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가 섭섭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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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가 섭섭해
  • 은옥주
  • 승인 2018.12.20 0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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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사람과 사람 사이 - 은옥주 / 공감심리상담연구소 소장
 
 
 
딸의 강원도 출장에 동행하는 길이었다. 운전 중인 딸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뒷자리에 앉아있던 돌돌이가 크게 “엄마!”하고 불렀다. 다시 한 번 “엄마!”소리를 지르던 돌돌이가 또렷하게 말했다.
 
“할머니와 다른 방에 가서 자고 싶어.”
“할머니와 다른 방에 가서 자고 싶어.”
 
두 번이나 또렷하게 말했다. 내 가슴에 찬바람이 휘익 지나갔다. 말할 수 없이 묘한 감정이 마음을 가득 채웠다.
 
“왜 할머니가 싫어서 그래? 나는 너랑 같이 자고 싶은데!”
“엄마랑 많이 놀고 싶어.”
 
나의 말에 아이는 입장이 곤란한 듯 눈을 내리깔고 미묘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제 딴엔 용기가 많이 필요한 것 같았다. 아하, 아이는 모처럼 엄마와 좋은 시간을 보내고 싶었나 보다. 싫다는 돌돌이에게 같이 자자며 통사정을 하다가 씁쓸한 웃음이 났다. 아이는 엄마와 같이 있고 싶다는 마음이 너무 절실하고 커서 마음이 영 안 움직이는 모양이었다. 돌도 되기 전부터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했고, 종종 출근한 엄마 대신 내가 아이를 돌보았으니 그간 엄마가 많이 고프고 그리웠으리라.
 
나를 쳐다보지도 못하고 엄마를 부르짖는 돌돌이의 용기와 솔직함이 안쓰러워 마음이 짠해졌다. 재작년 학위 논문을 쓰는 딸을 위해 내 일을 뒤로하고 딸 집으로 출근해 돌돌이와 많이 시간을 보냈다. 둘이서 밤늦게까지 산책도 하고 숨바꼭질도 하며 나름 즐거웠었다. 젖은 솜처럼 몸이 무겁고 피곤해서 아무 것도 못할 것 같았던 날마저도 좋은 할머니, 좋은 엄마가 되려고 열심히 애썼었다.
 
바쁜 일을 마치고 허둥지동 딸 집으로 달려갔던 어느 날, 딸은 외출준비를 마치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집안에 막 들어오는 것을 본 돌돌이의 눈에 눈물이 가득 고이며 벌떡 일어서 손을 들어 나를 막아섰다.
 
“할머니 왜 와! 할머니 가! 할머니 가!”
 
아이는 가방을 들고 일어서는 엄마를 봤다가 나를 봤다가 어쩔 줄 몰라하며 나를 밀어내는 손짓을 했다. 내가 저를 얼마나 예뻐하고 잘해줬는데 나를 가라고 하다니! 실망과 배신감을 느끼며 ‘손자새끼 새가 빠지게 키워봐야 다 소용없더라’던 할머니들의 말이 귀에 쟁쟁했다.
 
딸을 보낸 뒤 우는 아이 앞에서 정색을 했다.
“돌돌아, 할머니가 싫어?”
 
아이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싫지는 않다고 했다.
“그럼 이제 할머니 가도 돼? 지금 할머니 갈까? 돌돌이 혼자 있을래?”
 
주섬주섬 일어나는 나를 보고 아이는 기겁을 하며 다리를 붙들었다. 도로 앉은 나에게 아이는 풀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할머니가 오니까 엄마가 갔어.”
 
할머니가 도착하면 엄마가 부리나케 나가는 것을 보던 아이는 할머니가 오지 않아야 엄마와 같이 있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나보다. 나는 아이와 눈을 맞추며 엄마는 공부하러 가야 되기 때문에 돌돌이가 집에 혼자 있으면 무서울까봐 할머니가 오는 거라고 말해주었다. 아이의 그런 조그만 행동에 마음이 상하고 섭섭하고 허무했지만 이해도 가는... 그런 변덕스러운 감정을 느꼈다.
 
벌써 8년째, 복지관에서 황혼육아 중인 할머니들을 대상으로 집단상담을 운영하고 있다. 자신의 사생활을 다 버리고 최선을 다해 키워주어도 아이들이 싹 돌아서 엄마아빠에게 가버릴 때 섭섭하다는 그들의 이야기가 공감이 간다.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한겨울의 고슴도치의 사랑에 사람의 사랑을 비유하는 것처럼, 때론 사람 사이에 ‘거리’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추운겨울, 고슴도치는 몸을 따뜻하게 하려고 친구들에게 다가가보지만 가까이 갈수록 서로를 찔러 상처를 낸다. 상처가 아파 다시 멀어졌다가도 어느새 또다시 가까이 다가가는 그런 고슴도치의 사랑이 인간의 사랑법이라고 한다.
 
내가 상처를 받고 섭섭해 한 것은 감정적으로 가까이 갔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이가 나를 좋아해주고 사랑해주기를 바라며 아이에게 중요한 존재가 되고 싶은 기대와 바람. 아이가 엄마를 좋아하고 엄마와 같이 있고 싶어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본능일 텐데 그 사이를 내가 비집고 들어가 그 사랑을 받아내고 싶어 하는 마음, 심리학적 용어로 보면 일종의 ‘밀착’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나를 밀어내는 돌돌이의 마음과 섭섭함을 느끼는 나 자신의 마음도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내 나이 곧 칠순, 아직도 때때로 미숙한 나를 발견하며 깨달으며 살아간다. 섭섭함 덕분에, 아이의 솔직함 덕분에 오늘도 나를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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