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밤이 뜨거운 감자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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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밤이 뜨거운 감자밭
  • 유광식
  • 승인 2019.05.17 0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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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 구월동 예술로 / 유광식
구월동 씨티빌딩, 2016ⓒ유광식
 

1985년, 인천시청이 현재의 중구청 자리에서 남동구 구월동으로 이사를 헸다. 인천시청의 청사 이전으로 구월동은 인천의 문화와 행정, 경제 중심지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이 지역은 주막거리에 대한 설(오닭이)이 전해내려 온다. 아니나 다를까? 지나가는 행인에게 잠시 쉬어 가라는 듯 길고 긴 중앙공원이 걸음마다 이어진다.

예술로를 따라서는 굵직굵직한 명패가 즐비하다. 인천시청을 비롯해 시교육청, 중앙도서관, 인천CGV, 홈플러스, 씨티빌딩, 지방경찰청, 인천문화예술회관, 뉴코아아울렛, 롯데백화점, 로데오거리, 종합버스터미널, 농산물도매시장 등 육중한 건물들이 자리하고 있다. 그래서 눈높이를 높여 북에서 남으로 이동해 보았다.

 
남인천여중 앞 십자횡단보도와 신호등, 2017ⓒ유광식
 

인천 녹지축 보전을 위해 중앙공원이 자리하지만 절편을 잘라 놓은 듯 도로로 인해 공원이 이어지지 못하고 군데군데 끊어져 있다. 보행로 연속을 위한 장치를 구현한다고 하니 지켜볼 일이다. 예술회관역 옆에는 지난 한국경제 부흥의 단초라 할 수 있는 88서울올림픽을 기념하는 장소가 있다. 산책 중에 우연히 길 옆 화단 내의 기념 표지석 하나를 발견했다. 인천시한약협회에서 올림픽을 앞두고 식목일에 기념수를 심은 모양인데, 나무는 밑동이 잘리고 썩어가는 흔적만 내비치고 있었다.

광장엔 당시 공책에 열심히 따라 그렸던 호돌이가 그 때 그 미소로 서 있다. 그런데 호랑이의 가죽이 청동재료의 어두운 색조라 그런지 까맣게 타들어간 마음을 대신하는 듯이 비쳐진다. 호돌이 친구였던가? 동상 앞은 비둘기들의 아지트인지 많은 비둘기 친구들이 한가롭게 오후를 보내고 있었다. 

 
88서울올림픽 기념지구 내 기념동상 뒤쪽에서, 2019ⓒ유광식


중앙공원 중앙엔 인천문화예술회관이 있다. 겉으로 보기에도 정말 무거워 보이는 화강암으로 외벽을 마감한 문화예술회관. 여전히 공연과 전시가 많이 열리며, 시립문화예술단체가 둥지를 틀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건물 앞은 때마침 녹색나눔장터가 열리고 있었다. 2년 전 124번 비표를 받아 소소한 물건을 판 적이 있는데 해가 갈수록 그 열기가 더해지는 느낌이다. 물건은 어린이 장난감과 의류가 투톱을 달린다.

회관의 이름은 원래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이었다. ‘종합’이라는 음절을 빼고 개칭했는데 달라진 판세를 반영한 것일 테다. '종합‘은 인천종합버스터미널이 지키게 되었다. 재미로 비유하건대 종합비타민이 모든 사람에게 좋은 것은 아닌 것처럼 말이다. 저마다 체질이 있고 자신의 체질에서 미흡한 비타민을 보충하는 것이 좋은 효과를 보게 한다.

구월동은 인천의 문화, 행정, 경제의 종합명소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만 너무 한 곳에 집중된 모양새가 부담스러워 보이기도 한다. 인천문화재단 또한 처음 구월동 셋방살이 시절이 있었다. 이후 중구로 옮겨가서는 집을 지었다. 몸에 맞는 비타민을 잘 찾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인천문화예술회관 앞 5월 녹색나눔장터에 나온 시민들, 2019ⓒ유광식
 

로데오거리는 소비문화의 집약소이다. 젊은 사람들이 많고 대형서점(만남의 장소)도 3곳이나 있다. 말마따나 무엇이든 다 위치해 있다. 길은 좁은데 언덕이 있고 사람도 많으니 복잡함은 애교로 봐줘야 한다. 원래 신세계백화점이 위치한 쇼핑 건물을 롯데가 인수하면서 올해부터는 롯데의 월드가 열리게 되었다. 인천문화예술회관 옆 구)롯데백화점 건물은 최근 매각이 성사되어 어떻게 변모할지 관전 포인트가 될 것 같다.

예술회관역 위에는 퍼런 유리창문의 씨티빌딩이 자리한다. 나는 늘 우유곽 같은 그 건물의 모양새가 재미났는데 중앙공원 양옆의 구월동 구역의 시끌벅적한 벼락 맞음을 흡수해 줄 피뢰침이 되어 줄 거라는 엉뚱한 생각을 해보게 된다. 

 
구월동 로데오거리 광장에 있는 횃불조형물, 2018ⓒ유광식
 
바람 부는 구월동 로데오거리, 2016ⓒ유광식
 
해 저물가는 구월동(터미널사거리에서 농산물사거리 방향), 2018ⓒ유광식

 
구월동 시대는 여전히 유효하다. 묵직하게 움직이는 흐름을 군데군데 설치되어 있는 조각 작품들이 말해 주는 것도 같다. 주막거리 이야기에 나오는 ‘오닭이’에서의 맹(孟)장군은 서울로 오가는 사람들의 주머니를 노린 사기꾼이었다. 다행히 마지막에 가서는 자신의 행동을 뉘우치고 반성한다.

구월동이 지금 딱 그런 곳이 된 건 아닌가 싶다. 복잡함 속에 나도 모르게 사기를 당하진 않을까 걱정이 생기는 장소이기도 하니 각자 조심할 노릇이다. 오죽했으면 ‘어르신소비생활 지킴이’까지 발족하는 시대가 되었을까 싶다. 신세계백화점은 사라졌지만 디지털 신세계에서 소외되어 허우적거리기 쉬우니 유의할 두통이다.

구월동 감자밭은 더욱 뜨거워질 것이다. 주차가 어렵다면 열 내지 말고 헤매지 말고 문화예술회관 주차장으로 가기를 강추한다. 

 
구 롯데백화점 건물, 2019ⓒ유광식
 
2019년 신세계백화점이 떠난 후 새롭게 단장된 롯데백화점, 2019ⓒ유광식 
 
구 신세계백화점 외부 조형물과 시민들, 2016ⓒ김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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