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땜에 미장원가서 머리 감을라고 허는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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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땜에 미장원가서 머리 감을라고 허는거야"
  • 김인자
  • 승인 2018.12.11 0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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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7) 꽃할머니의 겨울


갑자기 추워진 한겨울 아침. 치매센터인 사랑터에 가시는 심계옥엄니를 배웅하러 가는 길에 함박꽃 할머니를 만났다. 꽃단장하신 함박꽃할머니를 보니 반갑고 기뻤다. 한 달 전만해도 멋쟁이신 함박꽃할머니는 멋쟁이 할머니가 아니셨다. 밖에 나오실 때면 한 점 흐트럼없이 곱게 치장을 하시던 함박꽃할머니셨는데 어느날 부턴가 흐트러진 옷 매무새로 밖에 나오셨다. 옷도 집에서 입던 옷 그대로 어떤 날은 틀니도 끼지 않고 맨입으로 나오셔서 걱정이 되었다. 그런데 오늘 아침엔 예전처럼 한껏 치장을 하고 나오셔서 마음이 안심이 되었다.

"할머니, 날씨도 추운데 이렇게 꽃단장하시고 어디 좋은데 가세요?"
"응, 미장원에."
"미장원에요?"
"응, 나 미장원에 가."
"아, 할머니 빠마하실라고요?"
"아니, 머리 감을라고."
"아, 울 이쁜 할머니 머리 감으시려고 미장원에 가시는구나아."
"응"
"왜요? 할머니 손 다치셨어요?"
머리를 감으러 미장원 가신다는 함박꽃할머니 말씀에 태연한 척 했으나 깜짝 놀라 할머니 손을 잡고 이리저리 찬찬히 살펴보았다.
"아녀. 나 손 말짱햐."

날이 추워 호주머니에 손을 넣고 걸으시다가 넘어지신건 아닌가해서 걱정을 했는데 일단 다친 것은 아니시라니 마음이 놓였다. 다치지 않은 함박꽃할머니가 고마워서 할머니를 가볍게 살짝 안아드렸다.
다른 때 같으면 "어우 왜 그랴아~~"하며 쑥스러워하시는 함박꽃할머니가 오늘은 왠일인지 품안에서 작은 새마냥 가만히 있으신다. 그런 할머니가 안스러워서 조금 더 팔에 힘을 주어 꼬옥 안아드렸다.

"할머니, 아프시믄 안되요. 아라찌요? 그리고 할무니 제가 머리 감겨드릴께요. 저희 집으로 가세요."
"아녀, 귀찮게 뭐 하러 그래? 미장원가믄 다 알아서 깨깟이 감겨줄건데. 김선생님은 조금도 신경쓸거 없다. 그러지 않아도 이것 저것 내가 김선생님헌테 귀찮게 부탁하는 게 많아서 늘 미안헌데 머리까지 감겨달라고 하믄 내가 염치가 없지."
"염치는요. 할무니는 이뿌셔서 염치없으셔도 되어요. 제가 깨끗하게 감겨드릴테니까 그런 걱정 하지 마시고  저희 집으로 가세요."
"아녀. 이미 미장원에 말 다해 놨어. 미장원가서 돈 삼천 원만 주믄 다 알아서 해준다니까. 걱정허지말어."
"그래두요?"
"글쎄 걱정하지말래두. 눈 땜에 미장원가서 머리 감을라고 허는거야. 걱정말어."
"눈이요?"
"응, 나 백내장 수술 했어."
"아, 할머니 백내장수술 하셨구나."
"그랴. 춥다. 얼릉 들어가아."

서둘러 길을 재촉하시는 함박꽃할머니가 한참을 걸어가시다말고 뒤돌아서서 한 말씀하신다.
"김선생도 눈 애껴라. 맨날 책에 코박고 있지만 말고. 눈은 말이야 건강할 때 조심히 애껴서 써야돼. 눈이란게 한번 고장이 나믄 여간 성가스러운게 아니거든. 눈물도 시도 때도 없이 줄줄 나오고 눈꼽도 끼고 아주 주접을 싸요. 다 베린 담에 고쳐쓸라고 허지말고 근강할 때 조심히 잘 써."
"예, 할머니 말씀 명심할께요."
"그래, 어서 들어가아 춥다."


