 날리는 동안, 남성들은 여윳돈으로 재테크를 시작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실질권력을 쥐기 위해 노력할 여유분이 남성에겐 있는 것이다. 그들은 과다하게 치장할 필요가 전혀 없으니까. 그렇기에 패션, 뷰티는 권력의 이미지일 뿐, 실질 권력이라고 볼 순 없다. 업계 종사자라면 모를까 이걸로 실질적인 이익과 영향력을 얻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왜 많은 여성은 패션, 뷰티에 수많은 시간과 돈을 쏟아 붓고 있을까? 이게 바로 현대판 코르셋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코르셋을 벗는다는 건 단순히 억압을 벗어난다는 의미가 아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시간과 돈을 버는 거다. 하지만 코르셋을 벗기란 정말 쉽지가 않다. 특히 코르셋에 대한 사회적인 압력이 너무 거세다. 대표적인 예로 미국 연방준비제도 이사회 의장인 ‘재닛 앨런’을 들 수 있다. 재닛 앨런은 스티브 잡스, 버락 오바마, 마크 저커버그처럼 단벌신사로 유명하다. 하지만 남성 지도자들의 간소한 옷차림이 카리스마로 여겨지는 것과 달리, 여성 지도자들의 간소한 옷차림은 조롱거리가 된다. 재닛 앨런이 부의장 시절 공식석상에 여러 번 같은 옷을 입고 등장하자, 미 정치전문지 ‘롤 콜’은 곧바로 “누구 재닛 앨런에게 옷 좀 빌려줄 사람?”이라는 기사(2013. 11. 14)를 썼다.
 
나는 색깔만 다른 똑같은 옷이 몇 벌 있다. 정말 바쁠 때는 버락 오바마의 “나는 먹는 것이나 입는 것에 대해 고민하고 싶지 않다. 이것 말고도 결정을 내려야할 사안이 너무 많다.”라는 말처럼 옷 고르는데 시간을 낼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성의 성상품화를 앞장서서 주도하는 기업들 때문에 여성은 자유롭게 탈-코르셋을 선택할 수가 없다. 설령 탈-코르셋에 대한 조롱을 감수한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일례로 CGV가 있다. CGV가 여성 직원에게 립스틱 색깔까지 강제한 건 매우 유명한 일화이다. 빨간 립스틱을 바르고 윤기가 없으면 립글로즈를 덧발라서 윤기를 만들어라. 피부는 생기 있게 화장하고, 눈썹은 명확하게 그리고, 스타킹은 무조건 커피색으로 입어라 등 CGV는 여성 직원에게 성상품화라고 밖에 볼 수 없는 것들을 복장규정이라는 말로 강요했다. 또한, 성상품화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면 ‘꼬질이 벌점’을 부과하여 인센티브 5백 원을 삭감했다. 노조에 따르면 영화관 아르바이트생 87%가 면접에서부터 노골적인 외모평가와 지적을 당했다고 하니 수준이 알만하다.
 
그런데 문제는, 여성에게 수치심과 모욕감마저 안겨주는 복장규정이 비단 CGV만의 일만이 아니라는 거다. 여성 뉴스 앵커가 안경을 썼다고 뉴스에 보도될 정도로, 뉴스 앵커뿐 아니라 많은 서비스직에서 여성에게 렌즈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 화장은 당연한 예의고. 통계를 보면 여성들이 치장에 소비하는 시간은 하루 평균 30분이 넘는다고 한다. 이건 무한경쟁사회에서 엄청난 손해다. 특히 화장과 렌즈를 경쟁력으로 삼아주기보단 기본적인 예의로 생각하는 사회에서 여성의 에너지와 시간은 인정도 못 받은 채 그냥 소진되고 만다.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휴식 대신에 매일같이 30분 이상의 시간과 돈을 투자하는 사회에서 여성 전체의 경쟁력은 낮아질 수 밖에 없다. 여자가 일 못한다는 편견은 강화되고, 외모뿐 아니라 일과 가정 모두를 돌봐야한다는 ‘슈퍼맘’에 대한 압박은 더욱 심해진다. 이 모든 게 코르셋이 가져오는 사회적인 효과다.
 
매일 화장하는 데에 드는 30분. 매달 화장품에 소비하는 최소한의 돈 10만 원. 이게 결코 적지 않은 비용이라는 걸 깨닫지 못한다면, 여성이 남성과 일터에서 동등한 경쟁력을 갖추는 건 요원한 일이 될 것이다. 패션과 뷰티라고 이름 붙여진 현대판 코르셋은 결코 개인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전체 여성을 뒤처지게 하는 강력한 억압이다. 그러기에 주체적인 코르셋, 립스틱 페미니즘은 결코 여성 해방의 돌파구가 될 수 없다. 코르셋은 반드시 없어져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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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천사 2018-07-26 09:17:14
잘 읽었습니다. 어렴풋하게 생각하고 있던 것들을 잘 정리하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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