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시선으로 인천을 스케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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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시선으로 인천을 스케치하다
  • 김주희
  • 승인 2010.11.15 17: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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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in이 만난 사람] 블로그 운영자 장윤석씨
취재: 김주희 기자

"지난 서른아홉 해보다 최근 10개월간 인천에 대해서 더 많이 배우고 알게 됐습니다. 제가 안 것을 그저 알리고자 했을 뿐인데, 많은 사람이 제 글과 사진을 보고 인천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로 댓글을 단 것을 보면 기운이 솟습니다."

 전혀 의도하지 않았는데, 인천을 알리는 홍보대사가 된 이가 있다.

고등학교 졸업 후 가까이 하지 못했던 사진기를 다시 잡고, 인천의 이곳저곳을 다니다 인천을 '스케치'하는데 푹 빠진 사람.

인천 사진으로 블로그를 운영하다, 그것을 인연으로 한 연구기관의 '객원기자'로도 활동하는 이.

블로그 '디비딥의 인천스케치'(db0353.blog.me)를 운영하는 장윤석(39)씨다.

"자영업(장씨는 백운역 인근에서 안경점을 운영한다)을 하다 보니 DSLR 카메라를 사 놓고도 몇 년을 쓰지 못했죠. 그러던 어느 날인가 새벽녘에 만수동에서 사진을 찍었는데, 매력적이었죠. 그리고 그 안에서 이야기를 찾은 거죠."

주말, 틈틈이 시간을 내 만수동과 화수동 일대를 카메라 렌즈에 담기 시작하면서 장씨의 블로그가 시작됐다.

사진을 찍다 보니 사진에 담긴 이야기가 궁금했고, 그 이야기를 찾다 보니 자연스럽게 인천에 대한 공부를 시작하게 됐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알려주고 싶어 올 2월 한 포털사이트에 블로그를 개설했다.

"39살 때까지 (인천에 대해) 몰랐던 것을 블로그를 한 몇 달 동안 정말 많이 알게 됐습니다. 푹 빠졌죠. 다 아는 이야기일 수 있겠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보자. 인천에 사니까 인천을 이야기해보자 그렇게 시작한 일이었습니다."





쉽게 달려든 일이었다고 했다. 오히려 이야기할 거리가 없어 중간에 그만두면 어떻게 하나 고민도 했단다.

블로그에 사진이 쌓이고, 글이 늘면서 오히려 일이 커졌다고 했다.

스스로 인천에 대한 궁금증이 커간 것은 물론이다. 블로그를 찾는 사람도 생각보다 꽤 많아졌다. 한 번은 1만 명이 넘게 몰릴 때도 있었다.

'인천 고수'들의 조언과 도움이 잇따랐다. 공부하라고 책까지 선물해주는 단체도 있었다. 지금 장씨는 고일 선생의 '인천석금'에 푹 빠져있다.

"아는 형이 자연산 회를 가장 싸게 먹을 수 있다며 북성포구에 데리고 간 적이 있어요. 서른 몇 해를 인천에 살면서도 그때 처음으로 북성포구를 알게 됐습니다. 사진에 담으면 예쁠 것 같았죠."

그렇게 인연을 맺은 북성포구는 디비딥의 단골 출사지로 됐다.

'디비딥의 인천스케치' 운영자 장윤석씨대불호텔 역시 그에게 충격이었다고 했다. 어릴 적 천주교 해안본당에 다녔던 그는 대불호텔 옆을 꼭 지나야 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호텔이 그 자리에 그렇게 있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고 했다.

인천에 이야깃거리가 많다는 사실에 또 놀랐단다. 자장면에 사이다에, 성냥공장에 연초공장까지.

"결코 웃으면서 이야기할 것들은 아니죠. 개항의 역사랑 맞물리는 인천의 모든 이야기가 수탈의 역사와 또 맞물린다는 게…. 공부를 하면 할수록 가슴 아픈 그런 것들이 정말 많았습니다"

사진을 취미로 하면서 인천 사진을 차곡차곡 담아두자는 생각이 있었다.

하지만 자영업이란 게 시간을 그리 호락호락 내주지 않았다. 사람들을 모아 동아리도 만들고 했지만, 정작 본인이 주도적으로 나서지 못하니 만들고 접고, 만들고 접고를 반복했다.

그래서 혼자 나서게 된 것이었다고.

그런 장씨는 사진을 찍으면 찍을수록 '기록'으로서 사진의 중요성에 더 무게를 두어간다고 했다.

"예전의 저였다면 골목길을 찍는다고 했을 때 내 느낌을 담아서 작품 하나 만들고 싶어 더 예쁘고 아름답게 찍으려고 정성을 다했을 겁니다. 지금은 좀 달라요. 골목의 느낌을 가장 잘 전달하는 곳은 찾아 그냥 찍습니다."

