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 속 페미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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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 속 페미니즘
  • 박교연
  • 승인 2018.10.23 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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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칼럼] 박교연 / '페이지터널' 활동가

“Many cultures value a person’s dignity over the truth. In Korea, the actually call it ‘KIBUN’.”
많은 문화권에선 진실보다 인간의 품위를 중요시한다. 한국에선 이를 ‘기분’이라 부른다.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 S03E02)
 
한국어에서 말하는 기분은 영어의 feeling이나 mood와는 차이가 있다. “맞는 말이지만 기분이 나쁘다.”이란 말에서 처럼, ‘기분’은 당사자의 자존심과 현재의 감정상태를 모두 포괄한다. 그래서 많은 상황에서 가치관이나 올바름을 뛰어넘어 권위자의 기분이 내키는 대로 일이 종결되는 걸 볼 수 있다. 게다가 이러한 ‘기분중심의 문화’는 한국 특유의 ‘좋은 게 좋은 거’란 정서와 잘 맞물려 돌아간다. 피해 당사자가 아무리 폐단을 이야기해도 말하는 내용이 청자의 기분을 훼손시키면 일이 진척되지 않는다. 청자는 기분이 상하면 일단 듣지를 않는다. 논리적인 설득도, 무수한 자료도 상한 기분 앞에서는 모두 무용지물이다. 실제로 ‘강남역 살인사건’이 여혐살인으로 논란이 됐을 때, 남성들의 지배적인 반응은 무관심도 분노도 아니었다. 여성들이 그동안 겪었던 피해사실을 쏟아내면서 울부짖든 말든 간에 남성들이 제일 많이 한 말은 “잠재적 범죄자로 몰아가는 게 몹시 기분이 나쁘다.”였다.
 
물론 페미니즘 운동을 하면서 항상 청자의 기분을 살필 수는 없다. 페미니즘은 모두를 위한 것이긴 하지만, 좋은 말로만 여성해방을 이룩할 순 없기에 페미니즘은 당연하게도 투쟁적 성격을 띤다. 하지만 모든 장소에서 페미니즘을 논할 때마다 투쟁의 언어를 사용할 수는 없다. 불특정 다수를 시청자로 삼는 대중매체라면 더 하다.
 
그렇다면 대중문화 속 페미니즘 콘텐츠는 어떻게 온건하게 페미니즘을 역설하고 있을까?
 
일단 페미니즘 콘텐츠라면 ‘벡델 테스트’를 통과해야한다. 무한도전처럼 남성만 득실득실한 프로그램에서 페미니즘을 논하는 것은 우습다. 여성이 충분한 분량을 가지고, 남성과 무관한 자기만의 이야기를 전개할 수 있는 게 가장 기본이다. 또한, 여성의 ‘도구적 사용’이 없어야한다. 성적대상화는 물론이거니와 여성의 도구적·기능적 사용은 여성을 부수적인 존재로 치부해버린다. 그동안 그 외의 사용을 찾기 힘들 정도로 여성은 극의 소모품이었다. 여성은 대부분 주인공의 어머니/남매/연인 등등의 역할을 맡아 극을 진행시키기 위한 장치로 사용되었다. 게다가 이러한 여성의 소모품화는 여성에게 차등적인 지위를 부여하는 것만큼이나 여성혐오를 자연스레 불러일으킨다. 상황에 진척시키는데 꼭 필요하지만 눈치 없는 역할은 다 여성의 몫이다. 대표적인 예로 주인공의 매력을 강조하기 위해 불필요하게 등장하는 악녀나, 사건의 긴장감을 고조시키기 위해 실수를 남발하는 여성 엑스트라가 있다. 영화 『베테랑(2015)』에서 장윤주가 맡은 실수투성이 형사 역할이 그렇다.
 
