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해주 4월 참변, 최재형 선생의 우수리스크를 지나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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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해주 4월 참변, 최재형 선생의 우수리스크를 지나치며
  • 유영은
  • 승인 2018.12.11 07: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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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블라디보스톡행 시베리아횡단열차에서 - 유영은 / 미추홀학부모넷


                                                             

하바롭스크 역엔 많은 사람들이 북적거리고 있었다. 한 쪽 벽면의 전광판엔 우리가 출발할 시간과 종착역이 표시되어 있다. Владивосток 8:50 친절한 영어표기가 없어도 대략 알아볼 수는 있다. 열차의 운행 전체로 보면 짧은 구간이지만 그래도 하룻밤을 내내 달려야 하는 열차에서의 밤과, 또 다른 도시 블라디보스톡과의 만남이  설렌다. 블라디보스톡은 어떤 느낌의 도시일까?

어제 하바롭스크 공항에 도착했을 때는 흡사 타임머신을 타고 겨울로 순간 이동한 느낌. 단풍이 한창인 한국과 달리 골격을 다 드러내고 있는 나무들과 창밖으로 보이는 사람들의 두툼한 옷차림은 차가운 공기를 체감하기도 전에 몸을 움츠리게 했다.

레닌, 꼼소몰 등의 광장들과 러시아정교회 사원과 수제흑맥주와 검은 아무르강과 아련한 노을을 뒤로하고 야간열차를 탄다, 9288㎞ 거리의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우리 일행은 2등석인 4인실을 이용하는데 각각 커다란 가방과 또 하나의 보조 가방 그리고 먹을 음식들을 들고 타니 객실 안이 너무 좁다. ‘아! 꿈꾸던 로망은 어디가고 불편한 현실이구나’ 하던 차에 같이 탄 일행 분들이 2층 침대로 올라가는 계단 펼치는 법, 의자 등받이를 내려 침대로 만드는 법 등을 알려주는데 자세히 보니 좁은 공간에 온갖 편의를 갖추어 놓았다. 짐을 놓을 공간도 구석구석 숨어 있어 정리를 하고 나니 안락한 공간이 되었다. 이제 야간열차여행의 묘미를 느껴 보려 하는데 일행들이 준비한 평화 스터디를 한다고 한다.

모여 있는 객실로 갔더니 옹기종기 모여 이야기들을 하고 있다. 이게 빠지면 안 된다는 듯이  한 손엔 보드카 잔들을 들고서. 누구는 고개를 끄덕이고, 누구는 스토리텔링을 하고, 누구는 보드카에 취해 가고... 그렇게 객실 안엔 우리가 지나가는 이 땅의 역사가 피어오르고 그 이야기들은 일상의 시공간을 벗어나 낯섦을 즐기는 우리를 또 다른 시공간으로 들어가게 한다.

지금 향하고 있는 블라디보스톡은 일제 강점기 조선독립운동의 최대 근거지이다. 흔히 해외 독립운동지를 만주, 상해, 하와이 등지로만 생각하는데 러시아 연해주가 가장 큰 발원지이다. 이 지역에는 이미 우리 민족 20만 명 이상이 이주해 살고 있었고 러시아당국이 독립운동을 묵인했던 반면, 만주에는 만주군벌이 독립운동을 금지했고 상해, 하와이에는 동포수가 많지 않았다.

그 연해주에서 독립운동사에 빼놓을 수 없는 분이 최재형 선생인데 그 분의 업적에 대해서는 많이 알려져 있지가 않다. 노비의 아들로 태어나 러시아로 이주해 우여곡절을 겪으며 사업가로 크게 성공하는데 그렇게 번 돈으로 동의회, 권업회를 조직해 수많은 항일 투쟁의 중심에서 자금의 젖줄 역할을 한다. 곳곳에 30여개의 학교를 세워 교육을 통한 한인사회의 성장에도 힘썼고 계몽운동에 있어서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안중근 의사의 숨은 후원자이기도 한데 하얼빈의거 당시 사용했던 총을 제공한 사람이 최재형이고 이토 히로부미가 온다는 것을 알려주고 모든 계획을 짜고 의거 소식을 최초로 전한 곳이 선생이 운영하던 대동공보사이다. 안중근의사의 가족을 보살피는 것은 물론 재판 때 변호사를 파견하기도 했다.
그런 최재형 선생은 1920년 안타깝게도 ‘4월 참변'(시베리아에 출병중인 일본군이 연해주의 러시아혁명군, 한인촌들을 습격, 학살한 사건)의 희생자가 되고 만다. 선생의 시신은 안 의사처럼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았는데 현재 선생의 위패가 국립서울현충원에 봉안되어 있다. 우수리스크에 있는 선생의 고택을 한국 정부에서 사들여 관리하고 있다고 하니 참으로 다행이다. 우수리스크에 가면 선생의 신념과 체취를 느낄 수 있을까? 감정이 복합적으로 얽힌다.

여전히 열차는 밤을 달리고 있고 모였던 사람들은 하나 둘 방을 옮겨 다른 구성원들과 또 다른 대화를 한다. 공정여행을, 열차에 오른 기분을, 시민단체 활동가로서 갖는 생각을, 그리고 자본주의 무한경쟁에 익숙한 우리가 보는 러시아인에 대해 저마다의 의견을. 그런데 목소리가 컸나보다. 승무원이 와서 무슨 말과 함께 엄격한 표정을 한다. 말은 몰라도 의미는 알 것 같다. 잠이 아까운 시간이지만 이쯤 되니 안 잘 수가 없다.

얼마만큼 잤을까 눈을 떴는데 아직 어둡다. 불빛이 보이기에 내다보니 어느 역이다. 무슨 역인지 궁금해 사진을 찍어두었는데 나중에 확인해 보니 우수리스크역이었다. 최재형 선생의 고택이 있는 우스리스크. 우리 일정엔 없었지만 고려인 문화관, 발해역사관, 이상설유허비등 한인들의 흔적을 볼 수 있어 한국인이 많이 찾는다고 한다.
세수를 하러 가다가 엄격했던 승무원을 만나 아침인사를 했다. 어색한 말로 ‘도브러에 우뜨러’ 했는데 피곤한지 억지로 웃는 표정이다.

해가 뜰 무렵이 되니 다들 잠이 부족할 텐데도 일어나 창문에 붙어 있다. 창밖은 엽서의 한 장면이다 동트기 전이라 분위기가 몽환적이다. 강 가에 묶여 있는 낡은 배가 뒤로 밀려간다.  그렇게 밤의 여정은 지나가고 정복의 땅 블라디보스톡이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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