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동영상에 갇힌 여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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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동영상에 갇힌 여자들
  • 박교연
  • 승인 2018.08.21 10: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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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칼럼] 박교연 / '페이지터너’ 활동가

영화 ‘룸’에서 조이는 가로 세로 3.5m 정도의 작은 방안에 갇혀 살아간다. 17살의 조이를 납치한 닉은 그 후 7년 동안 그녀를 감금한 채, 내킬 때마다 그녀를 강간하고 폭행했다. 심지어 그녀를 감금한 건 자신이면서 생존에 필요한 생필품을 가져다주는 걸 감사하라고 강요하기도 했다. 나는 7월 28일에 방영한 ‘그것이 알고 싶다’의 웹하드 불법동영상의 진실 편을 보면서 불현듯 조이가 생각났다. 불법동영상에 찍힌 여자들도 조이처럼 그곳에 갇혀있었다. 장소가 작은 방이냐, 불법동영상 속이냐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그녀들은 똑같이 남성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한 번도 원한 적 없는 공간에 갇혀있었다.
 
나는 왜 몰카 범죄가 집행유예밖에 처벌을 안 받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동전 100원, 200원에 수도 없이 피해자의 악몽이 사고 팔리는 건 이루어 말할 수 없이 끔찍한 일이다. 비참했던 한때가 누군가에겐 즐거움이라니! 이건 정말로 세상의 모든 악의를 경험하게 만든다. 그런데 불특정 익명의 가해자 수가 소라넷 때를 생각하면 못해도 600만, 일베를 생각하면 천 만이 넘는다. 길거리에서 지나쳐가는 사람 중에도, 회사에서 만나는 사람 중에도, 친구의 친구 중에도 가해자는 있다. 어디에나 있을 수 있는 가해자는 피해자의 일상을 망쳐놓는다. 심지어 가해자 중에는 닉처럼 가해 사실을 부끄러워하지도 않고, 대놓고 피해자에게 가해 사실을 들이밀며 사람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놈도 많다. 인터넷에 검색어 몇 개만 쳐도 피해자를 향한 2차 가해 글이 수두룩하게 뜨는 걸 볼 수 있다.
 
이런 심각한 몰카 범죄를 더 키우는 건 법원과 국가다. ‘한국의 범죄현상과 형사정책’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몰카 범죄자 중 90% 이상이 벌금형, 집행유예, 선고유예 등으로 풀려나고 있다고 한다. 덕분에 몰카 범죄는 2013년 이후 통계를 참조하여 비교해보면 꾸준히 평균 21%씩 증가하는 추세다. 그러기에 아직 자신의 일상이 포르노로 팔린 적 없다하더라도, 대한민국에 거주하는 여자라면 누구나 불법 동영상이 판치는 세상에 갇혀있다. 언제 어디서나 여자의 신체를 노리는 남자는 있고, 그걸 100원 200원에 즐거이 사보는 남자가 있다. 그리고 이런 남자들은 결코 일부분이라고 말할 수 없는 숫자다.
 
나는 현재 많은 수의 남자가 불법 성범죄 동영상에 중독됐다고 생각한다. 이를 영화 ‘돈 존’을 빌어 얘기해보겠다. 주인공 돈 존은 포르노에 중독된 남자다. 그에게 의미 있는 건 포르노뿐이다. 몸을 키우고 단장하는 것조차도 포르노를 위한 거다. 여자를 꼬시기 위해, 여자와 포르노의 한 장면을 재현하기 위해. 그의 엄청난 포르노 중독은 심지어 바바라를 만나 사랑에 빠져도 달라지지 않는다. 바바라가 그를 떠나도 마찬가지다. 영화를 보다보면 돈 존과 지금의 한국사회가 겹쳐 보인다. 물론 우리의 문제는 돈 존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지만, 여성을 성적으로 학대하고 소비하는 영상에 중독된 것만은 같다. 그리고 이 중독은 스스로 절제하고 반성할 수 없는 수준이다. 돈 존처럼 일생일대의 사랑을 잃는 정도가 아니라, 불법동영상에 중독되어 여자에게 폭력을 휘두르며 범죄자가 되고 싶을 정도로 강력한 중독이다.
 
정신분석학적으로도 중독은 치료하기 어렵다. 정신과 의사의 말에 따르면 포르노를 보면서 쾌락을 얻다보면, 쾌락이 뇌에 자극을 가해 보상회로 체계를 구성한다고 한다. 중독자는 지속적으로 쾌락을 얻기 위해 영상을 소비하고, 점차 무뎌지는 감각을 자극하기 위해 점점 더 자극적인 영상을 찾게 된다. 자극적인 영상의 최고 정점은 알다시피 몰카다. 실제 범죄 영상이자, 현실에서 피해자를 찾을 수 있는 몰카 영상은 스너프 필름과 그리 다르지 않다. 그리고 이걸로도 만족할 수 없는 사람은 돈 존이 직접 포르노를 재현하듯이 직접 몰카 영상을 찍는 주체가 되어 욕망을 충당한다. 그런데도 법원과 국가는 몇 년째 몰카 범죄에 솜방망이 처벌만을 내리고 있다. 범죄에 뛰어들기 전까지 소비해온 불법동영상의 수와 불법동영상에 중독된 수준을 생각해보면, 어디가 심각한 문제가 아니라는 건지 알 수가 없다.
 
현재 많은 수의 여자가 조그만 화면 안에 갇혀 살고 있다. 피해자가 느끼는 심리적 고통은 가로세로 3.5m 작은 방에 갇힌 조이와 별로 다르지 않다. 왜냐하면 두 공간의 목적은 모두 남자의 일그러진 범죄욕망을 충족시키는 데에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이가 결국 그 방을 탈출한 것처럼 우리도 결국엔 불법동영상을 탈출할 것이다. 정부가 손 놓고 있는 사이 150만 건의 불법동영상 피해가 발생했고, 이는 더 이상 좌시할 수 없는 피해다. 영화 ‘서프러제트’에서 에멀린 팽크허스트는 이렇게 말했다. “오십 년 동안, 우리는 여성 참정권을 획득하기 위해 조용히 노동을 해왔어요. 우린 조롱당하고, 구타당하고, 무시당해왔죠. 이제 우리는 깨달았어요. 행동과 희생이 필요하다는 사실을요. 우리에게 다른 대안은 없습니다. 이 정부에 반기를 드는 것 말고는요. 우리가 참정권을 얻기 위해 감옥에 가야 한다면, 여자의 몸이 아니라 이 정부의 창문이 부서지게 만드세요. 나는 이 모임과 영국의 모든 여성들이 반란군이 되길 원합니다. 나는 노예가 될 바에는 반란군이 되겠습니다.” 나 또한 기꺼이 노예가 될 바에는 반란군이 되겠다. 모든 여자가 불법동영상에 갇히지 않는 그 날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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