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들이 모여 만든, 영혼의 나비 300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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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들이 모여 만든, 영혼의 나비 300개
  • 류재형
  • 승인 2019.03.14 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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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기뢰폭발사고 평화예술프로젝트를 진행하다

너울성 파도와 해일을 막기 위해 노화동 바닷가에 설치한 석벽과 드나들기 위한 철재 가름막

예동 김봉춘 어르신과의 대화
김상학 어르신과의 대화
 
 
2018년 8월 29일 프로젝트 사전조사_소청도

본격적인 소청도 폭발사고의 현장조사와 사진작업을 위해 입도했다. 이장님과 마을유지 박준복(현재 인천광역시 재정특별보좌관)씨의 안내를 받아 김봉춘(88세, 前 예동이장, 노인회장 역임), 김상학(80세, 마을유지), 나형철(72세, 현 노인회 총무), 박영직(75세, 1944년 생, 당시 2살이었음, 마을 유지) 어르신을 만나 향후 위령제에 관한 조사와 간단한 인터뷰를 통해 앞으로의 진행을 계획하였다.
 

2018년9월5일-25일 프로젝트 사전 회의_인천

인천에서 소청도 주민 박준복, 전 이성만 이장과 3차례에 걸친 회의를 통해 행사준비와 공연팀 섭외 등 조사 작업을 진행하였다.
 

2018년 10월18일 프로젝트 준비회의_소청도

인천관광공사에서는 국내 마케팅의 일환으로 소청도를 국립지질공원으로 지정하기위해 프레스콜을 개최하고 필자가 대청도를 안내하게 되어 문화와 역사, 지리를 설명하는 현장 안내를 맡았다. 15명의 중앙지, 지방지 언론기자들에게 소청도 프로젝트를 알리고, 다음 날 소청도로 넘어와 마을 지도자와 간담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옹진군의 협조를 위해 군수를 만나기로 시간을 정하고 10월 17일에 군수를 만나 행사에 대한 브리핑과 행정 협조를 부탁하였다.

 
2018년 11월3-4일 프로젝트 준비회의_소청도

총괄기획자 류재형이 마을을 방문하고 이성만 前이장(2002년 당시 마을 이장)과 이은철 이장(2018년도 이장)과 회의하여 전반적인 행사의 시간이나 장소 그리고 내용을 합의하였다.
이날 결정된 사항은 11월21일에 마을 분들이 준비할 수 있도록 주민과의 대화시간을 마련하기로 하였다. 마을주민들이 물 때 맞추어 바다에 나가 어업을 하기 때문에 그 날짜가 바로 바다 나가지 않는 날이기 때문이었다.
이틀에 걸쳐 숙소와 식사의 예약, 그리고 마을 분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인사를 드렸다.
 

2018년 11월21-22일 프로젝트 준비회의_소청도

류재형이 마을 주민과의 대화를 위해 입도하였고, 저녁 4시 경로당에서 회의를 개최하였다. 하지만 뜻밖에 5명밖에 나오지 않았다. 마을 주민들의 생각을 읽기가 어려웠다. 다음 날 22일(목) 오전 9시에 경로당에 공공근로를 위해 주민들이 거의 모인다 하여 이 자리에서 다시 한 번 회의를 하기로 하였다.
다음 날 오전 20여명의 마을 주민이 모인 가운데 행사취지나 진행사항을 보고하고 주민과 함께 만들어가는 축제형식의 공연을 제안하였다. 모두들 반갑고 밝은 느낌을 보여주는 마을 주민들의 표정에서 우리 팀은 힘을 얻었고, 다음 주에 진행하는 행사 준비를 소상하게 일러드렸다. 다들 위령제가 어떻게 진행될지 궁금해 하는 모습들이 역력했으나 일부의 주민들은 너무 오래된 일이라 본인하고는 상관없다는 눈치도 보였다. 마을 차원에서 함께 하는 행사라는 점과 이 행사의 이점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하였다.



소청도 예동 노인회관에 모인 마을사람들에게 행사일정을 알리는 유인물을 배포하였다.