심계옥엄니를 사랑터차에 태워보내드리고 "아, 춥다, 춥다" 하며 집으로 뛰어 들어오는 길. 이번에는 화단 앞에서 1층 꽃할머니를 만났다.

"어머니, 가셨나?"
찬바람속에서 옷도 허술하게 입으시고
1층 꽃할머니가 뭔가를 하고 계셨다.

"할머니, 뭐 하세요?"
심계옥엄니 사랑터 배웅가는 길에 매일 아침 1층 화단에서 만났던 꽃할머니. 꽃들이 지고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 뵐 수 없어서 섭섭했었는데 화단 안에서 부시럭 부시럭 비닐봉지로 뭔가를 만드시는 꽃할머니를 뵈니 너무 반가웠다.

"할머니 오랜만에 뵈어요."
"그러게."
늘 그렇듯 꽃들에게서 시선을 떼지않는 꽃할머니. 오늘 아침에도 비닐봉지와 씨름하시느라 나는 쳐다보지도 않으신다.
"뭐 하세요,할머니?"
"두판치고 하는 거지."
"두판치고요? 두판치고가 뭐예요, 할머니?"
"죽으믄 죽고. 살믄 살고.
그래도 살까하고 해보는 거지."

두판치고 하신다는 꽃할머니의 두판치고는 큰 비닐봉지로 꽃나무를 덮어주는 일이다.
찬바람 불어 추위에 떨고 있는 꽃나무들의 방한복.
할머니가 꽃나무에 씌어주는 커다란 흰봉투랑 할머니 머리 위에 내려앉은 흰머리가 똑 닮았다.
꽃들이 한창 만개였던 지난 봄과 여름. 꽃나무 잎에 잔뜩 내려앉은 진드기를 물뿌리개로 뿌려가며 정성껏 잎파리를 닦고 계셨던 멋쟁이 꽃할머니. 좋은 곳에 외출하시는 것 처럼 예쁜 옷을 입고 꽃을 손질하셨던 꽃할머니랑 염색한 머리가 많이 자라 반쯤도 넘게 나온 흰머리 꽃할머니가 같은 할머닌가 싶다. 꽃들을 가꾸러 나오셨던 꽃할머니는 옷이면 옷 신발이면 신발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어디 한 군데 흐트러짐 없이 깔끔하고 단정한 할머니셨다. 그런 할머니가 꽃밭에 나오지  않으시는 동안 머리염색도 하지 않으셨나보다. 어디 편찮으셨나?
할머니의 흰머리를 바라보고 섰자니 괜시리 눈물이 날 것만 같다.

"할머니 추워요, 얼릉 씌우고 들어가셔요."
"응응, 추워. 어서 들어가."

그동안 뵙지 못했던 꽃할머니를 만나니 반갑고 좋다. 흰머리 수북한 꽃할머니지만 건강하신 얼굴 보니까 마음에 조금은 안심이 된다.
늘 뵙던 할머니들이 보이지 않으면 나는 걱정이 된다.
꽃도 시들어 다 떨어지고 날씨도 추워져서 그런가.
그림책 벤치에서 매일 만나던 보라돌이 할머니, 양말 할머니, 그리고 눈에 좋은 기운 쐬러 매일 바깥 벤치에 나와 계신다는 쩍벌려할머니를 요즘 통 뵐 수가 없다.
그저 날이 추워서 그래서 할머니들이 바깥에 나오지 않으시는 거라면 좋겠다. 아프신거 아니고 날이 추워서 감기 무서워서 집에 계신 거라면 그런거라면 정말 좋겠다.
그래도 붕붕카할머니랑 함박꽃 할머니는 가끔 엘리베이터앞에서 뵈어서 안심이 되는데 우리 할머니들 온 겨울내내 평강하시길, 강추위에도 거뜬하시길 두 손 모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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