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 쉬어갈 수 있는 작은 터가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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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를 쉬어갈 수 있는 작은 터가 되기를
  • 강영희
  • 승인 2019.02.13 06: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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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금창동 배다리 벽화이야기 3



벽화 10년이면 빛이 바래고, 칠 자체가 벗겨지거나 벽체의 부실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전국 곳곳에 다양한 방식으로 다양한 벽화가 꽃이 피었다가 지듯 멋부림을 하다가 낡아져 애물단지가 된다. 우리는 그런 면을 많이 고민했지만 견고하려면 적절한 예산과 관리가 지속되어야 해서 고민이 많았다.

이탈리아 어느 할머니가 오래된 벽화가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낡아지자 덧그림을 그렸는데 그것이 옳으나 그르냐 하며 세계적으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그리는 방식과 기법에 따라, 그리고 건물의 견고함에 따라 벽화의 생명은 결정된다.

견고하고 오래가는 방법이 있겠지만 적은 예산으로 관리가 어려울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럭저럭 3-5년은 잘 버틸테지. 오래가면 10년은 버틸 수 있을까 하며 작업을 했다. 건물주인이 색을 덧칠해버리면 어쩔 수 없이 한 해도 버티지 못할 수도 있었다.



@열린 창문을 빼꼼히 내다보고 있는 이 그림은 우리가 주차장 3층 벽에 아이가 고개 내민 모습을 보고 힌트를얻어 그려봤다고 한다.  _청암사


@좁은 골목에서 만난 매화벽화. 시멘트 벽을 하얗게 칠하니 좁은 골목이 훨씬 넓어졌다. _청암사


그렇게 2-3년간 반지하 팀이 작업한 벽화가 마을 곳곳에 자리를 잡았다. 그렇게 휑한곳, 어둑한 곳곳에 벽화를 채워 넣으니 많지는 않아도 마을은 밝아졌고, 다양한 사람들이 벽화를 찾으며 돌아다니니 재개발이며 도로개발에 공동화가 되어가던 마을은 사람들 목소리와 발걸음으로 채워졌다.

몇몇 팀이 우리가 미처 채우지 못한 곳을 또 다른 방식으로 채워가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그와 함께 우리가 가장 기뻣던 것은 주민들이 스스로의 집 주변을 고치고 다듬어가는 모습이 보이면서였다. 더러는 벽에 시멘트를 다시 바르기도 하고, 페인트를 바르기도 하고, 금이 간 담을 손보기도 했다.



@ 청암사 골목안 벽화


잘 알고 지내던 할머니 집이 어느날 그림이 그려지고 있었다. 당신 손녀가 어려서 부터 그림을 잘 그렸고, 대학까지 나왔는데 결혼하고, 애를 낳아 키우느라 손을 놓고 있었는데 할머니 댁을 오가면서 벽화가 그려지는 것을 보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하얗게 색칠한 할머니댁 벽 곳곳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그 마지막 그림이 <기타 치는 이장호>다. 그녀의 엄마, 그러니까 할머니 따님이 좋아하던 가수였다고 한다.

 

 

















@처음 그림을 그렸을 때의 모습. 벽을 하얗게 칠한 건 그림을 그리고 난 후다.  


모든 건물에 벽화를 그릴 필요는 없지만 그것을 계기로 마을이 달라져가는 것은 긍정적으로 느껴졌는지 언제부터인가 금창동 주민자치센타 (현 행정복지센타) 주변의 곳곳에는 다양한 수준의 그림들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반지하는 이후 다양한 지역의 벽화 요청을 받아 작업을 했었다. 그런 중에 다시 요청받은 것이 <산업정보고등학교>벽화다. 아마도 금창동에서 그린 마지막 벽화가 아닐까 싶다.  세무서와 창영교회 뒷편에 있는 학교인데 마을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벽도 위화감이 느껴질 정도의 높이로 옹벽 위에 담이 있다. 고갯마루여서 정문쪽은 1층이지만 담이 있는 마을에서는 1-2층 높이에 다시 담이 1층 높이로 30-50여 미터에 달하는 길이로 상당히 길어서 꽤 오랜시간동안 애를 먹었던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게 다양한 작업자들이 다양한 색깔과 모양으로 마을 곳곳을 채웠고 그로부터 다시 10여년이 된 지금 오래된 마을에 대한 환경개선사업며 도시재생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재개발이 해제된 이후에는 많은 들이 고쳐지고 새로 지어지기도 한다.

사람들이 많이 떠난 동네를 꾿꾿히 지키고 있던 어르신들이 하나 둘씩 돌아가시고, 새로운 사람들이 들어왔지만 아직 눈 인사도 나누지 못한 경우가 많다. 새 이웃들은 동네가 어둡고 무섭다는 말을 한다. 십 수 년 오가는 마을 길이 어둡다고 생각해본 적도, 무섭다고 생각한 적도 없었는데 지난해 마을사업을 하면서 적지않은 이웃들이 너무 어두워서 무섭다고 했다. 어두워서 무섭다기 보다 세상이 각박해지면서 타인에 대한 두려움을 키우게 되다보니 그렇게 느끼는 것이겠지만 씁쓸하다. 

내가 다니는 길의 거의 모든 사람들과 인사를 하며 지냈기에 몰랐던 두려움과 어두움이다. 작고 오래된 마을이어서 가능했을지도 모르겠다. 도시에서 그렇게 시골 마을처럼 편안하게 만났던 공간은 모르는 것들로 채워져가고 있다.

'하루를 쉬어갈 수 있는 작은 터'가 그리워지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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