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복에 털모자, 멋지게 달리던 오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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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복에 털모자, 멋지게 달리던 오빠들
  • 유동현
  • 승인 2018.12.31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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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스케이트


낡은 고교 앨범은 추억 저장소이다. 까까머리와 단발머리를 한 그대가 있고 분식집 문턱을 함께 넘나들던 그리운 친구들도 있다. 3년간의 발자국을 남긴 모교 운동장과 교실의 모습도 아련하다. 빛바랜 사진첩에는 ‘인천’도 있다. 교정에 머무르지 않고 과감히 교문을 나서 사진사 앞에서 포즈를 취했던 그대들 덕분에 그때의 인천을 ‘추억’할 수 있다.
 
 
스케이트가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된 것은 1905년 미국인 선교사 질레트에 의해서였다. 1925년에 전(全)조선 빙상 경기 대회가 처음 개최되었다. 개항장 인천은 서구 근대 스포츠가 일찍 들어 온 지역답게 스케이트도 다른 지역에 비해 빨리 선보인 것으로 보인다.
전조선 빙상대회보다 1년 앞선 1924년 2월 10일 제물포청년회 주최로 제1회 전(全)인천빙상경기대회가 송림리(현 동구 송림동)에서 열렸다. 정식 빙상장이라기보다 공터에 물을 채워 얼린 넓은 얼음판이었다. 이것이 인천에서 처음으로 열린 공식 스케이팅대회로 기록된다.


 
1967년도 동인천고 앨범.

1959년도 제물포고 앨범. 송림동이나 주안 등 교외 지역으로 보인다.

 
선수들이 치르는 빙상대회는 교외 지역이었던 송림리에서 열렸지만 일반인들은 주로 웃터골공설운동장(현 제물포고)과 동인천역 앞 연못에서 스케이트를 즐겼다. 인천부(인천시)에서는 부민에게 겨울철 운동을 장려하기 위해 웃터골운동장 정구 코트 부근에 물을 뿌려 폭 15간, 길이 33간 (약 1800㎡) 규모의 스케이트장을 만들기도 했다.
1933년 도원동으로 공설운동장이 이전되면서부터는 이곳이 인천 빙상의 중심이 된다. 매년 겨울철이 되면 물을 채워 얼음판을 만들었는데 야간에도 개장한 것으로 보인다. 요즘 같은 최신식 라이트 시설이라기보다 간이 조명을 설치해 밤에도 스케이트를 즐긴 것으로 추측된다.

 

1940년대 인천고녀(인천여고) 앨범. 학교 마당에서 피겨스케이트를 즐기는 일본인 여학생들

1967년도 제물포고 앨범. 부잣집 도련님 풍의 ‘안경 5형제’

 
한동안 인천공설운동장은 인천의 대표적인 스케이트장이었다. 대회를 앞둔 선수들에게 우선 사용할 수 있게 해서 일반인들은 종종 선수들의 연습이나 경기 이후인 오후 시간에야 들어갈 수 있었다. 조금 타다 보면 기온이 올라가 물 반 얼음 반 진창 얼음판에서 달릴 수밖에 없었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운동장보다는 아예 주안, 부평 등 교외에 있는 논이나 공터의 사설 스케이트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당시 가장 인기 있었던 동네 스케이트장은 지금의 인천남중학교 정문 건너편에 있던 와룡양조장 저수지였다. 고구마에서 주정을 뽑은 검은 색 폐수가 공장 앞 큰 웅덩이로 흘러나왔는데 겨울이 되면 이곳은 훌륭한 빙상장이 되었다. 몇 번 넘어지면 옷에 보랏빛 물이 들었고 고약한 냄새가 났다는 것이 흠이었다.
 


1967년도 인성여고 앨범.

1967년도 동인천고 앨범. 겨울철 공설운동장

 
1990년대 중반 연수택지에 국제 규격의 실내아이스링크가 설립되었다. 1994년 인천 최초의 실내아이스링크 대동월드와 동남스포피아가 문을 열었다. 이 링크에서 밴쿠버동계올림픽 여자쇼트트랙 은메달리스트 이은별과 피겨스케이팅 국가대표 김나영 등이 배출되었다. 아쉽게도 이 두 링크는 운영난 등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현재는 2014인천아시아경기대회 때 사용되었던 선학핸드볼경기장이 선학국제빙상경기장으로 새롭게 변신했다.

 

1968년도 제물포고 앨범. 링크로 바뀐 학교 운동장.

 
유동현 / 전, 굿모닝인천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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