마지막으로 페미니즘 콘텐츠라면 당연히 페미니즘을 전달해야한다. 대단한 걸 말하는 게 아니다. 곳곳에 종양처럼 퍼져있는 가부장제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삶을 사는 여성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페미니즘이다. 페미니스트들이 영화 『고스트 버스타즈(2016)』나 여성 국무장관의 삶을 다룬 미드 『마담 세크리터리』에 열광하는 것도 본받을 만한 롤모델의 등장 때문이다. 2017년 드라마 『아버지가 이상해』에서 사이다 발언으로 화제를 끌었던 변혜영 역시 좋은 롤모델이다. 가부장제 아래에서 순응하기만 했던 여성들을 위해 변혜영은 매회 당차게 말했다. “양가 집안 행사는 합의 하에 합리적으로 행동한다. 정신적 육체적 외도 시 결혼관계는 즉시 종료한다. 그리고 살찌지 않는다. 나, 남자들이 결혼 후에 느슨해져서 배 나오는 거 싫다.”
 


이처럼 마블 영화에 나오는 우주적 영웅이 아니더라도 여성 롤모델의 등장은 많은 여성들에게 활력을 준다. 왜냐하면 이들은 여성에게 가부장제가 아닌 다른 삶을 제시하고, 실생활에서 여성의 목소리를 높이는 걸 독려하기 때문이다. 실생활 여성영웅들이 많이 등장했던 프로그램으로는 『WWYD (What Would You Do?)』가 있다.
 
WWYD는 미국 방송국 ABC에서 제작한 실험카메라(몰래카메라)로,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인종차별, 여성혐오, 성소수자 차별, 장애인 차별 등 민감한 소재의 문제가 발생했을 때 시민들이 어떻게 대처하는지를 방송하는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의 묘미는 미국 시민들, 특히 여성들이 부당한 상황에서 굴하지 않고 맞서 싸우는 걸 보는 것에 있다. 많은 에피소드에서 “While the men mostly stand down, the women stand up. 남자들이 대부분 물러서는 동안, 여자들은 맞서 싸운다.”라는 표현이 나온다. 이를 단적으로 잘 보여준 에피소드는 ‘다운증후군 장애인에게 욕설을 한다면?’란 에피소드인데, 여기서 한 여성분이 어떠한 각오로 자신이 불의에 맞서 싸웠는지에 대해서 얘기한다.
 
“You weren't afraid that he might turn on you?”
당신은 그가 당신을 공격할까봐 걱정되지 않았나요?
“When I get that angry, when it has to do with injustice, I really don't care. If I got punched out, I got punched out. It just doesn't matter.”
아까처럼 화가 나고 불의에 맞서 싸워야하는 상황일 때, 나는 그런 걸 신경 쓰지 않아요. 설령 내가 맞더라도 그냥 맞는 거예요. 그런 건 (행동하는데) 아무 상관없어요.
 
한국에서 여성이 부당한 상황에서 목소리 높이는 게 얼마나 어려운가를 생각해보면, 이러한 프로그램의 필요성은 더 두드러진다. 남혐유투버 갓건배를 향한 살해예고라던가, 불용시위에 염산테러를 예고했던 것 등 목소리를 높이는 여성을 향한 백래쉬(backlash)는 날이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이럴 때야말로 여성들에게 동기부여가 되고 연대감을 느낄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어야한다. 여성에게 영웅이 왜 필요한가에 대한 더 자세한 설명은 아래 『마담 세크리터리』의 S02E14 에피소드의 대화로 대신한다.
 
