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는 자신을 보는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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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는 자신을 보는 문
  • 한인경
  • 승인 2018.12.20 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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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다시 주목하는 영화 - 『디스커넥트 Disconnect』



<한인경의 씨네공간>은 2016년에는 그해 상영된 독립영화들을, 2017년부터 현재까지 ‘다시 주목하는 영화’라는 테마로 평론을 이어가고 있다. 영화는 이미지 너머로 발견하는 한 권의 철학서와 같다. 우리는 그 속에서 힐링하고 비상하며 철학적 사유로 삶의 의미를 읽는다.



다시 주목하는 영화
『디스커넥트  Disconnect』

“외로움의 파편들”
 
개  봉 : 2013.11.07(115분/미국)
감  독 : 핸라 알렉스 루빈
출  연 : 알렉산더 스카스가드, 제이슨 베이트먼, 폴라 패튼, 홉 데이비스, 조나 보보
장  르 : 드라마, 스릴러         
등  급 : 청소년 관람불가       



출처:영화『디스커넥트』


SNS는 정보 수집이나 인간관계의 확장이란 면에서 지금도 진화 중인 서비스망이다. 만일 이러한 소셜 네트워크가 없어진다면? 아마 상상만으로도 즉시 답답함, 불안감이 밀려들 것이다. 의식하지 않아도 우리는 숨을 쉬고 있듯이, 무엇엔가 빨려 들어가듯 컴퓨터 모니터 앞에서, 모바일에서 손가락을 놀리고 있는 자신을 보게 된다. 특히 우리나라는 이미 IT 강국이고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위험 가능성에 노출되어 있다. 아이들은 태어나면서 디지털 환경에서 자란다. 그들에겐 스마트폰이 놀이터로 편하고 재미나는 공간이면서도 지극히 개인적인 공간이기도 한 것이다. SNS의 장점은 흔히 하는 표현으로 천 가지도 넘고 단점 역시 천 가지도 넘지 않을까 싶다.

영화 『디스커넥트』는 SNS에 대한 경각심을 환기시켜주는 일종의 계몽적인 영화로 보기 쉽다. 그러나 필자는 러닝 타임 내내 감도는 외로움의 그늘에 포커스를 둔다. 탈출의 창구를 찾지 못한 그들의 종착지는 각종 괴물의 세계에서 멈추게 된다. 결국은 망망대해 홀로 떠있는 섬처럼 외로운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단절에 대한 호소는 무엇엔가의 집착으로 귀결되기에 십상이다. 마치 비에 흠뻑 젖은 낙엽처럼 외로움에 절어있고 그러면서도 누군가와의 대화에 목말라 하는 사람들을 그리고 있는 영화다. 탄탄한 구성의 미드 한 편을 본 것 같다.



출처:영화『디스커넥트』


『디스커넥트』에서 볼 수 있는 온라인 채팅,

페이스북
같은 학교 친구 벤을 골려 주기 위해 제이슨은 친구와 장난삼아 일을 벌인다. 페북에서 벤을 찾아 자신을 ‘제시카’라는 가상의 여자로 바꾸고 접근한다. 이후 재미 삼아 여자 누드 사진을 벤에게 보내고 ‘너도 해보라’고 메시지를 보낸다. 아무것도 모르는 남학생 벤(조나 보보)은 全裸로 게다가 ‘사랑의 노예’라는 글씨까지 몸에 써서 사진을 찍고 전송하고 만다. 이후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파밍 pharming
지금도 심심치 않게 보이스 피싱 voice phishing 피해를 봤다는 안타까운 뉴스를 듣곤 한다. 영화에서는 PC를 통해 피싱(파밍 pharming) 당하는 부부의 모습을 보여준다. 어린 아들을 사고로 잃은 후 데릭과 신디 부부 사이가 소원해진다. 신디는 외로운 사람이 자주 클릭하는 온라인 사이트에 접속하여 한 남자에게 속내를 털어놓으며 위로를 받는다. 남편 데릭은 출장 가서 도박 사이트에 접속한다. 이후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출처:영화『디스커넥트』


