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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광식
  • 승인 2019.03.07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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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유광식 / 사진작가

동구 송림동, 2018 ⓒ유광식


TV 없이 산지도 벌써 수년째다. TV를 안 보려는 것이 아닌 덜 보려는 의도가 있지만 사실 정보 취급 량은 더 많다. 어제는 저녁을 먹다가 가까운 지인이 공영방송 뉴스인터뷰에 출연한 것을 보았지만 평소 일처럼 무덤덤했다. 알 듯 모를 듯 가까이 붙어버린 미디어 환경이 새삼 더 놀랍단 생각이다. 기억에 의하면 우리 집 텔레비전 제품 변천사는 다음과 같다. 「네 발 흑백TV-컬러TV-비디오비전-큰집에서 가져 온 컬러TV-옆집 이사 갈 때 가져 온 대형 컬러TV-내가 산 LED TV」순이다. 대충 계산해서 평균 7~8년 주기로 바뀌어 온 것 같다. 지금 것은 모듈의 색 번짐이 심해져 아슬아슬한데, 부모님이 어떤 바람을 준비하고 계실지 모를 일이다. 

과거에는 바보상자라고도 칭해졌던 TV에 나온다는 것이 대단한 일로 여겨져 출세(농담조)의 지표로 삼을 만도 했다. 누군가가 TV속에 지나가는 모습만 비쳐도 배가 아플 정도였으니 말이다. 지난 일이지만 나의 형은 1990년 MBC 주말드라마 「몽실언니」 의 엑스트라로 몇 번 나온 적이 있다. 잠시 배우를 꿈꾸며 다녔던 학원에서 동원된 모양이었다. 형편상 그랬는지 형은 그 길로 나가진 않았고 현재 전혀 다른 분야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다. 요새는 TV 출현 자체가 좋은 모습인 경우가 적다. 뉴스만 한정시켜 본다면 좋은 일보다는 어떤 논란으로 출현하는 경우가 많아서 떴다 싶으면 입방아에 오르기 일쑤다. 이제는 가사를 바꿔 “텔레비전에 내가 나온다면 정말 죽겠네♬ 정말 죽겠네♪” 하며 불러야 하는 건지 세태가 원망스러울 따름이다. 부모님 세대까지만 해도 가전제품 하나둘 장만하는 것은 삶의 행복이었거늘, 요즘은 작은 스마트폰 하나면 바보조차 부러울 게 없다. 한편, 백남준 작가의 비디오 설치작품 「다다익선/1988」은 브라운관TV 수명제한으로 1년 넘게 꺼져 있다. 불 꺼진 TV, 예술까지 꺼지진 않겠지만 미디어 문명이 만들어낸 시대의 예술, 그 고민은 잘 해결돼야 할 것 같다.

그 옛날, 동네에 쩌렁쩌렁 봄노래를 재껴 울린 최신 써라운드 스피커가 내장된 텔레비전의 기억을, 그 시절을, 당신은 알고 계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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