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 영화에 '생리'가 존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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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 영화에 '생리'가 존재하지 않는다
  • 박지수
  • 승인 2019.06.18 08:03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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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칼럼] 박지수 / 여성주의 운동가


평화로운 일상에 들이닥친 거대한 괴수, 잔인한 좀비,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파도 등 갑자기 등장한 무언가로 모든 것이 망가지고 살아남기 위해 버티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린 재난 영화가 인기를 얻고 있다. 재난 영화란 말 그대로 재난이 일어나는 영화를 말하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재난만 일어나고 끝나는 이야기에서 생존을 위해 싸우는 장면이 등장하거나 재난의 원인을 파악하거나 액션, 음모 등 여러 설정이 포함된 작품을 말한다. 이러한 영화가 인기를 얻는 이유는 앞으로 일어날 일을 대비함과 동시에 그 상황에 들어가 있는 듯한 현실감과 공포감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재난 영화에서도 여느 영화와 같이 자주 등장하는 사람, 즉 클리셰가 있다. 재난이 발생할 것을 예측하고 경고하지만 무시당하는 과학자, 종말이 다가왔다고 외치는 사이비 등. 생존자 무리에서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도 자주 등장하는데 다른 남성을 노예처럼 부려먹고 여성을 강간하는 등 여러 사람이 등장하고 여러 상황이 생긴다. 그러나 등장하지 않는 것이 있다. 바로 생리다.

SNS엔 이런 글도 올라와 있다. “장기간 표류하거나 갇혀있는 여성이 등장하는 영화를 보고 있을 때면 여성들의 생리 때문에 집중이 안 되는 사람들의 모임”, “생리 물품도 받을 수 없는 곳에서 어떻게 생활할 것인가”...  많은 여성이 공감했고 현재도 이러한 의견이 나오고 있다. 그렇다면 생리가 재난 영화에서 사라지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많은 감독, 각본가들은 재난 영화를 만들 때 이야기 흐름에 방해가 되는 것들을 빼고 원만한 진행을 하기 위해 노력한다. 현실적인 면을 살리면서도 경계를 두는데 이때 그들에게 제일 골칫거리는 바로 생리다. 영화 속 한 장면을 예로 들어보자, 평화롭던 일상에 나타난 괴물은 모든 것이 퇴화하고 후각만이 발달해 냄새로 생존자들을 찾아내 잡아먹는다. 괴물에 대한 정보를 알게 된 생존자들은 일부러 냄새나는 음식을 먹지 않고 간단한 통조림을 먹으며 생활하는데 이때 무리에 있던 여성이 생리를 한다면 그 뒤로 일어날 상황은 근처에 있던 괴물이 피 냄새를 맡고 생존자 무리 쪽으로 달려올 것이고 생존자들은 모두 죽거나 여성을 버리고 도망칠 것이다. 이런 상황이 영화의 흐름을 방해할 수 있다는 이유로 영화 제작자들은 생리를 등장시키지 않는다.

설정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가 끝일까. 이러한 일은 픽션, 즉 가상의 현실에서만 일어나는 일들이 아니다. 2016년 7월엔 이런 기사가 난 적이 있다. 재난 현장에 지급되는 구호용품에 생리대를 삭제한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여성마다 취향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이 주장으로 인해 많은 여성의 항의가 빗발치면서 정부는 구호 용품에 생리대가 포함된다며 해명을 했지만 현재까지도 남성들은 여성의 생리는 참을 수 있는 오줌과 같다고 생각한다. 온라인 커뮤니티엔 남성들이 “여자들은 자신이 여자인 것이 대단한 특권이나 신분이라도 되는 줄 안다”, “아으 더러워”, “생리는 소변처럼 자기가 조절할 수 있는 것 아니야?”라는 반응을 남겼다. 국가가 나서서 여성의 신체와 인생을 이해하려 하지 않으니 남성들은 여성에게 무지할 수밖에 없기에 이런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여성의 생리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은 꽤 오랜 시절부터 시작됐다. 남성 중심의 보수적인 성경에선 이런 구절이 등장한다. “여자가 몸에서 피를 흘릴 때, 그것이 여자의 몸에서 흐르는 피면 그 여자는 이레 동안 불경하다, (레위기 15:19~21)” 높은 위치에 있는 남성들은 자신과 다른 몸을 가지고 있는 여성에게 두려움을 느끼고 그들의 힘을 억압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여성의 생리까지도 불경하다고 주장했다. 동양에서는 <혈분경>이라는 경전이 있는데 여성이 생리와 출산 중 흘린 피로 강을 오염시켰기 때문에 용서받아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처럼 오랜 기간 사회는 여성의 몸을 인정하려 하지도 않고 이해조차 하지 않았다.

칼럼을 적기 위해 참고했던 다큐멘터리 <피의 연대기>를 보면 여성이 탐폰 및 생리에 관한 물품이나 생리에 대해 잘 몰랐던 것도 사회가 여성들의 문제를 남성들의 문제만큼 중요하게 대하지 않았기에 생긴 일이라고 한다. 여성 차별적인 법안에 대해 오바마 전 대통령은 “아마도 그 법이 만들어지던 시기에는 법을 만드는 사람들이 모두 남자였기 때문 아닐까요?”라고 답한다.

남성과 사회는 생리의 존재를 부정하지만 모든 매체에서 임신은 빠짐없이 등장시켰다. 자신을 공격하는 좀비에게 도망치고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괴물에게 살아남는 상황에서 남성과의 사랑을 강요하고 그들의 아이를 임신을 하며 출산을 할 때도 갑자기 나타날 괴물에 대비해 총을 준비하고 무리를 지켰다. 사회가 여성에게 생리는 불결하다며 가리기를 급급할 때도 여성들은 자신의 위치에서 모든 걸 지키려고 노력했다. 사회는 여성을 이해하지 않으면서 요구만 한다. 이런 상황이 계속될수록 재난 영화 속에서 생리가 등장할 일은 없을 것이다. 생리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건 그 사회를 반영하는 것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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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2019-06-21 14:03:39
좋은 글이네요 잘 읽었습니다

다온 2019-06-20 09:00:02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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