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국운동 펼치던 신한촌, 강제이주로 기념비만 쓸쓸이
상태바
구국운동 펼치던 신한촌, 강제이주로 기념비만 쓸쓸이
  • 최다솜
  • 승인 2018.12.13 11:3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3) 러시아 극동항 블라디보스톡의 신한촌 - 최다솜 / 황해섬네트워크 활동가


<블라디보트톡 신한촌 기념비>


시베리아 횡단 열차에서 아침 해를 맞이했다. 3일차 여행, 블라디보스톡 일정의 시작인 셈이었다. 도착한 블라디보스톡 역에는 반가운 한국인 가이드와 9288 기념탑, 2차 세계대전에 사용된 기관차가 우리를 맞이했다. 9288 기념탑은 블라디보스톡에서 모스크바까지의 시베리아 횡단 열차의 거리인 9288km를 의미한다. 

열차에서 승무원이 나눠준 도시락은 한국인들의 아침 식사로는 다소 아쉬운 감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블라디보스톡에서 첫 끼니로 맛본 설렁탕은 잠시나마 여독을 잊기에 제격이었다. 그제야 시내의 풍경이 들어왔는데, 일본식과 몽골식의 건물이 눈에 띄었고 블라디보스톡 역사 앞 광장을 지키고 있는 레닌 동상도 보였다.

블라디보스톡은 1860년에 러시아에 편입되었으며 ‘동방을 정복하라’는 뜻을 지녔다고 한다. 부동항을 쟁취하기 위한 러시아의 야망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지명이다. 연해주청사가 바로 블라디보스톡 역 근방에 자리하고 있어 일정 중간에 몇 번씩 지나치곤 했다.
 
씻지도 못한 채 배를 채우고 나니 사우나 일정을 앞당기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는데 눈치 빠른 가이드는 우리의 바람을 채워주었다. ‘반야’라고 불리는 러시아식 전통 사우나는 한국의 일반적인 사우나와는 달랐다. 우리 일행이 방문했던 반야는 도심 외곽에 자리 잡고 있으며 통나무 독채 건물로 마치 펜션처럼 조성되어 있었다. 내부는 냉탕과 미지근한 탕, 습식 사우나와 찬 물만 나오는 샤워실, 그리고 다이닝 공간으로 구성되어 마치 친목 장소처럼 꾸며져 있었다. 실제로 어떤 반야는 큰 건물에 당구대까지 갖춘 경우도 있다고 한다.

반야에서 나와 포크롭스키 주교좌 성당으로 향했다. 연해주에서 제일 큰 정교회 건물이지만 하바롭스키 정교회 건물보다는 다소 작은 규모였다. 특이한 점은 러시아 니콜라이 2세를 성인으로 추대하여 동상을 건립하였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내부에도 니콜라이 2세의 가족을 그린 이콘(성화)이 벽 한 쪽에 자리하고 있었다. 마지막 짜르의 비극적인 삶을 안타깝게 여긴 블라디보스톡 사람들의 마음이 반영된 것은 아닐까 싶었다.



<니콜라이 2세 동상과 혁명광장>


해상공원으로 이동하였다. 염도가 적어 바다 내음이 물씬 풍기지는 않았지만 풍경이 한 눈에 들어오는 레스토랑에 자리를 잡았다. 메인 요리로는 닭고기 샤슬릭을 맛보았는데 아름다운 풍경을 함께 감상하며 꿀맛같은 식사를 즐겼다. 배를 든든히 채우고는 해상공원과 바로 이어진 ‘젊음의 거리(?)’ 프리모르스키 크레이 거리로 자연스레 향했는데, 상점가여서 그런지 활기가 넘쳤다. 거리의 카페에서 느꼈던 햇살과 커피 한 잔의 여유가 벌써부터 그립다.
 
짧은 여유를 뒤로하고 블라디보스톡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제독광장으로 향했다. 제독광장에는 C56 잠수함, 영원한 불꽃, 개선문, 추모의 벽 등이 제2차 세계대전을 기억하기 위해 한 곳에 모여 있었다. C56 잠수함은 당시 내부에서 생활하였던 군인들의 삶과 전쟁의 흔적을 보존하고 있었다. 그리고 당시 장교들의 사진도 전시하고 있었다. 지금은 그들의 영광스런 완장과 뱃지만 남아 있을 뿐이다. 영원한 불꽃은 러시아 전역에서 볼 수 있는데 전쟁을 잊지 않기 위해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꽃이라고 한다. 한편 추모의 벽에는 김 씨와 박 씨 등의 익숙한 이름도 새겨져 있었다. 2차 세계대전이 러시아 민족만이 아니라 세계인 모두의 뼈아픈 역사라는 사실을 새삼 느끼는 순간이었다.

다음으로 일행이 향한 곳은 블라디보스톡 시내를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독수리전망대였다. 얼지 않는 항구에 늘어서 있는 각종 시설물들과 금각만 다리, 도시의 건물들이 아름답게 어우러져 있어 주변 사람들 모두 눈과 사진으로 담기에 바빴다. 전망대 한복판에는 키릴문자를 러시아에 전파한 키릴 선교사 형제의 동상이 자리하고 있었고, 거대한 호랑이 벽화도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독수리 전망대는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의 상징들을 모두 담고 있는 셈이었다.





러시아와 우리 민족의 연결고리는 제독 광장에서뿐만 아니라 신한촌에서도 찾아볼 수 있었다. 러일전쟁 이후 블라디보스톡의 구한촌에 살던 우리 민족이 일본의 눈초리를 피해 이주한 곳이 신한촌이다. 이곳에서 독립에 앞장섰던 선조들은 권업회를 조직하여 구국운동을 펼쳐 나갔다. 그러나 스탈린은 우리 민족을 중앙아시아로 강제로 이주시켰고, 지금은 1999년 설립한 신한촌 기념비만이 그 흔적을 알려줄 뿐이다. 일행은 구국을 위해 희생하셨던 분들에게 묵념으로나마 인사를 올렸다. 한편 우리 민족이 강제 이주 전 마지막으로 밟은 땅은 혁명광장이었다고 한다. 중앙광장이라고도 불리는 넓은 터는 커다란 동상 세 개가 지키고 있는데, 지금은 주말마다 재래시장이 열린다. 광장은 예나 지금이나 많은 사람들의 삶을 지켜보고 있다. 3일차의 공식 일정은 블라디보스톡 혁명광장에서 마무리했다.
 
4일차 아침, 러시아 평화기행의 아쉬움을 뒤로한 채 공항으로 출발했다. 일행이 탑승한 버스가 금각만 다리를 가로질러 이동한 덕분에 러시아 극동항인 블라다보스톡을 마지막으로 눈에 담을 수 있었다. 공항으로 향하는 버스에서 일정을 되짚어보니 많은 생각이 교차했다. 떠나기 전에는 마냥 멀다고 느껴졌던 러시아가 기행 후반부에는 가깝게 다가왔다. 러시아 전역에 남아있는 우리 민족의 흔적 때문일 것이다. 선조들이 그토록 지키고자 했던 것은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오늘날 우리들의 역할에 대해서도 고민하게 되었다. 우리는 과연 역사를 잊지 않고 있는가. 신한촌을 쓸쓸하게 지키고 있던 기념비가 눈에 아른거렸다.


인천시민사회단체연대 2018평화기행 후원자 : 김영중 김말숙 윤대기 홍학기 나준식 장정구 송경평 박인규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시민과 함께하는 인터넷 뉴스 월 5,000원으로 소통하는 자발적 후원독자 모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