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아픈 아이들에게 다가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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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아픈 아이들에게 다가가기
  • 이정숙
  • 승인 2019.04.18 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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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8화 선택하고 결정하는 게 너무 힘들어요 - 이정숙 / 구산초교 교사

샘물반 아이들 5
 
 
작년에도 샘물은 2학년을 맡았었다. 작년 아이들 중 매일 아이들과 싸우고 괴롭히는 지우이라는 짓궂은 아이가 있었다. 샘물은 매일 싸움에 돌입하는 그 아이를 감당하느라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생각해 냈다. 하루는 ‘친구를 잃어버리는 법’ 책을 읽어주고는 ‘친구와 친해지는 법’이라는 제목의 간이 책을 만드는 활동을 하기도 하고, 민원이 발생하면 내 기분이야기 하기, 존중하기, 배려하기, 사과하는 말하기 등의 방법을 알려주고, 비밀친구 만들기 친구 도와주기 등 여러 가지 활동을 했었다. 인성이라는 덕목은 하루아침에 연습하거나 가르쳐 얻어질 수 있는 것들이 아니라 스며들 듯 일상에서 몸에 배어 조금씩 익숙해지면서 성장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던 어느 날 샘물은 자기에게 소중한 것 8가지를 각각의 종이에 하나씩 적으라고 했다.
 
아이들1: 사람을 써요?
아이들2: 물건은 안돼요?
아이들2: 난 세 개 밖에 없는데.
아이들3: 꼭 8가지여야 돼요?
아이들4: 열 가지는 안 돼요?
 
아이들은 여덟 개라는 게 영 마뜩치 않나보다. 한 소리씩 해댄다. 샘물은 뭔가 비밀을 들키면 안 된다는 듯이 웅크리고 손을 덮으며 쓰는 아이들 사이를 슬슬 다니며 언 듯 언 듯 보이는 글자들을 살핀다. ‘돈, 엄마, 아빠, 강아지, 태양?.... 선생님?’
선생님을 쓴 하주연이는 슬쩍 샘물을 쳐다보며 보란 듯이 손짓을 한다. 샘물은 손을 입에 가져다 대며 ‘알았어~’라고 입모양을 만든다.
 
샘물: 다 썼지? 책상 위에 카드 여덟 개를 뒤집어 놓고... 자,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우리는 그 소중한 사람들, 혹은 그 보물들을 갖고 가다가 풍랑을 만났어요. 그래서 배가 가라앉지 않도록 두 가지를 버려야 했어요 .....
 
샘물은 계속 이야기를 해 나가면서 소중한 것 두 개가 남을 때까지 카드를 구겨서 바닥에 버리도록 했다. 강아지 구피를 쓴 카드를 버린 아이는 거의 반 울음이 터졌다.
 
태민: 어~~ 너무 미안해요. 안 버리고 싶어요.
혜인: 난 진주할머니 버렸어요. 어차피 죽을 거니까.
샘물: 헉! 할머니가 들으시면 괜찮으실까?
혜인: 괜찮아요. 못 들어요.
 
버린 이유도 다양하고 버린 것들도 다양하다. 소중한 것들을 버려보면서 아이들은 자기에게 소중한 것이 뭔지 깨닫고 소중한 것에 대해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배우게 된다. 대부분 나 자신이나 엄마, 아빠가 마지막까지 카드에 남게 되는데 몇몇의 아이들은 돈, 게임기, 핸드폰 등을 버리지 못했다.
 
샘물: 돈? 그래 중요하지!
혜준: 우리 엄마가 돈이 제일이라고 했어요.
가림: 야 그래도 엄마 아빠도 없는데 돈이 있으면 뭘 하니?
혜준: 아냐, 돈이 있어야 살 수 있어. 돈이 없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거야.
지훈: 난 엄마야. 엄마가 돈 벌면 되지 뭐.
현이: 야, 엄마보다 아빠가 더 잘 벌어.
 