수봉공원으로 출사를 나갔다가 놀이기구를 담아두었는데, 지금 그 사진이 정말 귀중한 사진으로 됐다고 했다. 자유공원에서 옮겨간 수봉공원의 놀이기구는 지금은 없다.

장씨는 한 가지 버릇이 생겼다고 했다. 언제든지 사진 촬영이 가능하도록 출퇴근길이이나 이동할 때 카메라를 켜, 옆에 두고 다닌다고 했다. 지금 이 길이 언제 변할지 몰라 때때로 카메라를 들이댄다고도 했다.

"블로그를 찾는 사람들이 조금씩 늘면서 자연스럽게 네트워크도 형성되더군요. 제 글이나 사진 설명에 오류가 있으면 바로 잡아주기도 하면서, 서로 얼굴은 모르지만 묘한 연대감이랄까. 그래서 책임감이 더 들게 됐고…. 바른 사실을 알리고 싶은 욕심도 생겨났죠."

얼마 전 둘째아이가 태어나면서 아내의 허락을 받는 일이 녹록치 않아졌지만, 그래도 가급적 1주일에 한 번 정도는 출사하려고 노력한다.


인천사진 찍기에 푹 빠졌지만, 두 아이에겐 또 자상한 아빠이기도 하다.
인천이야기와 함께 올리는 그의 가족 이야기는 잔잔한 감동을 준다.

시간 내기가 힘드니 요령도 터득했다. 무작정 사진기를 들고 나서기보다는 장소를 정하고, 공부하고 어떻게 찍을지 결정한 뒤 길을 나선다고 했다.

"어렸을 때 보았던 건물이 그대로 있는 것도 있지만, 하나둘 재빠르게 없어지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에게 인천은 어릴 적 기억속의 중구와 동구, 남구 정도 크기다.

그런 그에게 중구와 동구는 굉장히 빠르게 앞서 달려가는 인천의 다른 지역과 달리 발전이 더딘 곳이다.

친구와 소주 한 잔 걸칠 수 있는, 편하디 편한 신포동이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 더딘 부분이 싫었다고 했다. 사람이 떠나는 도시가 돼 버려서 그랬단다.

인천이 '발전'과 '남아 있는 부분'이 너무나도 극단적이라는 생각이 든다고도 했다.


"다른 곳처럼 사람도 많이 오고 했으면 좋겠는데…."

인천을 알아가고, 공부도 더 하다 보니까 생각이 달라졌다.

"신포동이나 (중구 일대)이쪽은 어설프게 발전시키기보다는 지금 있는 것을 잘 가꿔서 서울의 인사동처럼 브랜드화한 곳으로 만드는 게 나을 듯 싶어요. 개항의 에너지를 잘 결합하면 되지 않을까요."

자연스럽게 동구 쪽으로 이야기가 옮겨졌다. 장씨는 슬럼화하는 것 같다며 더딘 동구의 모습에 안타까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렇다고 무분별한 재개발을 바라는 것은 아니었다. 이윤창출을 위한 재개발이 아닌, 정착민들을 위한 재개발이 되길 바랐다.

그러면서 사진 찍는 사람들에게 부탁했다.

"그냥 지나가는 식으로, 관광차 들러서 '여기는 이런 데야' 하는 식의 시선 말고, 예를 들어 수도국산에 살았던 피난민의 아픔을 공유하면서 사진을 담아내면 따뜻하지 않을까요."

디비딥의 사진이 따뜻함을 발견했던 이유였다.


그는 한 초등학교 안에 있는 부평도호부청사가 '철창신세'를 면치 못하는 것도 안타까웠고, 홍보가 잘 안 돼 구경꾼 없이 진행되던 인천도호부대제가 또 아쉬웠다.

'디비딥의 인천스케치'는 하루 평균 800명이 다녀간다. 이웃 블로그도 590개에 이른다. 많다. '인천'을 주제로 한 블로그라는 점을 감안하면 꽤 많은 수치다.

"공부를 하다 보니 자꾸 어려운 말만 늘어놓게 되더라고요. 글도 길어지고. 학술지 같이 지루하면 젊은 친구들은 싫어해요. 사진을 많이 넣고, 글은 짧게 써 넣으려고 합니다."

무엇보다 그의 인천 사진과 글에 남은 댓글이 인상적이다.

'정겨운 모습이 가득한 곳이네요',

'인천, 디비딥님 덕분에 가보고 싶은 곳이 됐어요'

'인천에는 한 번도 안 가봤는데, 요새 디비딥님 덕분에 인천에 멋진 곳 많이 알게 됐어요.'


사진출처=디비딥 인천스케치(db0353.blog.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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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사랑꿀떡 2010-11-10 15:30:57
^^ 정말 인천에 사시는 사람 같아요.. 매일 출퇴근을 타 시도로 하면서 내 고장이라는 느낌을 잊어가는데, 블러그 볼때마다 배우는것도 생기고, 둘러볼 곳도 생기고..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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