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생활화의 필요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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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생활화의 필요조건
  • 박병상
  • 승인 2019.01.10 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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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칼럼] 박병상 / 인천 도시생태ㆍ환경연구소 소장




도시에서 자전거를 탈 때 헬맷이 반드시 필요할까? 안전을 생각하면 언뜻 당연해보이지만 자전거 생활화를 먼저 생각한다면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그보다 중요한 일이 있다. 웬만한 간선도로의 가장자리에 전용도로가 확보되었더라도 일상에서 자전거 이용이 아직 낯선 우리나라가 특히 그렇다.

일상에서 자전거 이용이 생활화된 유럽에서 대부분의 국가는 헬멧 착용을 의무화하지 않는다. 착용을 권장하지만 벌칙을 두며 강요하지 않는 이유는 현장에 있다. 강요하면 자전거룰 이용하는 시민이 크게 줄어들기 때문이라는데, 그래서 그런가? 출퇴근이나 등하교, 관공서나 시장을 오고갈 때 자동차보다 자전거를 이용하는 시민 대부분은 헬맷을 쓰지 않는다. 하지만 레저용은 다르다. 벌칙 여부는 알지 못하지만 도시 외곽에 마련한 레저용 자전거 전용도로를 달리는 이용자는 어김없이 헬멧을 착용한다.

유럽은 언덕이 많은 우리보다 자전거 이용에 유리한 지형 조건을 가진다. 빙하기가 저물어가면서 수 킬로미터 높이의 빙하가 녹아 흐르면서 지형을 평탄하게 깎아 놓았기에 자전거를 타고 언덕을 오르내릴 일이 거의 없을 뿐 아니라 유서 깊은 도시마다 주거지역과 생활공간이 가깝다. 정책적으로 자전거 이용을 적극 유인하는 것도 한 몫을 한다. 도심에 주차장이 부족하다는 민원을 자전거로 해결한 경우도 있다. 파리에서 있었다는데, 자동차 주차장을 대폭 없앤 자리에 자전거 주차장을 충분히 확보하고 가장자리 차선을 자전거에 양보하자 주차장 민원이 오히려 사라졌다고 한다.

유럽 대부분의 도시는 도심의 자동차 제한속도를 시속 30km 이하로 규정한다. 차선폭이 좁고 차량 이용이 불편하지만 시민들의 불평은 거의 없다. 자전거가 편리하기 때문이다. 시민들은 차도와 보행자 도로 사이에 마련한 자전거 전용도로를 천천히 이용한다. 마음 급한 운전자가 경보기를 눌러대거나 전조등을 번쩍거리는 경우가 거의 없을 뿐 아니라 보행자들이 자전거 전용도로를 침범해 브레이크를 급히 밟아야 할 경우도 거의 없기 때문이다.

특별한 이유가 없으면 시민들은 승용차를 외면한다. 무거운 물건을 싣고 여러 군데를 방문해야 할 사정으로 어쩔 수 없이 승용차를 운전하는 시민은 자전거 이용자와 보행자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기에 낮은 속도를 당연하게 여긴다. 그들이 내 가족이나 이웃일 수 있다. 그뿐인가? 어제와 내일의 나일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기에 헬멧 없어도 사고가 거의 없다.

하루 만보 이상 걸으려 노력하는 나는 자전거를 타지 않는다. 주차장에 오래 세워두면서 배터리가 자주 방전되던 낡은 승용차를 결국 없앴지만 약속 시간을 어긴 일은 오히려 줄었다. 낯선 지역이라도 지하철과 버스, 그리고 걷는 시간을 미리 살피기 때문인데, 인천시내에 약속이 있더라도 다르지 않다. 헤어지기 전에 마신 술로 얼큰해지면 자전거가 불편해지는 탓이지만 도시의 생활자전거 활성화는 한껏 지지한다.

인천을 비롯한 우리나라의 많은 도시도 이제 자전거 생활화에 걸맞은 기반을 갖추었다. 완벽하지 않아도 집에서 학교와 관공서, 그리고 상가까지 자전거 전용도로가 이어져 있다. 하지만 이용자에게 안전이 전적으로 보장되는 건 아니다. 승용차들의 양보가 드물고 자전거 전용도로를 걷는 보행자가 적지 않다. 자전거 전용도로에 자동차를 세워놓는 운전자가 드물지 않고 오토바이가 자전거 전용도로를 빈번하게 질주한다. 그렇더라도 자전거를 이용하는 시민이 유럽처럼 늘어난다면 그런 문제는 차차 해결되리라.

자전거가 생활화되려면 기반 시설과 관련 제도가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자전거 이용자에 대한 배려가 우선되어야 한다. 이용자가 많을수록 도시는 자전거에 대한 정책적 배려가 커질 텐데, 요즘 지방자치단체에서 인기리에 도입하는 공유 자전거가 눈에 띈다. 자전거 활성화를 앞당기는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 최근 ‘COOKIE’라는 이름으로 공유 자전거를 시작한 연수구도 자전거 이용자가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아쉬움도 보인다.

시민이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는 공유 자전거는 함께 이용하는 이웃을 최선으로 배려해야 옳지만 미숙한 아용자의 행동이 눈을 어지럽힌다. GPS(위성추적장치)가 파악하기 어려운 지하주차장이나 시민들 이동이 활발한 지하철 입구에 공유 자전거를 세워놓는 이용자뿐이 아니다. 레저용 자전거 전용도로에서 공유 자전거를 이용하다 비바람에 노출되는 장소에 무책임하게 세워놓는 이용자도 흔하다.

도시와 이용자를 건강하게 만드는 자전거는 일상생활에 적극 활용될 때 의미가 크다. 공용 자전거가 늘어나면서 자전거 생활이 정착된다면 도시는 건강해진다. 미세먼지가 줄어들고 조용해지면서 깨끗하게 된다. 그만큼 안전해진 시민들은 건강해진 도시에서 참여의 폭과 깊이를 확대할 텐데, 그를 위한 시민의 배려가 아직 충분하지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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