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년의 회한, 하늘로 올려 보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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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년의 회한, 하늘로 올려 보내다
  • 류재형
  • 승인 2019.03.29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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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평화예술프로젝트, 공연하는 날






11월30일 프로젝트 진행 4일차_ 공연 팀이 들어오고 본격적인 공연 준비를 하다.

오전에 의상과 소품준비를 하고 오전 11시 배로 타악그룹 들소리 타오가 들어왔다. 북과 악기 그리고 소품, 오디오세트 등을 차로 들어오기가 쉽지 않았다. 공연 팀의 짐이 많아 여러 차례 하택후 대표와 통화하고 드디어 힘들게 소청도에 들어오게 되었다. 하루 빨리 접안시설이 갖추어져야 하모니플라워호 같은 큰 쾌속선이 소청도에도 자유롭게 차가 내리도록 접안시설 보완이 시급해 보인다.

문계봉 시인과 조혜영 시인도 들어와 팀에 합류하고 마을을 돌아본 후 시상을 떠올린다. 위령탑은 오늘 따라 맑은 하늘 밑에 더욱 빛나보였다. 이곳 소청도를 입도한 이래 계속 기온이 올라가고 바람도 불지 않아 하늘의도우심이 있다고 마을 분들이 말씀하신다. 내일도 좋은 날씨를 기대하며 우리는 위령탑 앞에서 머리 숙여 기도를 했다.

여러 차례 마을 분들을 만나고 이야기하였지만 일부 미신이나 굿을 한다고 이야기하는 분들이 있었다. 이를 설득하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만나는 분들마다 문화예술 공연이라고 이야기했다. 내일 정작 공연이 시작되면 얼마나 많은 분들이 올까 걱정스러웠다. 오랜 세월 그 들만의 방식대로 섬 생활에 젖은 고정관념들을 깨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문갑도에서 8년간의 경험을 토대로 꿋꿋이 진행해 왔다. 섬에 들어와 만나는 사람마다 이번의 위령제가 어떤 의미인지, 마을 사람들이 모여 단합하고 문화예술 공연을 통해 마음을 열고 하나가 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역설하였다. 관건은 내일 행사에서 섬 주민의 참여이었다.

공연장의 소품이나 악기를 배치하기 위해 공연 팀과 박순천 대청면 소청출장소장, 그리고 이은철 이장, 이성만 前이장과 프로젝트 팀은 현장을 돌아보고 의자나 소품, 공연 후 참석한 분들과의 뒤풀이 먹거리 준비를 체크하였다.

프로젝트 팀은 위령탑 옆에 세워둘 잘 휘어지는 보리수나무를 주우러 분바위 부근으로 이동하였다. 저녁 무렵 식사 전에 이장님 사모님인 김순옥여사께서 홍합을 넣은 부침을 간식으로 만들어주시면서 우리 팀의 수고를 고마워하였다.



북 공연을 하는 들소리 타오도 소청도에 들어오고 현장을 들러본 후 행사진행에 대해 회의를 진행하였다. 유난히 날씨가 맑고 쾌청해 내일 공연을 준비하는 마음이 밝았다.





2002년 위령탑을 세을 당시에 이장이었던 이성만대표와 프로젝트 팀은 보리수 나무를 주워와서 위령탑 양쪽으로 세우고 고정시키는 작업을 진행하고, 저녁에는 프로젝트팀이 이장님 댁에서 모여 사모님의 지지미 대접으로 환담을 나누며 최종 점검을 하였다.
 
 
12월 1일 프로젝트 진행 5일차_ 드디어 성공적인 공연을 하다

아침부터 박순천 대청면 소청출장소 소장님이 분주하게 움직인다. 공연 현장에 의자를 배치하고 책상을 가져왔다. 업무 중 다친 불편한 다리에도 불구하고 적극적으로 도와주신 열정에 감사드린다.

이은철 이장님은 프로젝트팀과 탑동포구로 넘어가 바닷물 속에 저장한 홍합을 꺼내 현장에 커다란 솥 단지을 걸고 물을 끓이고, 부녀회장님과 부녀회원들은 홍합을 삶는다. 악기와 북이 세팅되면서 예행연습을 하니 벌써 12시, 행사시간 오후2시는 다가오고 내심 조바심이 났다.

얼마나 많은 주민이 참석을 하느냐는 것이다. 소청도 주둔 부대원들이 이성만 前이장의 주선으로 부대장의 배려로 책임자의 인솔 아래 20명 이상 외출(쉬는 토요일이라 가능했다)해 공연에 참석하기로 하여 마음이 든든했다. 소청도 부대와 마을주민이 만나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데도 기여하는 효과가 있었다. 이날 외부에서 20여명의 관광객과 배동수 도민일보 기자, 임기성 사진가 등이 들어와 같이 합류하였다.

드디어 공연이 시작되는 오후 2시 마을 분들이 내려오기 시작했다. 모이신 마을 분들이 약 40여명, 군인들 외부 인사 까지 합쳐서 70명이 넘는다. 대성공이다. 주민이 직접 만든 나비를 2개씩 나누어 드리고 소원 띠에 돌아가신 분들의 이름을 쓰며 자신이 소망하는 것들을 적어 나무에 매달았다. 위령탑을 옆으로 두고 한 쪽으로는 바다와 정면으로 멀리 폭발사고 희생자가 묻힌 산자락을 앞에 보면서 공연팀의 악기가 배치되었다.

