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구'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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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구' 화이팅!
  • 이권형
  • 승인 2018.08.13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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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칼럼] 이권형 / 음악가


<영화 천하장사 마돈나, 2006년 개봉>


영화 <천하장사 마돈나>, 대표적인 남성 스포츠인 씨름과 80년대를 대표하는 여성 팝스타의 이름이 공존하는 제목이 어불성설 같다면, 이 영화의 주인공 ‘오동구(류덕환 분)’와 만나보길 권하고 싶다.
‘동구’는 아직 채 성인이 되지 못한 청소년이고, 몽정하는 자신의 몸이 슬퍼 우는 트랜스젠더이며, ‘그냥 살고 싶어서’ 일하는 노동자다. 또한 ‘동구’는 ‘씨름한다’. 인천시장배 고등학교 씨름대회 우승 장학금이 500만원이라는 말에, 원하는 몸을 갖기 위해, 수술비용을 마련하고자 씨름을 시작한다.
 
“이만기, 이봉걸, 오동구...” ‘동구’를 발굴한(?) 씨름부 감독(백윤식 분)은 걸출한 천하장사들의 이름 끝에 ‘오동구’를 추가하면서 한마디 던진다. “이름 괜찮은 것 같지 않니?”
 
이름에도 노골적으로 드러나듯, 이 영화의 무대는 인천 동구, 동인천 일대. ‘동구’가 항만에서 노동하는 첫 장면부터 동구가 가진 노동자의 정체성이 나타난다. 실제 동구 지역에 여성노동운동의 산실 동일방직 인천공장, 그 자체로 존재하면서도 서울에 인접함으로서 부각되는 경계적인 자아. 몇 가지만 떠올려도, 여러 마이너리티 정체성을 한 몸에 체화한 ‘동구’라는 캐릭터가 영화의 배경과 어떤 연결이 있는지 생각해볼 만하다.
 
그런데 왜 하필 씨름일까. 인천 배경에 씨름선수 캐릭터가 나오는 작품이 <천하장사 마돈나>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영화 개봉에 머지않아 출판된 조혁신 작가의 소설 <뒤집기 한판>의 표제작 역시 인천 동구 송림동과 남구의 원도심 일대가 배경이며, 주안북초등학교 씨름부 코치 ‘강남구’가 등장한다. 2000년대 중반, 하필 인천 원도심을 배경으로 씨름을 소재 삼는 작품이 나란히 등장했단 사실은 이것이 과연 어떤 조화일까 생각하게 만든다.
 
2003년, 최홍만이 천하장사에 오르고 ‘테크노 골리앗’이 되는 광경이 내가 씨름 중계를 본 마지막 기억이다. 그 시기를 기점으로 씨름판에 이만기, 이봉걸 시절과 같은 황금기가 있었던 것 같지는 않다. 2006년에 <천하장사 마돈나>가 개봉했고, <뒤집기 한판>이 2007년 출판 됐으니 그때 쯤엔 이미 씨름은 소위 ‘한물간’ 스포츠로 평가받을 무렵인 거다.
 
“뒤집기는요? 뒤집기도 진짜로 열심히 하면 할 수 있어요?” <천하장사 마돈나> ‘동구’의 대사. ‘동구’에겐 뒤집기가 간절했다. 아버지로부터 독립하기 위한, 돈을 벌기 위한,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고 인정받기 위한 절치부심의 ‘한판’. 그 누가 한물갔다 해도 씨름의 백미 ‘뒤집기 한판’이라는 묘미가 사라지는 건 아니란 말이다.
확장되는 신도시와 비교되며 옛날 동네 취급받는 인천 원도심이라는 공간적 배경과 한물간 스포츠인 씨름의 조합은 마이너리티들의 가슴 속에 ‘뒤집기 한판’이라는 카타르시스에 대한 기대를 심어줄 수 있는 것이다.
 
한때는 나도 소위 ‘인천러’로 산다는 게, 어떻게든 수도권에 속한다는 일상적 존재의식과 그럼에도 운명적으로 부여되는 마이너리티의 굴레 사이의 경계에서 버티는 일이 아닐까 생각했다. 마음은 언제나 주류인데, 현실은 변방에서 분투 중인 스스로를 시시각각 마주해야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괴리의 틈에서 ‘뒤집기 한판’을 꿈꾸며 절치부심하는 게 인천이라는 마이너리티의 숙명이 아닐까했던 거다.
 
“네 힘이 너를 쓰러뜨린 거야, 씨름은 힘으로만 하는 게 아니다. 더 중요한 게 균형이야. 내 중심을 지키면서 상대방의 중심을 뺏는 거. 그게 씨름이다.”
 
꺼내 볼 때마다 꽂히는 대사가 다른 영화인데, 이번엔 이 대사가 마음에 걸린다. ‘동구’에게 먼저 필요한 건 통한의 절치부심이 아니라 자신의 중심을 알고 지킬 수 있는 균형감이었다는 조언. 내 중심을 잡고, 나를 알고, 나를 지키는 게 먼저니까.
 
마이너리티의 굴레에서, 수많은 변방에서 분투하는 모든 ‘동구’들이 당당하게 중심을 잡기를 바란다. 그리고 나 또한 하나의 변방으로서 언제나 그들의 아름다운 뒤집기를 응원하게 될 것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씨름의 백미는 뒤집기니까. ‘오동구’ 화이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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