라이브 웹캠 Live WebCam
전체적인 스토리가 교육적이긴 하나 음란 사이트 관련 화면이 여러 번 노출되기에 가족끼리  보기엔 불편하다. 성인 사이트에서 음란행위로 돈을 벌고 있는 청년 카일과 특종 기사를 위해 채팅을 하던 기자 니나. 그리고 오프에서 만나는 두 사람. 性 이야기이고, 감성을 자극하는 흡입력 있는 특종이라 생각한 니나. 그녀는 ‘라이브 웹캠’에 대한 주의를 환기시키는 인터뷰에 성공하나 불법 사이트, 미성년자 유기, 착취라는 법망에 걸려 수사당국으로부터 정보원의 주소를 넘기라는 압박을 받는다. 이후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대가는 참혹했다.

‘당신의 프라이버시는 죽었다’ (2015, Lori Andrew. 심승중, 정경조, 김윤관 공역) 저자는 개인 정보가 공개되는 것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경고하고 있다.

“개인적인 글과 이메일을 공개하는 것은 감정적으로 상처를 줄 수 있다. 정신과 의사들과 철학자들은 어떤 사람에 대한 모든 정보는 ‘투명해야 한다’는 페이스북 설립자의 생각을 동의하지 않는다. 철학자 시셀라 보크Sissela Bok는 ‘비밀유지에 대한 통제는 공동생활의 한 가운데에서 개인들에 대한 안전밸브를 제공합니다. 정신병 환자들은 자아와 외부 세계 사이의 연결성이 무너진 것으로 묘사됩니다. 사람이 미쳐가는 것은 ‘무너진 댐처럼 세상으로 터져 나가는 것’을 말합니다.’라고 언급했다.”

벤은 목을 매달아 자살을 시도한다. 데릭과 신디 부부는 파밍 사기를 당하고 빈털터리가 된다. 기자 니나는 결국 자신을 믿고 협조했던 ‘카일’의 정보를 FBI에 넘겨준다.



출처:영화『디스커넥트』


친구가 없고 음악을 좋아하는 벤은 자신이 업둥이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 공간에 페북으로 노크한 제시카에게 벤은 속 이야기는 물론이고 나체 사진까지. 벤과 같은 청소년이 어디 영화 속에서만 있겠는가. 가족의 무관심 속에서 벤의 섬은 점점 더 고립되었고 터져버린 댐처럼 벤의 누드 사진이 오픈되었다. 벤은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엄마가 돌아가시고 경찰 퇴직한 엄격한 아버지를 힘들어 하는 제이슨. 장난으로 벤에게 제시카라 속이며 채팅을 시작했으나, 점차 벤의 솔직한 고백에 감정이입이 된다.
부부는 파밍 사기를 친 사람을 직접 찾아 나서게 되는데 그 과정을 지나면서 부부는 지나간 시간에 대한 애틋함에 공감하게 된다. 니나는 정보를 제공하지 않으면 정직당할 위기에 처한다. 카일은 미래를 생각해보라는 니나의 조언을 진심으로 받아들였기 그녀에게 협조했던 것. 카일에게도 니나에게도 상처만을 남긴다.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
19C 독일 시인 안톤 슈낙의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은 곱디고운 크레파스 색으로 그려진 동화 나라를 보는 것 같은 책이다. 예를 들어 본다. ‘보이지 않는 천사를 관찰해 보라, 아야, 아야, 봄의 삽질을 조심해라. 어린 민들레를 깜짝 놀라게 하라, 제비꽃 꽃다발로 프러포즈를 해보라, 딸기에 술을 부어 5월을 마시게 하라. 풀벌레 오페라에 귀를 기울여라.’ 등등
『디스커넥트』등장인물들에게 이 책을 선물하고 싶다. 책의 내용에 따르라는 의미보다는 이 한 줄을 읽을 여유를 권하고 싶다. 영화 속 거의 모든 등장인물은 일상이 된 굳어버린, 웃음기 없는 표정이다. 마치 쉼 없이 돌기만 하는 삶의 사이클에 그냥 던져져 있는 사람들 같다. 나름대로 의식의 성장은 있겠으나 기계가 아닌 인간이기에 부작용이 따를 수밖에 없다. 정신없이 돌아가는 일상 속에서 심호흡하면서, 가족들과 껴안아 보고, 주변도 돌아보는 여유도 챙기면서 말이다. 관계라는 것이 묘하다. 자칫 타이밍을 놓치면 너무 멀리 가버린다.