제법 자기 나름대로의 논리로 갑론을박이 이어진다. 아이들의 논리는 어른들을 닮아 간다. 샘물은 그 아이들의 말을 가만히 들을 수밖에 없었다. 드디어 마지막에 하나만 선택하게 했을 때 아이들은 경악하며 소리를 질렀다. “싫어요 안 버릴 거예요. 선생님 잔인해요.” 하면서 차마 버리지 못하고 망설이다가 대부분 엄마를 선택한다.

그 때 인상적인 아이가 있었다. 마지막 두장에서 유민이는 강아지와 아빠를 선택하다 최후로 아빠를 선택했다. 유민이는 친구들을 잘 챙기고 도와주는 어른스런 아이인데 표정이 어두웠다. 머리를 늘어뜨려 반쯤 얼굴을 가리고 있었는데 상담 때 어머니 말로는 본인이 귓불이 찌그러져 있다고 생각해서 그런다고 했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귓불이 이상하지 않았다. 엄마도 이상하지 않다고 했다. 상담시간에 오신 엄마와 아빠는 아주 다정다감하고 아름다운 분들이었다. 엄마가 오른쪽이 마비되어 약간 어색하기는 했지만 그리 크게 티가 나지 않았고 유민이는 엄마를 꼭 닮아 예쁘게 생긴 아이였다. 언젠가 ‘어렸을 때 기억나는 내 모습’을 그려보고 글로 써 보는 활동이 있었는데 “죽고 싶었는데~ ”라는 말을 써 놓아 놀랐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친구들과 떠들고 늘 눈이 크고 예쁜 얼굴 만화 그림을 그렸다. 하지만 수업시간에 질문을 하면 입을 굳게 다물었고 발표도 하지 않았다. 사진을 찍으면 화난 표정을 지었다.





엄마의 장애가 아이를 훌쩍 철들게 했는지, 아니면 우울하게 했는지 모를 일이었다. 놀이시간에는 친구와 잘 놀지도 않고 혼자서 늘 그림만을 그렸는데 그게 유행처럼 여자 아이들 사이에서 경쟁이 붙더니 2학기 때에는 너도 나도 그림을 그렸다. 샘물은 이면지 박스를 따로 만들어 그림 그리는 종이를 대 주었다. 그리고 2학기 어느 날엔가 부터 유민이는 잘 웃고 잘 떠들고 발표도 잘하며 샘물에게도 과감하게 말을 건넸다. 어떤 게 계기가 되어 이 아이를 편안하게 만들었을까. 그림 그리는 게 힐링의 공간시간이 되었던 걸까.

샘물은 다시 2학년 담임이 되었다. 작년 2학년 아이들이 너무나 천사 같아서 그 어여쁜 아이들과 지내는 시간을 다시 또 갖고 싶었나보다. 하지만 같은 2학년이라고 똑같은 아이들이 아니었다. 작년에 비해 아이들이 너무나 어렸다. 갑자기 유치원 반 아이들을 맞이한 것 같았다. 자기가 잘못하고는 괜히 울고 떼쓰고 자신의 생각을 말하지도 못했다. 글자도 거의 못 읽고 쓰는 수준의 아이들이 너댓 이나 되었다. 이게 웬일이란 말인가.
 
샘물 반에는 아이들이 열광하는 사탕뽑기 기계가 있다. 수업 중 질문에 좋은 답을 내놓거나 자발적으로 발표 하거나 과제를 잘 하면 “코인을 획득하셨습니다”라고 말하면 그 어려운 말을 냉큼 알아듣고는 제일 큰 소리를 지르며 좋아한다. 사탕을 뽑는 아이들 외 다른 아이들도 마치 경기를 구경하듯 그 기계를 둘러싸고 아슬아슬 대롱대롱 매달렸다 떨어지는 사탕을 응원하고 아쉬워한다. 하루는 사탕의 유혹을 견디지 못한 아이에 대한 민원이 발생하였다.
 
