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수시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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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수시장에서
  • 윤희자
  • 승인 2018.11.07 0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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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칼럼] 윤희자 / 인천노인종합문화회관 회원





시장하면 대개 활기차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어떤 이는 비오는 날 빨래처럼 마음이 축축 늘어질 때 일부러 시장에 간다고 한다. 하지만 시장이라고 하여 다 그런 것만은 아니다. 우리 동네 만수시장을 예로 들자면 시끌벅적 와글와글한 모습은 보이지 않고 시골 장마당의 파장 모습을 보는 듯 한산하다. 인근 모래네 시장이나 간석시장만 하더라도 여기저기서 상인들이 목청을 높여 행인을 부른다던지 손님과도 목소리를 한 옥타브 높여 흥을 돋운다.
 
만수시장은 그 규모가 아주 작다. 백 미터에 훨씬 못 미치는 좁은 골목에 한두 평이나 서너 평의 가게들이 줄을 서고 통로엔 리어카 장수들까지 들어서 행인들은 걷는 것조차 불편하다. 재래시장들이 지붕과 바닥을 정비할 때, 만수시장도 이제야 비로소 저 남루함을 벗어 버리고 새 단장을 하려나 했지만 아직도 소식이 감감하다. 리어커마다 세워놓은 파라솔은 세월의 때가 묻어 우중충하고 비가 오면 우산을 펴 들어야한다. 30년 전 모습과 조금도 변함없다. 시장 근처 만월산 자락에 철거민들이 살던 흙벽돌집들이 재개발 되어 25층 아파트가 들어섰으나 시장은 잠자는 공주처럼 깨어날 줄 모른다. ‘나물 먹고 물마시고 팔을 베고 누웠으니 더 바랄 것이 무에냐’ 하던 옛 사람들처럼 이만하면 자족한다며 대동단결이라도 한 듯 천하태평이다.
 
일주일에 한번 장을 보려면 근처 대형 마트 두고 버스 다섯 정거장 거리인 만수시장에 간다. 30년 단골 때문만은 아니다. 사람 때문이다. 마트의 물건, 환경 모든 것이 반짝 반짝 윤이 나지만 사람이 없다. 거칠고 투박하고 따뜻한 손으로 내 손을 잡아주는 두부 집 아줌마, 우리 딸아이 이름까지 기억하고 “민희 시집가서 잘 사느냐”안부하는 리어카 야채 아줌마 등 수더분하고 다사로운 사람들이 좋아 시장으로 발걸음을 하는 것이다.
 
비린 것을 좋아하여 생선가게는 빼놓지 않는다. 건어물 가게 옆 생선가게는 주인아저씨 마음씨도 그렇거니와 생선은 눈요기로도 쏠쏠하다. 발끝까지 내려오는 비닐 앞치마를 두른 주인은 농구 선수처럼 키가 크다. 두 평이 될까 한 생선 좌판엔 서민들의 먹거리인 동태 고등어 갈치 오징어 등이 얼음 위에서 4열 횡대로 누워 있다. 눈을 감고 느긋하게 누워있는 놈은 한 마리도 없다. 까마중 같이 작은 눈은 긴장감이 역력하다. 이는 손님의 손가락질 한번으로 저 무시무시한 사각 칼 아래 놓여질 운명임을 감지한 눈빛이다. 비록 명줄은 놓았지만 정신만은 살아있다는 듯 두 눈의 정기가 시퍼렇게 살아 펄떡 뛰어오를 것 같다. 주인아저씨는 가끔씩 생선 등허리에 작은 물뿌리개로 물을 뿌리며 이들의 죽음을 상기 시킨다.
 
그런데 이 아저씨 웃음소리가 특이하다. 가자미눈을 뜨고 생선 값이 비싸다, 싱싱하지 못하다며 까탈을 부리는 손님에게 성을 내지 않는다. 그냥 웃는다. ‘껄껄껄’도 아니고 ‘컬컬컬’… 마음에 욕심하나 없이 쿨렁쿨렁 비어 있는 듯 어린아이 같이 순수한 표정을 지으며 웃는다. 풍진 세상 턱없이 작은 배로 노 저어 가기 힘에 부쳐 차라리 웃기로 했나보다. 이윤을 추구하며 거래가 오고가는 시장, 한 푼을 보고 5리를 뛴다는 상인, 그래서 상인들의 눈치는 재빠르게 돌아간다. 그런데 이 생선가게 아저씨는 속없이 웃는다. 영악한 손님에 어수룩한 주인이라고 할까? 어느 농촌 마을 고샅길에서 또는 작은 갯마을에서 마주치는 이웃 아저씨 같다. 이 친근감은 순수한 웃음과 순한 남도 사투리 때문인 게다. 고향을 떠난 지 오래된 듯 고장 난 표준어를 쓴다. 말을 배울 때부터 학습된 억양만은 쉽게 변하지 않아 고저장단에서 살짝 살짝 남도 사람임이 드러난다.
 
사투리를 쓰는 사람을 보면 우선 반갑다. 그 사람이 경상도나 전라도, 또는 충청도나 관계없이 가까이 하고 싶다. 이는 나 또한 사투리를 쓰는 고장 사람으로 동질감을 느끼기 때문인 듯하다. 그중 강화도 사투리를 쓰는 사람을 보면 일면식도 없으면서 가까운 친척을 만난 듯 덥석 손이라도 잡고 싶다. “나는 불은면에 살았는데 무슨 면에 사셨어요?” 불문곡직 통성명을 하고 하루 종일 고향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강화라는 음식점 간판만 봐도 식사 시간이 아닌데 들어가고 싶고 강화행 버스를 봐도 가슴으로 찌르르 전기가 지나간다. 남편은 이러는 나를 평생 고치지 못하는 지병이 있는 마누라 취급을 한다. 남편은 인천 만수동에서 한 발짝도 떠난 일이 없는 북박이 만수동 사람이다. 그러니 내 마음을 알 턱이 없다.

생선 가게가 다 그렇듯 좌판에서 흐르는 물기로 키 큰 아저씨 가게 앞 역시 늘 질척하다. 손님이 뜸 할 때, 산 만 한 사람이 작은 의자에 앉아 잠망경 같이 눈을 치켜 뜬 게와 눈을 맞추고 있다. 허옇게 거품을 무는 게의 격앙된 마음을 달래주는 것일까? “도시로 갈 거야” 젊은 날 홍역처럼 열에 달뜬 듯 읊조렸던 말을 다시 꺼내보며 피식 쓴 웃음이라도 웃는 것일까?
 
고등어 한 손 사들고 돌아 나오려니 생선 가게 주인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누군가 또 까탈을 부리는가 보다. 몇 걸음 뒤에서 들으니 이 특이한 웃음소리는 남성답고 호쾌한 ‘껄껄껄’이 변조된 소리가 분명하다. 레스링 선수의 변형된 귀, 채소 도매시장이나 생선 어시장 경매사의 변사 같은 목소리처럼, 저 웃음소리도 무엇에 의해 변한 것이 틀림없다. 이들의 공통점은 보는 이나 듣는 이의 마음을 짠하게 한다는 것이다. 조석으로 변하는 사람의 마음이 아니고서야 하루아침에 변하는 것은 없다. 긴 시간 부대낀 후에 나타나는 이지러짐이다.
 
돌아보니 자그마한 아주머니가 생선가게 앞에 서 있다. 아저씨의 가슴 긁히는 소리, 밸을 내어놓는 웃음, “컬컬컬 컬컬컬” 아차, 오늘 생선 차~암 싱싱하다 말 해줄걸. 그것도 보시(布施)인 것을. 후회하며 533번 마을버스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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