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강사법 사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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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강사법 사이에서
  • 윤현위
  • 승인 2018.12.19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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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칼럼] 윤현위 / 자유기고가·지리학박사


<MBN 뉴스 캡쳐>


법이 만들어졌지만 아주 오랜 시간동안 계류 중이었던 시간강사법이 내년에 시행된다. 대학에 관련이 없는 사람들은 어쩌면 큰 관심이 없을 수도 있겠으나 대학이라는 큰 조직 내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작지 않은 일이라 PC를 켠다. 그리고 지면을 개인적으로 활용해서는 안되지만 미리 말씀 드리자면 필자도 대학에서 강의를 하는 시간강사이다. 독자 여러분들께 양해를 구한다.

시간강사라는 말은 용어자체가 지독하다. 시간이라는 단어가 앞에 있으면 강사들은 그 어떤 곳에도 속할 수 없다. 자신의 할당된 강의시간에만 강사는 유효하다. 그래서 시간강사일지도 모른다. 2011년에만 하더라도 정말 강의시간 이외에는 강의시간 전에는 가 있을 곳도 마땅하지 않았다. 전공수업을 맡으면 강의를 준 친분 있는 교수님의 연구실에 가 있을 수도 있으나 교양강의를 맡으면 오갈데가 없는 신세가 된다. 이후에 학교마다 강사들을 위한 공간들이 생겼는데 학교마다 부르는 이름이 다 달랐다. 강사휴게실, 시간강사 대기실 등등........주차등록을 하면 주차바가 올라갈 때 자동차 번호 위에 시간강사라도 뜨는 학교도 있다.

공간뿐만 아니다. 강사는 성폭력과 학교폭력 교육대상에는 교원으로 포함되지만 학교에서 하는 건강검진과 학교재단에서 보유하고 있는 시설의 할인대상에는 늘 언제나 제외된다. 자신이 강의하는 학교에 큰 병원이 있거나 근사한 식당이 있어도 굳이 갈일이 별로 없다. 강사는 4대 보험이 아니라 3대 보험이다. 의료보험이 안되기 때문이다. 3대 보험도 온전한 1년이 아니라 8개월만 보장된다. 역시 강의를 하는 기간에 한에서다. 당연히 급여도 강의한 기간에만 나온다. 아직도 많은 학교를 제외한 상당수의 기관에서는 경력산정을 할 때 시간강의 경력은 정말 시간으로 카운팅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중고등학교에서 시간강사들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언제가부터 학교가 아닌 기관을 지원할 때에는 강의경력을 쓰지 않은지 오래됐다.

강사는 강의를 어떤 과정으로 받을까. 분명 학기마다 공채를 내는 학교들도 있지만 전공수업은 소위 알름알음 정해진다. 비어 있는 전공과목들은 대부분 해당교수의 출신학교 학맥이거나 그 학교를 졸업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걸 떠나서 전공에 가까운 사람을 찾는 경우는 거의 보지 못했다. 그게 아니더라도 안정된 네트워크에 속해 있는 사람들의 소개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그래서 특정 네트워크에 속하지 못하면 강의를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문제는 강의는 시작은 있어도 끝은 없다는거다. 보통 한국대학의 교수들은 두 부류가 있다. 강의를 부탁한다고 표현하는 교수와 강의를 준다고 표현하는 교수로 말이다. 표현이 어떠하든 강의가 시작할 땐 전화가 오지만 강의에서 배정받지 못하면 전화가 오지 않는다. 전화가 안오면 그냥 그걸로 끝이다. 과거에는 방학 때 전화가 많이 왔는데 최근에는 학기가 끝나는 6월과 12월에 전화가 오지 않으면 시간표에서 이름을 찾기 어려워졌다. 한국의 대학은 이렇게 돌아간다.

시간강사를 하다가 정규직이 되면 소위 자리를 잡는다고 한다. 문제는 순수학문이 저변이 넓지 않은 학문들은 정말로 강사로 남는 경우가 많다는 거다. 이들을 보통 전업시간강사라고 부른다. 4대 보험이 되지 않고 수업만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사람들이다. 물론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도 있고 한국연구재단에서 지원해주는 시간강사지원사업에서 일정부분 지원금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어렵기는 마찬가지이다. 생계가 불안하니 안정적이면서도 지속적인 연구를 지속하기 어렵다. 시간은 모두에게 공평하니 결국 돈이 되는 일을 먼저 할 수 밖에 없다.
시간강사법은 이런 점들을 보완하기 위해서 방학에도 학기와 같은 임금과 의료보험을 보장해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일정 학점을 보장하고 한 번 강의를 시작하면 몇 년간은 강의를 보장해 주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대학들, 특히나 한국의 사립대학들은 비용문제를 들며 난색을 표하고 있다. 전국민이 아는 소수의 명문사립대학들은 학생들의 졸업이수학점을 줄이거나 강의수를 줄여서 과거처럼 대형강의를 만들려는 꼼수를 쓰려다 반발에 부딪히고 있다.

강사들의 처우가 개선되면 학교에서 강의를 진행하지 못할 만큼 한국의 대학들은 가난한가? 그렇다면 강의를 줄일게 아니라 학생수를 먼저 줄여야 하는게 아닐까 싶다. 사립대학들은 국립대와 큰 차이 없는 지원금을 받으면서도 계속 돈 이야기를 한다. 학교의 건물들이 올라가는걸 보면 그저 답답할 뿐이다.

시간강사들에게 강의를 빌미로 세미나나 논문 혹은 잡일들을 시키는 이야기를 모으면 아마 우리말 큰 사전보다 두꺼운 책으로 나올 것이다. 이런 식으로 가면 학문후속세대가 소멸된다. 그러는 사이 논문대필을 하던 시간강사는 자살을 하기도 했고 어떤 시간강사는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라는 책을 내기도 했다. 전업시간강사와 학문후속세대가 사라지면 결국 학계도 사라진다. 물론 이 글을 읽는 전임교원들 중에는 필자를 괘씸하게 생각하거나 착각이라고 비웃을 사람들도 많다는건 필자도 잘 알고 있다. 이 땅의 모든 교수님들이 그렇진 않지만 자기 자식들에게 논문실적을 주기 위해서 이름을 올리는 교수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 또한 잊으면 안되겠다.

모든 강사들이 전임교원이 될 수 없고 또 바라지도 않는다. 그러나 교수가 아니어도 연구를 이어가고 싶어하는 이들은 많다. 시간강사법은 갑자기 많은 것을 바라는 강사들의 염원이 담긴 것이 아니라 기본적인 연구환경을 보장하기 위한 법에 가깝다. 그 동안 한국대학사회에서는 아예 그런 논의가 진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학이 바로서야 사회가 바로 설 수 있다. 강사법은 그 출발점에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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