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고 돈 ‘로터리’의 세월
상태바
돌고 돈 ‘로터리’의 세월
  • 유동현
  • 승인 2018.12.03 08:3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0) 답동로터리

낡은 고교 앨범은 추억 저장소이다. 까까머리와 단발머리를 한 그대가 있고 분식집 문턱을 함께 넘나들던 그리운 친구들도 있다. 3년간의 발자국을 남긴 모교 운동장과 교실의 모습도 아련하다. 빛바랜 사진첩에는 ‘인천’도 있다. 교정에 머무르지 않고 과감히 교문을 나서 사진사 앞에서 포즈를 취했던 그대들 덕분에 그때의 인천을 ‘추억’할 수 있다.    

 

 

로터리(rotary)는 사거리 이상의 번잡한 도로에 자동차 진행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원형으로 만들어 놓은 교통 시설이다. 인천에는 숭의로터리, 부흥로터리, 송림로터리, 해안동로터리 등 적지 않은 로터리가 있다.
 

시내 중심가에 지금은 잊힌 로터리가 있다. 답동로터리다. 동인천역-인천우체국(현 중동우체국)-사동(국제여객터미널)-신흥시장을 연결해주는 로터리였다. 답동로터리의 상징은 한가운데 우뚝 솟은 멋진 시계탑이었다. 로터리클럽이 아니라 라이온스클럽에서 세웠다.  

 

      1967년도 인천고 앨범. 오후 5시46분

1969년도 송도고 앨범. 오후 3시16분 촬영

 

답동로터리와 연결된 신흥초교 앞의 도로는 여러 차례의 확장 공사로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답동사거리에서 신흥시장 입구에 이르는 총 연장 300여m의 길은 원래 막혀있었다. 천주교(답동성당)와 중국인 오례당(인천해관 직원) 소유의 토지가 속해 있어서 도로 개통 추진이 어려웠다. 양쪽으로부터 땅을 기부 받아 비로소 1914년 1월에 처음 길이 뚫렸다. 이후 6m 폭의 도로를 1978년 제 59회 전국체전을 맞아 현재와 같이 대폭 확장했다.

 
 

1969년도 인천공고 앨범. 오후 4시 52분 촬영. 뒤로 지금은 철거된 답동육교가 보인다.

1971년도 송도고 앨범. ‘듬직한’ 교통경찰 아저씨와 함께.

 

답동로터리는 ‘답동광장’으로 불리기도 했다. 이곳은 정식 광장이라기보다는 다중 집회를 할 때 차량을 통제해서 광장으로 활용했던 장소다. 6,70년대 인천에는 광장다운 광장이 없었다. 동인천 역사 앞, 버스 터미널과 만남의 공간으로 사용했던 너른 마당이 광장 역할을 했다. 70년대 초 동인천지하상가 공사가 시작돼 동인천역  주변의 땅을 뒤집어 놓는 바람에 한동안 대중 행사들은 흔히 ‘답동광장’이라고 불렀던 답동로터리로 옮겨 치러졌다. 지금의 답동사거리는 시청(현 중구청)이 가까운 중심지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도로 폭에 비해 차량 통행이 적어 행사를 치르기에 적당했다.


 
1976년도 인천수고 앨범. 이 자리에서 숱한 화형식이 있었다.  
 
유동현 / 전, 굿모닝인천 편집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시민과 함께하는 인터넷 뉴스 월 5,000원으로 소통하는 자발적 후원독자 모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