 
 


들소리 타오 하택후 대표는 공연을 하기 전 폭발사고가 있었던 현장, 바로 그 자리에 서서 바다를 향해 경건하게 기도를 올린다.






마을 주민은 소청도를 위해 자신의 염원을 글에 새기고, 나무에 매 달았다.












 
 
우렁찬 타악그룹의 행사를 알리는 사전공연이 시작되고 이은철 이장님의 시작을 알리는 평화의 메시지 낭독, 그리고 박춘봉 대청면장의 축사, 그리고 해병대 65대대 대대장을 대신해 작전장교 박태상 소령이 축사를 하고, 드디어 멀리서 행위예술가 서승아 춤꾼이 북의 울림에 맞추어 등장을 하였다.
그 뒤로는 마을 주민 4명이 흰 천을 들고 도열해 같이 들어온다. 의의가 있는 것은 당시를 증언해 준 마을 어르신들이 그 대열에 있다는 것이다.

온 몸에 흰 분장을 하고 몸으로 보여주는 20여분 간의 춤이야말로 장관이었고 앉아 있는 관객을 하나로 모아 억울한 영령들을 잘 하늘로 모시는 제의 춤을 보여주었다. 일부 주민들눈에는 글썽거리시는 눈망울이 역력했다. 그 동안의 오랜 세월동안 잊혀지고 딱딱게 굳어진 마음들이 순식간에 녹아내리는 순간이었다. 서승아 무용수의 흰 천으로 온 정성을 모으고 주민이 한 마음으로 흔드는 흰 나비, 그리고 커다란 북의 울림, 춤의 끝자락에서 무용수는 흰 천을 둘둘 말아 위령탑으로 올라가 제단에 놓는다. 72년만의 회한을 한꺼번에 모아 하늘로 올려 보내는 순간이다.

이 때 5m 후방에서 커다란 초록색의 새가 높은 사다리 위에서 날개 짓을 하였다. 이 커다란 새는 희망을 상징하고 영원히 죽지 않는 불사조처럼 아름다웠다. 주민들의 손에 들린 작은 나비들도 같이 흔들어 영혼들을 위로한다. 그리고 서승아 무용수는 내려와 추모시를 읇는다.
 













 
 
이제는 외로움을 떨쳐버리고 꽃잎처럼 가볍게 하늘에 들라
                                                           - 문계봉 시인
 
옥빛의 바다와 생물들이
하나로 어우러져 살아가는 곳
넓은 어머니의 마음으로
그 모든 것을 품은 사람들이
소박하고 순정하게 살아가는 곳
소청도
 
우리는 지금,
우리 앞에 놓여있는 모든 시간들과 함께
꽃잎처럼 가볍고
새처럼 자유롭게 날 수 있을까?
언제나 우리의 삶을 휘저어 놓는,
그리하여 우리의 발걸음을
자주 머뭇거리게 하는
납처럼 무거운 역사 혹은 기억들...
 
그 기억 속에서 떠오르는 사람들이 있다
외따로 존재하는 섬의 고독보다 더욱 외롭고
더욱 처연했던 사람들
파도가 실어오고 실어나가는
허다한 그리움 속에서도
결코 호명되지 않거나
쓸쓸하게 잊혀진 이름들이여
 
그들은 소청의 자식들이었다
그들은 남은 이들의 부모이자
형제였고 친구이자 이웃이었다
그 동안 잊고 있던 우리의 역사이자
우리 자신들의 모습이었다
 
그리하여
바다조차 얌전히 숨을 죽이고
바람조차 산중턱에 머물며
너그럽게 쉬고 있는
늦가을 볕이 맑고 유순한 오늘
마음을 담아 그들을 불러본다
 
정성을 담아 또다른 우리를 불러본다
억울하고 외로운 영령들이시여
바다와 고독을 마주하지 마시고
우주의 별들과 함께
꽃잎처럼 가볍게 하늘로 오르시어
이제는 부디 행복하소서
이제는 부디 편히 쉬소서
 
다만 별이 빛나는 섬 , 소청도의 자손들을 돌보시고
슬픔과 가난이 결코 없는 섬
사랑과 여유가 넘쳐나는 섬
항상 기쁨의 웃음꽃이 만발하는 섬
이제껏 우리들 삶의 요람이었고
앞으로도 대대손손 아름다울
이곳 소청도를 굽어보며 지켜주소서
 
우리 역시 그대들을 기억할 것이다
저 푸른 바다를 앞에 둔 우리의 약속이다
 
 
추모시에 이어 들소리타오의 흥겨움과 기쁨의 북소리로 이어져 1시간의 공연이 끝을 맺었다.
막걸리와 홍합탕의 홍합을 꺼내 먹으면서 서로 기쁨의 대화를 나누었다. 날씨도 도와 주었다. 바람 한 점 없고 바다는 고요했다. 공연 후 모든 마을 분들은 기뻐했고 눈물을 글썽이며 마음이 편해졌다고 말한다. 삼삼오오 기념사진을 찍으며 아쉬워했다. 내년에도 또 공연을 해 달라신다.
 
 





마을 부녀회분들 과 공연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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