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칠었던 '삶'과 '노동'의 현장을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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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칠었던 '삶'과 '노동'의 현장을 가다
  • 송정로 기자
  • 승인 2019.05.11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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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in] 터덜터덜걷기 42차, 인천 동구 해안 부두와 산업현장 걸어




화도진문화원과 함께 진행한 [인천in] 제42차 터덜터덜 걷기가 ‘삶’과 ‘노동’을 키워드로 11일 동구지역 해안과 부두, 산업현장 등지에서 열렸다. 개항과 일제강점기 및 근대화 시기 펼쳐진 거친 노동의 현장이었던 지역이다.
이날 장회숙 도시자원디자인연구소 대표의 해설로 모두 69명이 참여해 함께 걷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참가자들은 인천역에서 집결해 북성포구로 향하며 이 일대 매립 과정에 대해 알아보며 출발했다. 북성동 대한제분에서 만석동 동일방직까지는 인천상륙작전 시 ‘레드비치’라 불리던 해안가다. 북성포구를 거쳐 해안을 걷다보면 개항기 북성동 외국인묘지 자리를 찾아볼 수 있다.



 

동일방직의 높은 담을 마주하고 일제강점기 도시바전기(후에 이천전기였다가 현재 일진전기) 노동자들의 숙소였던 시바우라 사택을 둘러보고, 김중미의 소설 <괭이부리말 아이들> 배경이 된 만석동 저층주거지 사업지를 방문한 후 인근 우리미술관도 둘러보았다. 이 일대는 현덕의 소설 <남생이>. 이태준의 <밤길>, 조세희의 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강경애의 소설 <인간문제> 등 노동문학의 현장이기도 했다.
 
우리미술관을 지나 만석부두로 향했다. 부두가에서 점심 식사 후 강점기 일제 무기를 생산하던 조선기계제작소에서 잠수함 도크로 이용했던 갯골에 닿았다. 현재는 두산인프라코어 공장이 들어선 곳이다. 두산인프라코어 건물 앞길은 한국유리까지 이어지던 산업철도 철길이다. 옛 철길을 따라 화수부두에 이르러 당시 마포상인들과의 네트워크에 대해 설명을 들었다. 화수부두 앞에는 일제 군수시설로는 유일하게 당시의 건물이 남아있는 일진전기를 볼 수 있다. 현재 비어있는 일진전기에서 영화 ‘말모이’ 가 촬영됐다.
 
화수부두에서 나와 두산인프라코어 건너편 한쪽 골목으로 들어가면 일제강점기 함경도에서 강제징용되온 근로보국대의 숙소자리가 나온다. 최근 이곳이 주차장으로 변모해 안타깝다. 다시 길 건너 만석초등학교가 있는 곳은 화도진 성벽 자리였는데, 당시는 해안가였다. 화수동37번지는 화도진 병사들을 위한 마을이다. 1946년 국내 최초의 공립박물관인 인천시립박물관을 설립, 초대 관장을 지낸 1세대 미술평론가 이경성이 태어나고 자란 곳이다.
 
70, 80년대 군사정권 시절, 이 지역 노동자를 위해 헌신했던 일꾼교회(인천도시산업선교회)도 이 곳에 위치해있다. 지금은 미문교회, 동구푸드뱅크 간판을 볼 수 있다. 동인천 방향으로 올라오면 화도교회가 나오고, 화도진공원 방향 오른쪽으로 틀면 1930년대 대중탕이던 하얀 타일의 부영목욕탕 건물이 나온다. 지금은 화도교회 교육관이다. 앞쪽 큰 길을 건너면 화수시장(화도진공원 건너편)에 나오는데, 대한성냥공장이 있던 자리다. 장면 총리의 생가터도 이 부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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