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민한'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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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민한' 아이
  • 장현정
  • 승인 2019.04.10 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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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 장현정 / 공감미술치료센터장

 
“우리 아이가 좀 어려서부터 예민했어요.”
“어떻게 예민했나요?”
“잠도 잘 안자고 편식도 심하고 짜증도 많고요...”
 
생각해보니 어머님 상담을 하다가 ‘우리아이가 예민해요’라는 말을 참 많이 들어보았다. 이 말은 우리아이가 예민하니 ‘특별하게 마음 써서 돌보아 달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또한, 엄마로서 ‘그동안 이 아이를 돌보는 것이 너무나 힘들고 어려웠다’라는 의미도 담고 있다.
 
기질이 까다롭고 다루기 어렵고 예민한 아이들은 존재한다. 아이의 타고난 기질이 예민한 것인지, 어머님의 예민성 때문에 아이의 예민한 반응이 촉진되었기 때문인지, 아이가 스트레스가 많고 불안해서 현재 예민해진 것인지는 좀 더 살펴보아야 한다.
 
‘예민하다’로 네이버 국어사전을 찾아보니
1.(형용사) 무엇인가를 느끼는 능력이나 분석하고 판단하는 능력이 빠르고 뛰어나다.
2.(형용사) 어떤 문제의 성격이 여러 사람의 관심을 불러일으킬 만큼 중대하고 그 처리에 많은 갈등이 있는 상태에 있다.
 
오잉? 단어사전을 찾아보고 느낀 점은 생각보다 ‘예민하다’라는 말의 정의가 긍정적인 의미라는 것이다. 우리 일상에서 ‘예민하다’는 어떻게 쓰이고 있을까?
 
“오늘 피곤한가? 좀 예민한 것 같네.”
“너 왜이렇게 까다로워. 예민하게 구네.”
 
누군가 나에게 “너 예민하다”라고 하면 기분이 좋지 않다. 일상적으로 ‘별것도 아닌 것에 까탈스럽고 까다롭게 구는 과민함’의 의미로 쓰이기 때문인 것 같다. 그래서 ‘예민하다’라는 말을 들으면 억울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엄마도 어렸을 때부터 나에게 예민한 아이였다고 했다. 엄마가 예민함의 이유로 드는 것들은 보통 ‘까다로운’에 속했다. 나는 모유맛과 분유맛을 구분해서 모유만 달라고 하는 아이였고, 엄마 말고 다른 사람은 안아보지도 못하게 울었으며, 등센서가 있어서 침대에 내려놓지도 못하게 했었고, 벽지와 구조가 같은 윗층집 현관에서도 낯설어 하며 울었다고 한다. 어렸을 때 편식이 꽤 심한 편이었고 잘 먹지도 않고 자주 아파서 엄마를 속 끓이게 했다고 했다. 이렇게 내용을 기록해보니 정말 예민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물론 정도의 차이가 있겠지만, 저 시기에는 자연스러운 행동들이다.
  
엄마는 나를 예민하고 앙칼지고 얄미운, 때때로 이기적인 아이로 묘사하기도 했다. 앞가림 잘하고 야무진 아이였다가 엄마의 뜻을 거스를 때는 나의 문제를 지적하는 말로 ‘예민한 아이’라는 말을 썼었다. 
 
그래서 나는 정말 내가 예민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머릿속으로 생각을 많이 하고 분위기도 살피는 편이었기 때문에 정말 예민했었을 것이다. 그런데 대학교 때부터 20여간 알고 지냈던 친구가 어느 날 내게 ‘둔감하다, 편안하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예민한데? 나는 그렇게 편안한 사람이 아닌데? 그때 나는 조금 놀랐다. 옆자리에 앉은 같이 일하는 동료도 나를 비슷하게 보고 있었다. 처음에는 이 사람들이 내 속을 몰라서 그런가보다 했다.
 
그런데 몇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정말 내 안에 ‘예민한 부분’ 이외에 다른 부분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예민하지 않은 사람일 수도 있다는 사실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 이야기들은 나 자신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알게 해주었다. 엄마가 아이를 바라보는 방식, 아이에 대해 규정하고 단정하는 내용들이 얼마나 강력한지도 깨닫게 되었다.
 
‘우리 가족은 수학을 못해’
‘우리 가족은 체육을 못해’
라는 집안 어른들의 말이 기억 난다. 나는 정말로 수학과 체육을 잘 못했는데, 함참 시간이 지난 후에야 이유를 알게 되었다. 나의 무능을 바라보는 것이 두려워 안했던 것이다. 안해서 못하는 것이었다. 우리 가족이라고 못하는 것이 아니었다. 
 
마찬가지이다. 예민한 아이라서 예민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 지금 예민해져 있을 수도 있고 사실은 엄마가 예민한 것일 수도 있다. 아이들에 대한 섣부른 판단, 섣부른 평가와 표현은 바람직하지 않다. ‘예민한 아이’라는 표현을 ‘민감한 아이’, ‘섬세한 아이’라는 표현으로 조금 바꿔보거나, 아예 그런 표현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 더 좋으리라 생각한다. 아이들은 아직 자라는 중이고 더 자랄 것이기 때문에.


 

<그림출처 https://blog.naver.com/bbuijeongbu/2211480505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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