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에 뿌리 내린, 스페인 ‘산티아고’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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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에 뿌리 내린, 스페인 ‘산티아고’ 이야기
  • 배영수 기자
  • 승인 2018.12.18 19: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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⑪ ‘카페 까미노’ - ‘산티아고 순례길’ 콘텐츠화한 곳


카페 ‘까미노’의 외경. 신포시장 인근 골목에 위치한 2층짜리 카페다. ⓒ배영수

 
지난해 인천문화재단은 주민들이 직접 영유하고 창조하는 생활문화예술 활동을 민간 공간 차원에서 장려해주기 위해 ‘동네방네 아지트’라는 사업을 추진,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 인천시는 올해 문화예술과 산하 ‘생활문화팀’을 신설해 예산을 지원하며 직접 사업을 시도하는 등 활성화에 나서고 있다.
<인천in>은 지난해 동네방네 아지트 사업에 선정된 공간을 비롯해 미선정 공간 혹은 사업에 참여하지 않은 공간 중 생활예술 차원의 문화공간으로서 정체성을 갖고 있는 공간을 소개한다. 

 


카페 ‘까미노’의 정형도 대표. 옆 사진들은 그의 순례길 흔적을 그대로 기록한 결과물들이다. ⓒ배영수

 

◆ ‘산티아고 순례길’의 부름에 이끌린 ‘26년차 형사’
 
언뜻 보면 도인의 풍모도 지니고 있는 카페 까미노의 정형도 대표. 그를 만나기 전, 그가 지역 사진작가들과 상당한 친분과 교류가 있었던 점으로 미뤄 카페를 차리기 전엔 사진 일을 했었나 싶었다. 그런데, 까미노에서 만난 그는 무려 26년 가량을 경찰공무원으로 근무했다고 한다. 사고만 당하지 않는다면 충분한 노후가 보장되는 일을 뿌리치고 카페를 차린 것은 지금으로부터 불과 2년여 전의 일이었다.
 
“주로 형사계에 있었어요. 그러고보니 경찰 생활을 할 때도 중구 쪽엔 자주 있었네요. 2년 전 건강에 이상이 생겼어요. 앞만 보고 달린 데에 대한 스트레스인가 싶었죠. 그때 인생의 전환점이 다가온 것 같아요.”
 
그는 경찰공무원 시절 우연히 스페인 산티아고의 순례길(포털사이트 등에서는 ‘카미노 데 산티아고(Camino de Santiago)’라고 나와 있음.)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접했다. 지금으로부터 13년 전 일이다. 그저 TV프로였으니 ‘나이 먹어서는 한 번쯤 가 보자’는 막막한 생각만을 갖고 있었다. 그것이 발화한 시점이 바로 자신의 건강이 좋지 않았던 2년여 전이었고, 그렇게 심신이 아프고 지쳐있을 때 그 순례길 생각이 났던 것이다.
 
‘더 나이를 먹기 전에, 건강이 허락할 때 저 길을 갈 수 있을까, 더 늦기 전에 가자’는 마음으로 그는 경찰조직을 뛰쳐나왔다. 주변에선 다들 말렸지만, 오히려 아내는 하고 싶은 것을 하라며 격려했다. 그렇게 무작정 산티아고로 떠난 것이 지난 2016년 여름이었다. 이탈리아 로마서부터 시작된 여정은 스위스 융프라우를 거쳐 독일 뮌헨과 프랑스 파리로 이어졌다. 그리고, 다시 프랑스 남부 국경마을인 생장피데포르서부터 험준한 피레네 산맥을 넘어 산티아고까지 약 800km 정도가 되는 길을, 그는 순례길을 걷는 구도자처럼 걷고 또 걸었다.
 
“유럽에서도 불가피하게 차를 타고 가야 하는 곳들을 제외하면 대부분 걸어서 돌아다녔어요. 그때부터 제 마음 속에 무언가 말로 표현할 수만은 없는 변화가 찾아오더라고요. TV로 보고 말로만 듣던 산티아고에 대한 제 개인적인 의미를 찾은 거죠. 이 순례길에 대한 종교적 의미보다, 자아성찰, 그리고 자기 도전, 새로움에 대한 수용과 경험 같은 것이었어요.”
 
그는 당초 여행을 좀 더 오래 다니고 싶어했지만, 갑작스런 아내의 실직으로 더는 여정을 이어가진 못했다고 한다. 돌아온 후 뭔가 하자는 마음으로 아내와 카페를 해보자며 마음먹은 것이 2016년 7월 경. 카페를 준비하던 중 아내가 새 직장을 잡으며 정 대표가 마무리까지 계속 했고 한 달여가 지난 8월 말 스페인의 느낌이 물씬 풍기는 ‘카페 까미노’를 오픈했다.
 