석현: 동민이가 저기 사탕 뽑기 상자에 있는 사탕 맘대로 가져갔어요.
샘물: 그으래? 동민이 오라고 해! 너 사탕 가져갔어?
동민: 예.(움츠러든다)
샘물: 왜?
동민: .....
샘물: 그거 나쁜 일인지 알았어?
동현: 예.
샘물: 그런데도 가져갔어?
동현: ......
 
평소에 유쾌한 동민이 어깨가 축 쳐져 있었다. 샘물은 슬며시 웃음이 났다. 뭔가 도와줘야겠다 싶었다.
 
샘물: 그런데 다시 갖다 놨잖아? 그렇지 않아?(눈치를 보며)
동현: 예. 갖다 놨어요.
샘물: 거봐! 그렇네(안심). 도루 갖다 놨네. 그럼 이렇게 말하는 거야. ‘나도 모르게 사탕을 가지고 갔다가 나쁜 일인 줄 알고 갖다 놨어요. 죄송합니다.’ 이렇게. 알았지?
동현: 네에~!(안심)

 

 
 
아이들은 자신의 생각을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몰라 그냥 혼나기도 한다. 그래서 억울해 하거나 말하길 포기한다. 그럴까봐 샘물은 애써 아이의 생각을 대신 말해준다. 그러다보면 아이가 자기 생각을 말할 수 있을 날이 올 거라 생각한다.
 
얼마 전에는 비밀친구, 일명 마니또를 발표하는 날이었다. 두 주 동안 비밀 친구에게 어떤 방법으로 얼마나 잘해 줬는지 발표한다. 어린 친구들은 ‘잘 해준다’는 게 뭔지를 모르기 때문에 ‘잘해주는 게’ 뭔지 하나씩 알려주어야 했다. 두 주 동안 말 걸어주기, 칭찬해 주기, 웃어주기, 슬쩍 모르게 사물함에 편지 써서 주기, 자리 청소해 주기, 모르는 거 알려주기, 편들어주기, 도와주기, 같이 놀아주기, 친절하게 대해주기 등등을 알려주었다. 다행히 아이들은 알아듣고는 조금씩 자기가 한 일들을 이야기 한다.
 
현지: 저는 중만이에게 웃어주고 글씨 잘 썼다고 칭찬도 해 주었어요. 편지도 넣어주고 사탕도 한 개 주었어요. 아침에 인사도 해주고 지인이랑 막 얘기할 때(싸울 때) 편들어 줬어요.
샘물: 와, 많은 걸 해줬네. 중만이는 좋았겠는데? 중만이 알았니? 몰랐어? 현지가 중만이 한테 잘해 줬으니까 너무 고맙지? 뭐라 한 마디 해.
중만: ......
샘물: 하하하, 너무 고마워서 뭐라 할 말이 없나보네. 쑥스러워? 하지만 고마운 마음을 전하는 것도 중요해. ‘네가 나를 위해 그렇게 노력해 줬구나. 고마워. ’라고 말해보면 어떨까? 자, 해보자.
 
샘물은 아이들 멘트 하나하나를 알려준다. “아무 것도 해 주지 않은 아이에게는 ‘네가 아무 것도 안 해 줘서 섭섭하지만 다음에는 잘 해 줘.’라고 말하는 거야. 우찬이는 네가 너를 뽑았어? 내가 나를 뽑으면 나도 두 주 동안 잘 해 주는 거야. 내 머리도 쓰다듬어주고 나한테 웃어도 주고 나도 이렇게 쓰담쓰담 해주고..... ” 겨우 십년 세상을 살아 온 친구들에게 어떻게 말하고 어떻게 격려하는지 어떤 게 잘해 주는 것인지를 아주 구체적으로 알려주는 작업을 또 시작한다.
 
