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성장시키는 아들과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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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성장시키는 아들과의 대화
  • 장현정
  • 승인 2018.09.12 07: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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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장현정 / 공감미술치료센터 상담팀장


어느 날부터 아들의 질문이 폭발했다.
 
모기는 나빠? 모기가 물면 아파? 죽어?
세균맨은 나빠? 세균맨은 우리를 무서워해?
상어는 나빠? 상어가 물면 죽어?
화산은 나빠? 화산이 폭발하면 죽어?
블랙홀은 나빠?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면 어떻게 돼?
 
이제 막 좋고 나쁨, 선과 악, 삶과 죽음이라는 주제에 흥미가 생긴 모양이었다. 프로이트(S. Freud)는 정신분석 이론에서 만 4~6세 무렵 초자아가 형성된다고 보았다. 초자아란 성격을 구성하는 한 요소로 도덕적 양심이나 이상을 의미한다. 초자아에 의해 인간의 공격적인 욕구나 파괴적인 본능이 통제되고 죄책감과 수치심을 느끼게 된다. 이때 아이들은 부모를 닮아가며 성역할을 배우고 부모의 권위에 대한 태도가 형성되며 초자아 또한 발달한다고 하였다. 그래서 이 무렵은 부모가 ‘훈육’을 통해 아이들의 행동을 바로잡는 과제를 부여받게 된다. 또한, 전래동화나 명작동화 등 권성징악의 권선징악의 결론이 나는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한다.
 
아이의 질문에 눈높이에 맞게 대답을 해주려다 보니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모기는 나쁘지, 돌돌이를 무니까"
라고 단순하게 대답을 했는데
 
"그럼 벌도 나빠?“
라는 질문이 꼬리를 물고 따라왔다.
 
그렇게 보니 인간의 입장에서는 모기가 무는 것이 싫겠지만, 모기의 입장에서는 먹고 살아야 할테고 또 모기는 애초에 누군가의 피를 빨도록 만들어졌기 때문이었다. 사람에게 불편함을 주고 사람에게 때론 피해를 준다고 해서 '나쁘다'고 말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과연 이 이야기를 아이에게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이 되었다.
 
“모기는 무서워?”
“엄마는 모기가 무섭지 않어”
“그럼 모기가 사람을 무서워해?”
 
잘 생각해보니 모기는 우리의 피를 빨아댈 뿐이지만, 우리는 모기를 눌러 죽이지 않은가. 그렇게 생각하면 모기가 사람을 훨씬 무서워할 것 같았다. 그럴 것 같다고 대답해 주었다. 모기의 마음을 내 어찌 알겠냐마는...
 
“세균맨은 나쁘지. 감기에 걸리게 하거든”
“그럼 유산균도 나빠? 유산균도 세균맨이야?”
아, 한방 먹었다.
“아, 그러네. 유산균처럼 좋은 세균맨도 있네. 나쁜 세균맨과 좋은 세균맨이 있네”
 
상어나 호랑이 같은 맹수들이 나쁜가? 그럼 토끼는 착해서 잡아먹히는 것일까? 토끼는 착한 동물이고 호랑이는 나쁜 동물일까? 아이는 착한 동물과 나쁜 동물에 대해 묻는다. 알고 있는 것도 이미 이야기 한 것도 묻는다. 묻고 또 묻는다.
 
제주도에 갔다가 화산에 대해 이야기 해주었다. 현무암을 보여주고 만장굴을 다녀와서 화산이 폭발해서 제주도가 생겼고 그 과정에서 일어난 일들을 이야기 해주었는데 아이가 물었다.
"화산은 나빠? 뜨러워? 만지면 어떻게돼? 죽어? 사라져?"
 
우주에 흥미가 생겨서 여러 행성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던 중 블랙홀을 알게 되었다. 그러자 바로 물었다.
"블랙홀은 나빠? 다 빨아들여? 사람도? 자동차도? 태양도? 죽어?"
 
참 어려운 질문들의 무더기였다.
아이와 이야기를 하면서 이 세상은 흑과 백 말고도 많은 색들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세상은 좋은 것과 나쁜 것 말고도 너무나 많은 현상들이 있음을. 생물들과 사물들은 존재하며 자신들의 특성에 맞게 살아갈 뿐이다. 화산이 폭발하고 블랙홀이 별을 삼키는 것은 그저 현상이고 세상에 있을 수 있는 일들이다. 좋다와 나쁘다로 판단할 수 없는, 판단하지 않는 것이 훨씬 좋을 여러 현상들 말이다.
 
인지심리학에서는 우리를 정말 힘들게 하는 것은 타인의 존재나 현상, 사건 때문이 아니라 그 사건에 대한 자신의 해석이나 판단이라고 설명한다. ‘나쁘다, 싫다’라고 판단하게 되면 부정적인 감정을 경험하고 부정적인 감정이 부정적인 행동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삶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이해하는 것이 우리에게는 더 큰 평안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아이와의 대화를 통해 배운다. 물론, 아이에게는 눈높이에 맞게 설명해주고 있다.
 
나는 오늘도 아이와의 대화를 위해 머리를 짜내고 있다. 어른들과의 대화보다 백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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