11월27일 프로젝트 진행 1일차_ 프로젝트 진행을 위한 소청도 입도

드디어 많은 장비를 끌고 입도하였다. 공연팀의 장비도 많을뿐더러 마을 분들과 함께하는 공연 소품들도 꽤나 많아 상자도 많고 무게도 만만치 않았다. 예산상 차를 가지고 섬에 들어갈 수 없어서 더욱이 대합실에서부터 배까지 가는 거리도 꽤나 되고 쾌속선인 하모니플라워호의 배 위로 올리는데도 일일이 들어서 옮겨야 하는 불편함이 많았다.
 
마을을 입도해 트럭으로 짐을 옮겨 싣고 숙소에 행사장과 현장 주위를 돌아보고, 공연준비를 위한 체크리스트를 만들었다.
오후 4시에 마을 지도자와 회의를 개최하고 마을 단위로 협조를 요청하고 준비사항 등을 이야기하는 자리를 마련하였다.
행사를 치르기 위한 설명들은 이미 2-3차례 소청도에 들어와 논의 한 바가 있어 이 날은 구체적인 준비사항을 논의하는 자리가 되었다.
참석자는 이은철 예동이장, 박순천 대천면 소청출장소장, 이용희 어촌계장, 부녀회장, 류재형 총괄감독, 서승아 연출감독, 김선미 메이크업교수, 최다혜 어시스턴트, 안치영 동영상작가 등이 모여 2시간에 걸쳐 회의를 진행하였다.
행사준비를 위한 의자 배치나 오디오시스템, 전기 사용하는 문제, 뒤풀이를 위한 음식 준비, 참석자 독려, 군 부대원의 참석, 공연을 위한 소품 준비 등을 논의하였고, 이용희 어촌계장의 배려로 공연 당일 현장에서 사용할 홍합탕 재료를 다음 날인 28일(물 때가 맞지 않아 수요일에 캐어야하기 때문)에 부녀회원들과 프로젝트팀과 함께 홍합을 캐기로 하였다.
홍합이 있는 분바위 아래의 홍합밭은 소청도 주민을 위한 어장이고 허락 없이는 채취하지 못하는 곳이다.
홍합을 채취한 후 이것을 토요일에 사용하기 위해서는 북쪽 뱃터(파도가 없고 소청도의 모든 배들이 정박해 있는 곳)까지 운반해 바닷물 속에 저장해 두기로 한다고 했다.
 
 
11월28일 프로젝트 진행 2일차_부녀회와 만나다

9시에 우리 스탭진과 함께 이장님댁에서 행사점검 하는 회의를 하고, 오전 11시 물때를 맞추어 망태기와 홍합따개 등을 트럭에 싣고 분바위 아래 ‘작은삭금’이란 곳으로 내려갔다. 이곳은 소청도의 동쪽 끝단에 해당하며 분바위가 넓게 분포한 바위군들 중에 가장 동쪽에 위치한 곳이다. 예전 1960년대까지 이곳에서 동양석조회사가 스트로마톨라이트를 캐어 실어간 흔적이 아직도 남아있다.
홍합 채취 장소는 트럭을 둔 곳에서 꽤 먼거리로 바위 언덕을 하나 넘고 적어도 500m를 걸어가는 장소이다.
마을 부녀회 5분과 홍합을 따기 시작했다. 물이 점점 빠지고 드러난 바닥에 빽빽하게 차있는 홍합들이 드러났다.
부녀회원들의 능숙한 솜씨를 보고 지시에 따라 스탭진도 따라 했지만 쉽지 않았다. 장도리의 뒷부분 갈라진 형태의 홍합따개로 지렛대의 원리로 따는데 힘이 많이 들어간다. 홍합의 내부에서 연결된 근육질이 바위에 너무 단단히 붙어있어 따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홍합이 너무 다닥다닥 붙어있어 홍합따개가 들어갈 틈새가 없을 정도이다. 계속 허리를 굽혀 따다 보니 금방 허리가 아파 오른다.
물이 더 많이 빠지자 미역과 톳이 드러났다. 소청도야 말로 자연이 준 선물인 것이다. 필자가 2004년 이 곳을 방문했을 때와 별반 변화된 점이 없었다. 그만큼 자연이 잘 보존되어 있다는 것이다. 소청도 주민들도 이것을 잘 알고 있다. 이것이 후대에 오래오래 먹고 살 삶의 터전이며 해마다 12월에서 이듬해 2월까지만 캘 수 있는 겨울철의 주 수입원리라는 것을 말이다. 물 때맞추어 한 달에 딱 2회만 채취한다. 그것도 큰 것들만 골라서 채취한다.
정신없이 채취하고 나니 3-4 포대가 가득하고 준비해온 라면을 끓여 먹으며 피로를 푼다.
어깨걸이가 달린 포대에 담은 홍합의 무게는 30-40킬로에 달해 메고 움직이기가 버거웠다.
이장님댁에 돌아와 이 홍합을 다시 그물망으로 옮겨 담고 트럭에 실어 북쪽 탑동포구 어선으로 옮기고 바닷물 속에 넣고 돌아오니 하루가 훌쩍 지나갔다.
 
