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는 루쉰, 또는 '지금 이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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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읽는 루쉰, 또는 '지금 이 순간'
  • 유은하
  • 승인 2010.11.30 16:28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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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칼럼] 유은하 / 강화 화도마리공부방·사회복지사


중국 근대문학의 아버지 루쉰(魯迅·1881~1936)의 작품을 다시 읽으면서 새롭고 각성된 느낌이 밀물처럼 몰려든다. 여고시절에 읽었던 루쉰에게선 이해할 수 없던 말들이 많았다. 하지만 중년이 되어 만난 루쉰은 내게 의미 있는 질문을 한다.

루쉰은 <고사신편>을 썼다. '옛 이야기를 새롭게 썼다'는 뜻인데, 고사를 그가 살았던 당시 시공간에서 썼다. 옛 고사에서는 주인공들이 굉장히 줏대 있고 강인하다. 신체적으로 강인한 게 아니라 정신적으로 강인하다. 그런데 <고사신편>에서는 근대의 새로운 지식들이 마구 들어오는 상황 속에서 백성들이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썼다.

'고사리를 캐는 사람들'에 백이숙제 이야기가 나온다. 백이숙제의 경우 우리가 알기로 정신력이 강한 사람들로 그려진다. 한 번 마음 먹은 것은 굶어 죽으면서도 지켜낸 사람들로 알고 있다. 하지만 고사리를 캐는 사람들에서는 융통성이 없고 답답한 사람들로 그려진다.

루쉰은 소설이나 잡문을 쓸 때 어느 한 사람을 편들지 않는다. 일정한 거리를 두고 관찰하면서 비판적인 묘한 느낌을 가지고 쓴다. 백이숙제에 대한 비판도 아니고, 그 비판자에 대한 옹호도 아니었다.

'고사리를 캐는 사람들'에서 백이숙제에게선 주의주장은 있으나 자기 생활은 엉망인 지식인을 비판하고 있으며, 예술의 순수성을 논하는 사람들에 대해선 예술이 순수할 수 있느냐는 문제제기를 한다. 그는 고사를 재미 있게 알기 쉽게 쓰는 게 아니라, 생활하지 못하는 지식인이나 자기 삶을 꾸리지 못하는 지식인에 대한 문제제기를 끊임없이 말하고 있다.

루쉰이 꾸준하게 했던 작업은 신비화해 있는 사람들을 벗겨내고, 있는 그대로 드러내 보이는 일이었다. 무엇을 쓸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쓸 것인가가 문제이다. 어떤 눈을 가지고 무슨 말을 할 것인지가 중요했다.

'전쟁반대'에서는 묵자의 이야기를 새롭게 썼다. 묵자는 전쟁에 반대한다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 걸어가서 이야기를 하고, 다시 돌아서 걸어온다. 실제로 묵자는 전쟁을 막아낸다. 보통 이러한 경우 이야기의 끝은 나라를 구한 영웅을 최대한 부각시킨다. 그런데 루쉰은 그렇지 않았다.


마지막 부분이 인상 깊다

나라를 구하고 돌아오는 길임에도 불구하고 송나라 사람들이 이를 몰라볼 뿐만 아니라 오히려 물건을 빼앗기고, 감기에 걸린다는 내용이다.

루쉰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하고자 하는 일은 그냥 하는 것이고, 그 일에 대한 의미는 부여하지 않는 것이다. 그 순간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묵자 역시 영웅적인 일에 대해 의미를 부여하고, 댓가를 받는 게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 사는 것이었다.

루쉰의 글을 읽으면서 지금 이 순간에 대한 고민을 한다. 내 20대는 1980년대에 머물러 있다. 20대를 통틀어 현실을 가장 치열하게 고민하고 살아왔다. 우리를 둘러싼 모든 억압적인 환경에 저항했고, 그 결과로 민주화한 사회가 왔음을 자랑으로 생각하고 살아왔다. 그래서 가끔 과거를 회상하고 과거를 팔기도 했던 것 같다. 과거에만 머물러 있기에 어쩌면 시대가 거꾸로 가는 걸 그대로 보고만 있는 것은 아닌지 뜨끔했다. 시인 박노해는 “과거를 팔아 오늘을 살지 않겠다”고 했다. 혹시 나는 과거를 팔아 오늘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각성하게 한다.

처음 공부방을 하면서 아이들과 함께 하는 삶을 그리면서 다짐하고 기도했었다.

"내가 온 진심으로 아이들을 사랑하고 아낄 때 만약 그 공덕이 부여된다면, 그 공덕은 내 아이들에게 가게 해달라고." 그래서 내 아이가 바르고 따뜻하게 크기를 바랐고, 내가 아이들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만큼 내 아이도 잘 커 나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또한 일종의 보상심리였고 어떤 대가를 바라는 것이었다.

착한 일도 나쁜 일도 결코 적립되지 않는다. 적립된다고 생각해서도 안 된다. 지금 이 순간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살고 있는가가 중요하다.

그래서 항상 깨어 있어야 한다. 깨어 있어야만 이 순간을 제대로 살 수 있다.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우리에겐 무엇인가가 끊임없이 다가오고 있다. 우주에 존재하는 뭔가가 지금 이 순간에도 오고 있다. 사람일 수도 있고, 작품일 수도 있다. 다가오는 뭔가를 그냥 지나치고 살지 않아야 한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아야 한다. 이것이 나한테 오는 운명이라고 생각하고 잘 보자."

내 자신에게도, 어른들에게도 이렇게 말하고 싶다. "그 어떤 것도 쉽게 놔버리는 것 없이 열심히 살아야 할 것이다.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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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랄라 2010-12-07 15:00:59
"내가 온 진심으로 아이들을 사랑하고 아낄 때 만약 그 공덕이 부여된다면, 그 공덕은 내 아이들에게 가게 해달라고." 이말이 참으로 감동스럽니다. 공덕이 모두 타인에게 가길 바라는 마음...


성국모 2010-12-05 20:20:51
복지사님! 조무래기들과 삶을 나누는 일을 10년을 하루같이 해 오시는군요.. 2001년 12월 추운겨울, 화도의 허름한 건물에서 아이들과 손을 호호 불어가며 함께하던 그 모습이 저에겐 영원한 현재로 남아 있습니다. 눈물겹도록 시린 그 겨울처럼, 아직도 궁벽한 시골의 어려운 친구들을 보듬어 그 넓은 가슴으로 큰 사랑을 실천하고 계신 님의 모습에 자꾸만 고맙고 또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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