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살 데미안의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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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살 데미안의 고민
  • 안정환
  • 승인 2019.05.20 0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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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칼럼] 안정환 / 연세대 의공학부


이번 학기부터 학교 주변에 저렴한 원룸을 구해 자취를 시작했다. 아버지는 이것도 엄연히 ‘분가’이고 이제부터 밥 짓기, 빨래, 청소 그 외의 집안일과 관리비, 전기세, 가스비 등등의 비용을 고려하며 살림을 해야 한다고 일러주셨다.

걱정보다는 설렘과 기대가 앞섰다. 부끄럽지만 고백하자면 나와는 달리 일찍부터 자취를 시작한 여러 친구들의 대화에도 이제야 낄 수 있다는 뿌듯함 비슷한 감정도 들었던 것 같다.

재작년 무렵, 전역하고서 다시 만난 친구들은 간혹 나와 동떨어진 주제의 대화를 나누곤 했다. ‘원룸보다 오피스텔이...’, ‘하지만 신축건물이라 가격이...’, ‘여기는 보증금이 이렇고 저렴하지만 들어보니 관리비와 각종 세금이 세서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격이라는데...’

자취를 시작하고 한 달, 용돈이 부족해졌다. 적지 않은 돈이 통장에 있었는데 귀신처럼 슬그머니 빠져 나가는 얄팍한 잔고에 마음이 조급해져 갔다. 돈을 아끼는 방법을 아무리 궁리해도 뾰족한 수가 없어 아르바이트 자리를 찾아보는 것이 훨씬 생산적이라는 결정에 여러 구인 사이트를 헤집고 다녔다.

나와 고용자간의 스케줄을 맞춰보는 것은 자석의 N극과 N극을 맞대어 보려는 노력과 비슷했으나 다행히도 그리 멀지 않은 곳 패스트푸드점에서 서로가 만족하는 시간대로 근무할 수 있었다. 흔히들 아르바이트는 용돈도 벌고 겸사겸사 사회생활도 간접 체험할 수 있다고 하니 내게도 귀중한 자산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평일에 학교를 다니고 주말엔 아르바이트를 한다.’ 6어절로 맺을 수 있는 단조로운 스케줄이었으나 날이 갈수록 버거워졌다. 친구들과 연구하는 것은 즐거웠으나 공부는 어려웠고, 매장 일도 즐거웠지만 매장 내 중간간부들의 갈등은 나를 곤란하게 만들었다. 여타 또래들과 비교했을 때 이것이 보통이고 평균이리라 여기며 버텨냈다.

내가 과연 잘하고 있는 것일까. 생활비도 벌면서 공부도 해야 하는 쳇바퀴 속에서 드높은 이상이나 장밋빛 꿈을 꾸기에는 너무 고된 노동과 상처받은 감정들의 연속일 뿐, 일을 한다는 보람은 느껴지지 않는다. 학교를 졸업하고 취업준비를 한다고 해서 나아지는 것이 있을까. 고민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진다.

3학년이 되고 졸업은 2년 남짓한 시간이 남았지만 진로는 오리무중이고 이미 4학년이 된 친구들에게 물어보아도 들려준 답은 1년 전처럼 모호하다. 다를 바 없이 계속되는 공부와 생활고에 허덕이는 루트 안에서 헛돌지 않고 나아갈 수 있는 방법이 필요한데, 매일매일은 안개 속을 걸어가듯 막연한 두려움뿐이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새의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해야만 한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 나오는 명문장 중 일부이다. 우리는 모두 꿈을 가지고 산다. 자신이 살고 있는 세상의 울타리 안에서 바라는 것을 ‘목표’라 하고, 그 너머를 바라는 것을 ‘꿈’이나 ‘이상’이라고 말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자신의 진로와 생활고에 치여 알을 깰 방법을 모르거나 깰 힘이 없는 수많은 싱클레어가 있다. 나 역시 그 중 한 명의 싱클레어다. 때문에 하나의 바람을 가진다. 내게도 누군가의, 무언가의, 어떤 제도의, 어떤 기회의 혹은 자신의 내부의 ‘데미안’이 찾아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기를. 알을 깨고 나와 조금 더 확장된 세계에서 살아가며 혹시 나도 누군가의 ‘데미안’이 될 수 있기를. 25살의 청년 데미안은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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