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라벨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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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라벨 하자
  • 이혜정
  • 승인 2018.10.02 0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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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칼럼] 이혜정 청소년창의문화터 미루 대표



이제 워라벨이라는 단어가 낯설지 않다. 일과 삶의 조화를 의미하는 것으로 ‘Work and Life Balance"를 의미한다. 그동안 우리 사회를 지배해왔던 개발과 성공, 효율과 돈 중심의 가치를 자성하고 삶의 충만함과 내적 성장에 초점을 맞추려는 새로운 삶의 양식 혹은 새로운 가치라고 볼 수 있다. 워라벨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마다 새로운 삶의 양식이 정말로 필요한 대상은 청소년들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래서 워라벨을 벤치마킹한 ‘스라벨’이라는 신조어는 어떨까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이 신조어가 사람들에게 오르내리고 있다. 정말로 반가운 일이다. 스라벨은 영어로 하면 ‘Study and Life Balance"의 준말로 공부와 삶의 균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어떤 이는 Study 대신 School을 사용하기도 하나 우리의 현실로 보면 Study가 더 정확한 표현이라 생각된다.

 

사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바쁜 사람이 바로 초중고 학생들이다. 그들에게 주어진 가장 큰 일과가 학업이라고 볼 때 학업을 마치고 하교 후에도 교과목 사교육부터 예체능 사교육까지 이 학원 저 학원으로 분주하게 움직여야 한다. 교육부와 통계청이 공동 실시한 '2017년 초·중·고 사교육비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17년 사교육비 총액은 약 18조6000억원,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27만1000원으로 최근 10년 만에 역대 최대 규모였다고 한다. 사교육 참여율도 70.5%로 전년(67.8%) 대비 2.7%포인트가 상승했고 초등학생은 82.3%, 중학생은 66.4%, 고등학생이 55.0%가 사교육을 받고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사교육을 받는 시간도 늘어 주당 사교육 참여시간은 6.1시간으로 매년 증가하고 있다. 심지어 2017년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이 실시한 ‘아동행복생활시간조사’에 따르면 한국 초등학생의 평일 휴식시간은 48분, 중학생 49분, 고등학생 50분이라고 한다. 대통령이 바뀌어도 진보교육감들이 대거 당선되어도 대한민국 초중고 학생들의 삶은 조금도 달라질 것이 없는 것이다.  

 

어른들에게 워라벨이 필요하다면 우리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스라벨이다. 우리 아이들에게도 학습과 삶의 조화와 균형이 필요하다. 불편한 물리적 환경과 엄격한 규율, 일방적인 전달로 이루어지는 전근대적 교육환경에서 이루어지는 정규교육, 이어지는 사교육, 학교와 학원 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각종 과제와 평가, 이어지는 자습 시간 등을 모두 합하면 사실 대한민국의 초중고생들은 최장의 학습 시간에 시달리고 있다. 그 뿐만이 아니다. 시험대비 특강에, 입시에 필요한 자원봉사 시간 채우기, 예체능 사교육과 각종 자격시험과 대회로 충분한 여가는 요원하다. 아이들에게 토요일과 일요일은 없다. ‘월화수목금금금’만 있을 뿐이다. 주 7일제 경쟁학습시스템,  측정 불가능한 공부시간으로 고통받고 있는 우리 아이들에게도 법정 학습시간의 제한이 필요하다. 공부의 잔업과 철야에 시달리고 있는 아이들에게 저녁이 있는 삶을 보장해야 한다. 주말이 있는 삶을 보장해야 한다. 공부감옥에 갇혀 있는 아이들에게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

 

이미 뇌과학에서 많은 부분 확인되었듯 뇌가 자기 기능을 최대화하기 필요한 것은 바로 마음을 주고받는 이야기와 놀이라고 한다. 아이들의 뇌를 연구하는 제이 기드(Jay Giedd)박사는 ‘어떻게 하면 똑똑한 아이들로 키울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누군가의 품에 안겨 이야기를 들었던 적이 언제였던가, 이야기는 힘이 쎄다, 응시가 뇌를 조각한다, Free Play“라고 대답했다. 인간의 뇌는 마음이 트인 사람과의 이야기를 통해 나 아닌 존재와 마음을 주고 받기를 좋아한다고 한다. 또한 응시는 지긋이 바라보는 것으로 대화할 때 눈맞춤과 얼굴표정이 뇌에 강력한 작용을 하는데 도파민이란 호르몬이 대량 방출돼서 뇌가 바뀐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자유스러운 놀이. 아이들에게 놀이는 본성이고 인간을 만드는 재료이다. 놀이는 육체도 발달시키고 사회적 기술과 뇌발달의 원천이 된다고 한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대거 당선된 진보교육감들이 무상교육과 같은 좋은 정책들을 추진하고 있다. 물론 사회의 기초선이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중요한 것들이다, 하지만 그것으로는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가 너무 고단하다. 공부감옥에 갇혀 19세기식 교육시스템 속에서 살아가기엔 세계가 너무 빠른 속도로 변화고 있다. 공부감옥에 갇힌 우리 아이들을 위해 교육부의 수장과 교육감, 전문가들이 정권이 바뀌어도 지속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교육정책의 큰 틀을 마련하길 바란다. 아이들의 행복을 염원하는 이 땅의 모든 부모들이여 아이들이 스라벨하게 하자. 아이의 눈을 응시하며 함께 수다를 떨고 아이들이 친구들과 맘껏 놀게 하자. 워라벨이 개인의 결정으로부터 시작되어 사회를 바꾸고 있듯, 어렵지만 스라벨을 결정해보자. 워라벨하려면 스라벨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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