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겨울나기 준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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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겨울나기 준비하기
  • 은옥주
  • 승인 2018.11.06 0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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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노년을 맞이하며 - 은옥주 / 공감미술치료센터 소장
 
 
 
참 고운 계절이다. 온 천지가 알록달록 붉게 물들고 바람이 불면 수명을 다한 나뭇잎이 우수수 떨어져 내린다. 어떤 나무들은 벌써 잎을 다 떨구고 초연한 모습으로 서 있다. 색색의 낙엽들을 밟고 사각사각 소리를 들으며 걷는 기분이 여간 좋은 것이 아니다. 요즈음 나는 시간만 나면 ‘인천대공원’으로 달려가서 눈이 시큰하도록 찬란한 자연을 바라보다가 팔랑팔랑 떨어지는 낙엽을 축복처럼 맞아들이고 바스락 바스락 거리며 이 가을을 보낸다. 아주 가까이에서 꾸밈없는 자연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 꿈만 같다.

 

 

단풍이 들고 나뭇잎들이 나무에서 떨어지는 까닭은 추운 겨울을 준비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겨울의 추위를 이겨내려면 무성한 나뭇잎들을 다 걷어내고 최소한의 것만 가진 겸손한 모습으로 살아야 하는 것이 자연의 오묘한 섭리라고 했다. 나도 겨울나기를 준비해야 하는 시기가 온 것 같아 얼마 전부터 하나씩 하나씩 잎을 떨궈 내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장롱 속을 뒤져 꼭 필요하지 않은 옷과 신발장의 뾰족 구두들을 다 정리해 보았다. 무릎이 시큰거리고 조금 걸으면 발도 몸도 몹시 피곤한 것을 보니 이제부터라도 내 몸을 아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든 탓이다. 언젠가 시간이 넉넉해지면 읽으려고 아껴두었던 책들도 대부분 정리했다. 시력이 예전 같지 않아 작은 글씨가 어른거려서 책 읽기가 더 이상 어려워진 탓이다. 오래된 사진첩을 뒤져보니 웬 사진이 그렇게나 많은지! 버리기는 아깝고 그냥 두기도 짐이 되어 조각조각 오려서 콜라주로 만들어 앨범을 2권이나 줄였다. 아끼고 아끼던 사진이지만 과감하게 가위로 싹둑싹둑 잘라내면서 오히려 마음이 시원한 것을 보내 ‘내 마음도 잎사귀를 떨어뜨릴 준비가 되어가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미뤄오던 컴퓨터 교실 실버반에 등록했다. 지금까지 바쁘다는 핑계로 특급비서관인 딸과 아들에게 얹혀 큰 어려움 없이 해결해왔다. 하지만 이제는 아이들이 왕성하게 활동을 하고 있으니 이것저것 부탁하기도 어려워졌다. 가끔 바쁠 때면 짜증 섞인 목소리로 툭 던지는 말에 자존심이 몹시 상할 때도 있었기에 단단히 결심을 한 것이다. 노인이 되어 의존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커질 수 있을 테니 내 문제는 내 스스로 해결하기로 하였다. 나는 은근히 배우는 것에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실버교실의 연세 드신 분들보다는 내가 더 잘 하리라 생각했었다. 웬걸. 많은 분들이 이곳저곳에서 더 열심히 배워 오셔서 보통 실력이 아니었다. 아무래도 아날로그 방식으로 굳어진 뇌세포를 깨우는 데는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았다. 가끔 뻔한 것도 실수하고 못 따라가는 내가 속상하지만 천천히 느긋하게 배워보기로 한다.
 
그동안은 늘 바쁘고 급하게 사느라 작은 일상을 챙길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것 같다. 내 자신이 나의 삶을 대하는 태도가 도무지 못마땅했다. 일례로 멸치볶음을 할 때 무심코 엿기름을 퍼부어 멸치들이 엉겨붙어 한 덩어리가 된 적도 있었다. 그냥 그냥 그렇게 대충 만들어 먹고 살아왔다. 이런 버릇을 좀 고쳐 매일 매일의 삶 속에 소소한 일상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갖고 싶다. 밑반찬 만들기 교실에도 도전하고 쿠키교실이나 제빵교실도 도전하고 싶다. 열심히 배워 귀여운 손자와 나눠먹는 꿈도 꾸어 본다.
 
노년의 삶, 겨울을 맞이하는 삶은 한 번도 겪어 본 적이 없어 조금 두렵다. 그래도 아직 하고 싶은 것도 많고 해야 할 것도 많으니 겨울나기가 슬며시 기회가 되기도 할 것이다. 심리학자 에릭슨에 의하면 노년기 발달과제는 삶과 죽음의 의미를 발견하고 자기 자신을 ‘통합’하여 지혜를 얻는 것이다. 이때의 ‘통합’이란 이성과 감정의 균형을 맞추어 머리로 생각하는 것과 가슴으로 느끼는 것을 조화롭게 하는 것이다. 또한,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익숙하고 잘해 오던 것만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시도해 보지 않았던 것, 혹은 싫어했던 것들을 도전해 보는 것이다. 그렇게 우뇌와 좌뇌의 조화로운 사용을 통해 자신의 우월한 기능과 열등한 기능을 통합하고 통일감 있게 하는 것이다.
 
이제까지 성취를 위해 목표를 위해 앞만 보고 달려왔던 삶을 떨궈내고 이제는 천천히 걸으며 골목길도 기웃거리고 오솔길도 걸으며 인생의 겨울나기에 한걸음 한걸음 다가서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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