“You did give in to fear and weakness and that's how most of the worst stuff that human beings do to each other is allowed to happen. But here's thing, we all do it. I've done it.”
너는 두려움과 약함에 굴복했고, 그건 인간이 서로에게 최악의 일을 벌이도록 허용하는 원인이 된단다. 하지만 중요한 건 우린 다 그래. 나도 그래봤어.
“No, you haven't.”
아뇨, 아빠는 안 그랬어요.
“You think there haven't been times where I wish I'd say something or did something to stop something, when I knew it was wrong? That's why we need heroes. They inspire us, so that maybe next time, we dig a little deeper to find our best self. Even if it feels risky.”
너는 내가 잘못된 걸 알았을 때, 뭔가를 말했기를 또는 뭔가를 막았기를 바란 적이 없을 것 같니? 그게 바로 영웅이 필요한 이유야. 그들은 우리에게 영감을 줘서 (어쩌면 다음번에) 우리가 우리의 더 나은 모습을 발견할 수 있게 해준단다. 그게 설령 위험을 동반할지라도.
“I just want you to be proud of me.”
나는 그냥 아빠가 나를 자랑스러워하길 바랐어요.
“I am. I just want you to be proud of yourself.”
너는 내게 자랑스러워. 나는 그저 네가 너 자신을 자랑스러워하길 바랄 뿐이야.
 
영감을 주는 여성 롤 모델 혹은 영웅을 보여주는 것 외에도 ‘여성들의 삶을 심도 깊게 조명’하거나 ‘여성들의 유대관계’를 보여주는 모든 프로그램은 페미니즘적이다. 대표적인 예로는 『바그다드 카페(1987)』, 『델마와 루이스(1991)』, 『돌로레스 클레이븐(1994)』, 『디 아워스(2002)』 등이 있다.
 
『바그다드 카페(1987)』는 여성의 생활고와 결핍은 그 삶을 진정으로 이해한 다른 여성만이 충족시켜줄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허허벌판 황무지에서 믿고 의지할 건 남편이 아니라 또 다른 여성이다. 『델마와 루이스(1991)』에서는 더하다. 영화 속 모든 남성은 종류는 다르지만 육체적/정신적으로 여성을 착취한다. 그래서 영화를 보다보면 엿 같은 남성중심 사회에 반기를 던지는 델마와 루이스의 반란이 너무 기껍다. 이들의 유대관계 역시 여성에게 몹시 비인간적인 사회 속에서 유일하게 인류애를 담고 있다. 『돌로레스 클레이븐(1994)』의 명대사 “Sometimes being a bitch is all a woman has to hang onto. 때때로 쌍년이 되는 것은 여자가 매달릴 수 있는 모든 것이다.”는 가정폭력의 희생자가 또 다른 희생자에게 하는 조언으로 등장한다. 모든 사고가 우연은 아니지 않느냐는 암시가 한 여성의 삶을 구원한다. 마지막으로 『디 아워스(2002)』가 전하는 메시지 역시 슬프지만 강렬하다.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 ‘댈러웨이 부인’과 연관성 있는 여성 3명의 삶이 교차로 나오는데, 각자 사는 시대가 1923년/1951년/2001년으로 다른데도 불구하고 여성이기에 같은 고통을 공유하고 그 고통에 아파하는 걸 보여준다. 그리고 그 고통을 치유해줄 수 있는 여성동반자의 유무에 따라 각기 다른 결말(자살/도피/회귀)을 맞이한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위 영화들에서 여성의 삶의 구원자는 언제나 다른 여성이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있다.
 
끝으로 ‘남성에 의해 정형화된 여성의 삶을 변주’하는 것에도 페미니즘적인 메시지가 들어있다. 『레이디 맥베스(2016)』는 가부장제를 전복시키는 여성의 권력투쟁(속칭 팜므 파탈)을 긍정적으로 해석한다. 이 영화에서 여주인공은 표면적으로는 질서를 파괴하는 인물이지만, 이미 남성중심의 가부장적 세계의 이면에는 무질서가 도사리고 있기에 오히려 그녀는 질서를 회복하는 구원자로 보인다. 그러므로 비극으로 종결되는 맥베스와 달리 그녀는 비극적인 운명을 맞지 않는다. 멕베스의 행동이 비극으로 끝날 게 빤한 일탈이라면, 레이디 맥베스의 반란은 가부장 세계에서 벗어난 새로운 세계의 구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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