은준이는 늘 쌍둥이 은민이와 함께 붙어 다녔다. 부모의 의견이라지만 쌍둥이를 같은 반에 있게 한 것은 상당히 잘못한 처사였다. 늘 두 아이는 아무 것도 안하고 둘만 붙어 있었다. 다른 아이들과 놀지도 소통하지도 못하고 둘이서만 놀고 둘이서만 싸웠다. 샘물은 이 두 아이를 떼어 놓고 다른 아이들과 놀도록 했다. 틈만 있으면 붙어 있는 아이 둘을 틈틈이 떼어 놓았다. 샘물의 강압에 시달린 아이들은 점차 자기 모둠 아이들과 친해져 갔다. 아무 것도 안 하는 은준이에게 다가가 뭔가 칭찬해 줄 것들을 찾아 이것저것 거드느라 매일 진이 빠졌다. 늘 남에 도움만을 받고 부모가 다 해주는 아이라 자발적 의지력이 전혀 없었다. 타자에 대한 인식조차 없었다. 둘 다 비슷한데 은준이는 은민이가 잘하고 자신은 못한다고 늘 생각한다. 부모도 은민이가 부족한 은준이를 도와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느 날인가 은민이는 미처 하지도 못했는데 다른 아이보다 과제를 일찍 끝낸 은준이의 파격에 -물론 잘 한 건 아니었지만 해서 냈다는 게 어딘가- 엄청난 칭찬을 해댔다. 은준이는 자존감이 높아져 과감히 다른 친구에게 말을 건넨다.
 
은준: 지호야 내가 도와줄까?
샘물: 와! 은준이가 지호 도와준대. 지호는 정말 좋겠네. 은민이도 아직 못 끝냈는데.





샘물은 정말 한심하게 과제를 해치운 은준이의 결과물에는 기가 막혔지만 자신의 과제를 끝내고 지호에게 와서 그런 말을 건넬 때에는 감동까지 받았다. 다른 사람까지 신경 써 본다는 게 얼마나 귀중한 경험이고 타자를 인식하며 성장할 수 있는 기회인가. 더구나 늘 은민이와 비교되어 위축되어 있던 차에 자신이 은민이보다 더 잘 할 수 있다는 경험은 은준이가 은민이에게 의지 하지 않는 계기가 될 것 같았다. 샘물은 그 작은 불씨가 꺼지지 않도록 아주 조심조심 다가갔다 멀어졌다를 반복했다.
 
윤호라는 아주 작고 귀여운 다문화 아이가 있다. 윤호를 늘 뭐든 후딱 번쩍 끝내고 여기저기 참견하고 이르느라 늘 바쁘다. 뭘 하다가도 샘물이 다가가 고쳐 주려고 말을 하면 갑자기 모든 행동을 멈추고 가만히 있곤 한다. 질문시간에 답을 하다가 틀리면 자신의 뺨을 살짝 살짝 때리는 시늉을 한다. 장난으로 한 행동이 버릇처럼 되어 버렸다. 왜 그럴까. 부모 상담에서 그 실마리를 찾았다. 매사에 ‘어차피’ 라는 말을 한다는 것이었다. 그 짧은 생애에 포기할 어떤 것들이 있었을까.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샘물은 또 다시 다가가 본다.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사실 확신도 없이.
 
혼란과 바쁨의 3월에 작년에 그렇게나 개구졌던 지우가 찾아왔다. 문을 활짝 열고 “선생님!”하며 뛰어 들었다. 그 목소리에는 반가움의 진정성이 묻어 있었다. 샘물도 너무나 반가워 자동으로 팔을 벌려 지우를 안아주었다. 나중에 보내며 보니 옷에 가득 얼룩을 묻히고 있었다. 생각해보니 작년에도 늘 뭔가를 묻히고 지저분하게 다녀 아이들이 좋아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반가움은 그런 걸 개의치 않게 만든다. 그렇게나 트러블메이커였던 아이가 개선장군처럼 와선 좀처럼 하지 않던 “너~무 보고 싶었어요”라는 말을 힘주어 할 줄 아는 아이가 되었다.

같은 학년을 이어서 하면 노하우가 축적될 줄 알았다. 작년보다 더 능숙하게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같은 학년으로 연임을 해 보는데 연임해서 작년보다 더 발전되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사람을 대하는 것에 익숙한 기술이란 없나보다. 또 다시 다가가기를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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