 

위령제 행사을 위해 소청도에 입도, 프로젝트팀과 함께 이은철 이장 댁에서 회의를 하다.

1960년대까지 스트로마톨라이트를 이곳 작은삭금에서 동양석재란 간판을 걸고 뭍으로 캐어나갔다.

분바위 앞에서 홍합을 캐다










 
 
11월29일 프로젝트 진행 3일차_ 마을주민과 공연 소품을 만들다

오전에 의상과 소품을 모두 꺼내어 정리하고 다리미로 의상을 다리며 공연 준비를 시작하였다.
김봉춘, 김상학 어르신의 인터뷰를 각자의 댁에서 하고 오후 3시 노화동 주민과의 대화를 위해 소청등대 가는 길 중간 남쪽에 있는 노화동으로 갔다.
이미 9월에 OBS방송의 [그리우니 섬이다] 12부작에 류재형 사진가가 출연했고 이를 본 분들이 있어 알아보시고 반가워했다. 이 분들의 소망은 한결같이 뭍에 나간 자식들이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이시다.
약 30여명이 사는 작은 마을 노화동의 마을회관에 모인 15명의 주민에게 위령제를 소상하게 브리핑하고 참석을 독려했다.
노화동에서도 바다에 나가 돌아오지 못한 분들이 20여명 이상이 되고 이에 대한 주민의 관심이 많았다. 물론 이 분들의 이름을 조사해 연명하고 같이 위령제를 지내겠다고 말씀드리니 모두들 환한 웃음을 진다.
1시간 가량 진행된 마을 주민과의 대화 중간에도 바쁘신지 몇몇 분들은 자리를 떠나 최종 남은 분들과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노화동 노인회장에게 돌아가신 분들의 조사를 의뢰하고 돌아왔다.
 


각각 90분에 걸친 김봉춘, 김상학 두 분의 소청도폭발사고의 인터뷰, 김선미 메이크업과 교수와 최다혜 어시스턴트로부터 메이크업하는 과정에서 처음 화장을 받아 본다고 너무나 좋아하신다.

김봉춘 어르신 부부

김상학 어르신 부부

노화동 주민들과의 대화



노화동 주민들과의 대화 후 기념사진.
 
 
오후 5시, 예동 노인회관에서는 마을 어르신을 위한 저녁식사가 준비되었고 25분이 모였다. 식사 후에 준비해 온 소품제작을 주민과 같이 시작하였는데 이 자리에서 서승아 예술감독은 마을주민에게 이 나비 소품을 제작하는 의의에 대해 설명한다.
 
“나비를 함께 만드는데 의의가 있습니다.
나비는 영혼을 뜻합니다.
행사 마지막에 커다란 새가 나를 때 참석한 모든 주민과 관계자들이 이 300개의 나비를 흔들어 같이 날려 소청도의 억울하게 돌아가신 영혼들이 좋은 곳으로 가도록 함께 염원한다는 마음으로 이 나비를 만드는 겁니다.
나비는 영혼을 의미하고, 새는 희망을 뜻합니다.
실제로 소청도에서 일어난 사건들이고 지금 살고 있는 분들이 그 분들의 자손들이고, 나비 한가지라도 함께 만들고 위령제도 함께 진행하는 의미에서 이 나비를 주민들과 함께 만들고 싶었습니다.”
 
소품제작은 저녁 8시가 넘도록 만들었고 마을 주민의 적극적인 참여로 목표 300개 이상을 만들어 놓았다. 특히 남자 어른신들의 참여로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었다.
 
 

예동노인회관에 모인 마을 주민들과 저녁식사하다.

저녁식사 후 위령제에 사용할 소품을 만드는 마을 주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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