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비용을 아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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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비용을 아끼자
  • 장재영
  • 승인 2018.11.21 0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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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장재영 / 공감미술치료센터 기획팀장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중 첫번째 작품인 ‘햄릿’에
삶과 죽음 사이에서 갈등하는 주인공 햄릿의 삶의 무게를 드러내는 유명한 명대사가 등장한다.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그러나 습관적으로 고민거리를 달고 다니는 그는 복수를 할지 말지 선택의 기로에서 갈등하다 주변에 민폐를 끼치는 우유부단한 행동을 보이며 최근, 우스갯소리로 등장했다가 일상용어로 정착되어버린 ‘결정장애’ 라는 말이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행보를 보인다. 그래서 결정장애는 다른 말로 '선택장애' 또는 '햄릿증후군(Hamlet Syndrome)'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러고보니, 이전에는 그냥 신중하고 살짝 조심스러울 뿐이라 생각했는데 짜장과 짬뽕 사이를 고민하다 결국 짬짜면을 시켜먹을까 고민하는 나도 ‘결정장애’라는 말과 어울리지 않을까하는 의구심이 들기도한다.


<베네딕트 컴버배치 주연의 연극 '햄릿' 중에서>
 

중·고등학교 시절 나는 도서대여점에서 책 한권 고르는데 20분은 기본이었다. ‘이 책 볼까 저 책 볼까.’ 하며 여러 책들을 음미하면서 보내는 시간은 나름 즐거운 쾌감이었지만 30분이 넘어가게 되면 점점 결정하는 것이 더욱 어려워짐을 느꼈다. 이미 오랜 시간 공을 들였으니 좀 더 후회없는 결정을 하고 싶어졌으며 결국은 스스로에게 짜증이 나는 지경에 이르곤 했다. '아씨.. 나는 왜 이럴까? 왜 매번 결정을 못할까?' 과자 하나를 사먹어도 한정된 돈 안에서 최대치를 뽑아내려던 그 효율성은 나를 피곤하게 만들기 십상이었다. 결국, 슈퍼 안을 3바퀴는 돌아서야 과자 하나를 골라서 나왔다. 그것도 주인 눈치를 보느라 그나마 빨리 고른 편에 속했다.
 

사춘기 내내 이런 내 모습에 스스로 질려하면서도 쉽사리 변화할 수 없었다. 그만큼 무엇인가 스스로 결정을 내리는 것이 어려웠으며 하나를 갖기 위해 하나를 포기하는 것은 내겐 무척이나 어려운 일 이었던 것 같다. 나중에 후회할 일을 만들지 않으려고 애쓰다가 스스로를 힘들게 했으니 얼핏, 기회비용이라는 말보다 후회비용이란 말이 더 어울렸다.

캘리포니아공과대학 행동경제학과의 콜린캐머러 교수는 국제학술지 ‘자연 인간 행동’에서 “인간을 위한 최적의 선택지는 대략 8~15개 사이가 될 것.” 이라는 내용의 논문을 발표하였다. 선택지가 많다보면 되려 선택에 대한 어려움이 커지고 선택하지 않은 나머지를 손실로 받아들여 만족도가 떨어진다고 한다. 또한, 선택이 어려웠던 만큼 최종 선택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그에 따른 실망도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만약 내가 도서대여점에 들어가기 전에 특정 서적에 대한 정보를 염두에 두고 세권정도만 미리 추려놓고 직접 선택을 했더라면 어땠을까? 아마도 세권 사이에서만 고민하다가 선택을 하는 속도가 조금은 수월했을 것이다. 또한, 슈퍼 안을 몇 바퀴씩 도는 동안 먹고 싶은 과자 후보를 먼저 정했다면 어땠을까? 그 많은 종류의 과자들 속에서 무분별하게 고민하기보다 훨씬 마음이 편안했을 수도 있다.

현세는 선택 과잉의 시대라는 말이 있듯, 우리는 지금 매일같이 무수한 정보를 받아들이며 선택을 강요받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 같다. 어쩌면 삶이 점점 다양해지면서 선택의 폭도 넓어지다 보니 선택에 대한 고민이 잦아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하지만 선택을 통해 긍정적인 기회를 갖기위했던 기회비용이 무수한 기회를 통해 후회를 낳는 후회비용이 될 뿐이라면 선택의 폭을 조금 좁혀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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