“카페 분위기는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느낀 감정, 경험들을 이입해보자는 생각이 강했어요. 한국에 돌아와서 제가 여행 당시의 감정을 하나하나 잊어가고 있었던 데에 대한 아쉬움도 있었고, 또 돌아와 보니 산티아고 순례길에 대한 관심이 계신 분들이 생각보다 많았어요. 그런 분들에게 정보 같은 것들을 알려주자는 취지도 있었어요. 물론 시작 당시부터 지금까지 사실 상권이 올라오지 못했지만 아내도 직장이 있고, 아내나 저나 욕심이 별로 없으니 그냥 속 편히 운영하고 있습니다.” (웃음)
 


카페 ‘까미노’의 2층 전경. 전형적인 카페의 느낌인 1층에서 올라오면 산티아고에 대한 여러 기록들로 꾸며진 이 곳과 조우할 수 있다. ⓒ배영수


 
◆ “순례길 경험 통해 인생의 의미, 용기 찾았으면”
 
정 대표가 이렇게 자신과 비슷하게 산티아고 순례길에 대한 관심이 있는 사람들과 모임을 갖게 된 것은 지난해 10월부터였다. ‘산티아고의 까미노블루’라는 이름으로 매월 마지막주 토요일을 기본 모임일자로 정하고 산티아고 순례길을 이미 갔다 온 사람들, 혹은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 그리고 관심을 넘어 준비를 시작한 사람들과 이런 저런 정보를 나누고 추억도 꺼내는 식의 모임을 해왔다.
 
그러던 중 정 대표는 올해 인천문화재단이 매년 해오고 있는 ‘동네방네 아지트’의 공고를 봤다. 처음에는 지역사업 정도로 해석하고 큰 관심이 없었는데, 친분이 있었던 서은미 사진작가가 “까미노의 콘텐츠가 유니크한 부분이 있으니까 한번 참여해 보라”고 권유 했다.
 
정 대표 역시 다르게 생각해 보니 자신이 느낀 순례길에서의 감흥을 많은 사람들이 알고 나눴으면 하는 마음에 문을 두드렸다. 인천문화재단도 사업을 시작한 직후 순례길 여행에 대한 콘텐츠가 공모에 들어온 것이 처음인 만큼 관심을 가지고 사업지로 확정했다. 여행과 사진 등 기록에 대한 콘텐츠인데, 사진전부터 시작해 걷기 모임, 휴대폰만 들고 가도 사진을 잘 담아올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전문가의 강의 등 다양한 콘텐츠가 카페 까미노 안에서 이루어졌다.
 
이제는 산티아고의 순례길 경험을 여러 번 가진 그는, 순례길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여행지들을 그냥 관광하듯 지나치면 안 된다고 강조한다. 인천도 마찬가지란다. 자유공원, 월미도, 북성포구, 소래포구 등 관광지들이 많은데 그런 곳들 걸을 때 그냥 걷지 말고, 그곳이 주는 느낌을 내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느끼면서 속도가 좀 늦더라도 천천히 걸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게 그의 당부다. 
 
“지난 9월 말 그러니까 추석 지나고, 산티아고 순례길을 떠나고 싶어하는 분들이 계셔서 그분들 데리고 같이 떠났어요. 두 달 동안이나 카페 문을 내리고 간거죠. 다만 제가 가이드를 하는 방식은 아니고, 나이 드신 분들도 계시니까 각자 자신의 보폭과 체력대로 자유롭게 움직이도록 했습니다. 모든 인원이 나름의 순례길을 마치고 오면 그 일정에 제가 귀국일만 맞춰주기 한 거죠. 그런 활동이 알려지다 보니 인천문화재단에서 최근 했었던 생애전환기 강의에 ‘인생의 길’이라는 주제로 강의도 하게 됐죠.”
 
그가 이번 순례길 콘텐츠 활동을 하며 느낀 보람을 ‘실버 세대’에게서 찾았다. 새로운 경험에 대한 두려움이 많은 세대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쉽지만은 않은 순례길을 스스로 찾게 만든 것에 대한 보람이랄까. 그리고 카페 까미노를 통해서도 비단 실버세대 뿐만이 아니라 삶에서 어떤 식으로든 용기를 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도 함께 전했다.
 
“공공기관 지원과 무관하게 제가 까미노를 운영하는 동안엔 계속 이 콘텐츠를 유지할 겁니다. 인천엔 산티아고 순례길에 대한 정보를 오프라인으로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이 거의 없어요. 그것도 이유가 되는 겁니다.”
 


카페 ‘까미노’에 모인 일원들은 실제로 이렇게 산티아고 순례길에 올랐다. (정형도 대표 제공)

 

산티아고 순례길을 종단하던 당시 정 대표가 조형물 앞에서 포즈를 잡았다. (정형도 대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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