출처:영화『디스커넥트』


잊혀질 권리

디스커넥트, 단절과 연결 지어 잊혀질 권리를 생각해 본다.
온라인에서 과거의 사진 한 장, 과거의 올렸던 글로 심한 고초를 겪는 경우는 흔하다. 여러 포털 사이트에서 어느 정도 삭제 기능을 적용하고는 있지만, 아직도 해결해야 할 많은 과제가 남겨져 있다.

온 오프를 불문하고 서로가 잊혀지지 않아서, 잊지 못해서 힘들다.

죽고 싶을 만큼의 슬픔에 처한 사람을 보면 저 사람이 앞으로 어찌 살아갈까 걱정된다. 화석보다 단단할 것 같았던 그 기억은 세월이란 흐름에 희석되곤 하지만 글쎄, 완벽한 잊힘이 그리 쉽겠는가. 눈물이 날 만큼 기뻤던 순간들, 기억이 소실되어 가는 치매라는 질병, 수험생들이 밤을 새우며 기억에 애쓰고, 각자 나름의 이유로 각종 정보를 PC나 기타 장치에 저장하고 강력한 보안장치로 철통 경비를 세워 두는 등 기억하고 잊혀지는데 있어서 참으로 많은 에너지가 쓰이고 있다.

벤은 자신의 나체 사진이 온라인에 공개되자 자살을 시도한다. 의식불명인 아들의 노트북에서 가식적인 가족들과 살고 있다는 채팅 내용을 고스란히 벤의 아버지가 보게 되고, 남편 데릭은 신디가 어떤 남자와 자신의 부부관계에 대하여 은밀하게 나눈 대화를 파밍 사기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글자 하나 빠지지 않은 채로 출력까지 해서 읽게 된다. 또 어떤가 카일의 쌓여 가는 음란 영상들은 어쩔 것인가.



출처:영화『디스커넥트』
 

장자는 사람들과 함께 화목하게 사는 것을 사람의 즐거움이라 했다.(與人和者 謂之人樂) ‘인생수업’의 저자인 정신의학자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는 ‘관계는 자신을 보는 문’이라고도 했다. 데릭과 신디 부부의 수사를 맡았던 형사는 절대 이 일로 가족이 무너지면 안 된다는 당부를 한다.
꼬여진 상황을 정리해가면서 가족애, 부부애를 확인하게 되고, 니나는 업무 지향적이었고 이기적이었던 행동을 자책한다. 관계에서 신뢰가 한순간에 무너졌지만 포기하지 않고 좋았을 때를 회억해보고 가장 사랑하는 것은 무엇인가 재정립하면서 가족을 지켜낸다. 감독은 해피 엔딩으로 마무리 지었다. 그러나 스크린 밖 현실이라면? 관련된 사람들 삶 전반에 엄청난 고통과 변화를 주었을 것이고 새드 엔딩도 얼마든지 추측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소셜 네트워크는 어디에서나 접근할 수 있고 필수적이며 중독성이 있다. 소셜 네트워킹은 더 이상 놀이가 아닌 살아가는 방식인 것이다.” (‘당신의 프라이버시는 죽었다’ 中)

이 순간도 어느 곳에선가 조그만 모니터에 한 번의 깜빡임도 없이 두 눈을 집중하고 있을, 부모의 눈을 피해서, 이성, 친구, 직장 등등 익명의 상대로부터 화면에 올라오는 글에 집중하고 있을 또 다른 ‘벤’, ‘데릭’, ‘신디’, ‘카일’을 생각해본다. 특히 그들이 쏟아내는 외로운 파편들을 위로한다. 조심스럽게 덧붙이자면 한 그루의 나무를 마음 깊숙한 곳에 심으면 어떨까 싶다.

한인경/시인, 인천in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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