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현산 기슭 고인돌을 벗삼아 흐르던 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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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현산 기슭 고인돌을 벗삼아 흐르던 물길
  • 장정구
  • 승인 2019.07.17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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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대곡천 - 장정구 / 인천녹색연합 정책위원장





“고인돌이 예전에는 엄청 많았어. 교수니 박사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조사 왔었지”

 황곡노인정 앞 대곡교통 마을버스를 세워두고 담배를 물고 있는 촌로들이 한가롭다. 노인정 동쪽으로 야트막한 구릉지다. 우거진 숲 아래 철제 울타리 팬스가 보인다. 찻길 옆 울타리 안으로 검은 색 바위덩어리 서너 개가 눈에 들어온다. 인천광역시 기념물로 지정된 대곡동 지석묘군이다.

대곡동 가현산에서 뻗어 내린 낮은 구릉 위에 자리잡고 있다. 이 고인돌 무덤들은 북방식과 남방식이 섞여 있으며 구릉이 흘러내리는 방향과 대체로 같은 동서 방향으로 놓여 있다. 일부는 땅에 묻히거나 주위에 흩어져 있다. 전형적인 북방식 고인돌 무덤으로 강화도 고인돌 무덤과 연계된다는 점에서 한강 유역의 고인돌 무덤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농촌이라기보다 공장지대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것 같은 대곡동. 차량 한 대가 간신히 지날 수 있는 길 옆으로 왠지 어울리지 않게 기념물 안내판이 서있다.





 우리나라, 한반도는 ‘고인돌의 나라’라 불린다. 학계에서는 약 1만5,000∼2만여 기 정도가 남아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고인돌은 외형적으로 북방식, 남방식으로 구분했다. 지상에 윗돌[上石]과 받침돌이 높이 올라와 있어 마치 탁자형(卓子形)으로 된 고인돌을 북방식, 지면에서 낮게 4∼5개의 받침돌로 윗돌을 고여 마치 바둑판형으로 보이는 고인돌을 남방식으로.

 탁자형으로 생긴 형식은 주로 한강 이북 지방에 분포되어 있다고 하여 북방식, 기반형으로 생긴 형식은 주로 남부 지방에 분포되어 있다고 하여 남방식으로 분류했으나 나중에 황해도와 평안남도 지방에서도 기반형이 다수 확인되고 전라도·경상도 지방에서도 탁자형의 분포가 다수 확인되면서 이제는 북방식, 남방식이라는 표현이 적당하지 않다고 한다. 탁자형, 기반형 이외에도 받침돌이 없이 큰 돌(윗돌) 만 지면에 바로 놓인 고인돌도 있다. 

 백두산에서 시작된 산 줄기는 아래로 아래로 금강산, 태백산을 지나 속리산에 이르러 서쪽으로 가지를 뻗는다. 한남·금북정맥은 안성의 칠현산에서 한남정맥과 금북정맥으로 나뉜다. 용인의 석성산, 수원의 광교산, 안양의 수리산, 인천의 계양산을 지난 한남정맥은 경인아라뱃길에 짤리고 도시개발로 희미한 선으로만 남아 김포 가현산에 도착한다.

 김포시청 홈페이지에 가현산은 ‘산의 형세가 코끼리 머리와 같이 생겼다하여 상두산(象頭山)이라 하다가 칡이 번성하다 하여 갈현산(葛峴山)이라고도 불렀다. 서쪽 바다의 석양낙조와 황포 돛대가 어울리는 경관을 거문고 등을 타고 노래를 부르면서 감상하였다 하여 가현산(歌絃山)이라고 고쳐 부르게 되었다. 서쪽 해안 일대에 많이 나는 약쑥을 중국과 물물교환하는 무역이 활발하게 되자 산 밑에 주막집이 번창하여 가무를 즐기게 되어 가현산이라 했다’고 소개하고 있다.

 대곡동 지석묘군은 군부대 공사 등으로 훼손되고 땅에 묻히고 해서 현재 10여 기만 확인되는데 학계에서는 적어도 80여 기로 추정한다. 규모와 가치 면에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강화고인돌에 뒤지지 않는다. 가현산 자락에는 오래전부터 사람이 살았고 조선시대에도 보장지처(保障之處)인 강화도로 임금님이 피신 갈 때 중요한 길목이었을 것이다.

가현산 일대에 구리광산이 있었다며 김포지역의 청동기 문화 발달과 관련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는 사람들도 있다. 아무튼 가현산 자락은 부족장의 무덤이라는 고인돌 수십기가 남아 있을 정도로 청동기시대에 번성했던 부족이 살았던 것은 분명해 보인다.

 한남정맥은 가현산 정상에서 서쪽으로 김포평야로 이어지고 작은 산줄기가 북쪽을 향한다. 이 산줄기를 따라 10여 분 내려오면 왼쪽은 한창 공사 중으로 아파트가 올라가고 있다. 오른쪽은 아직 시골이다. 왼쪽은 김포한강신도시고, 오른쪽은 인천 서구 대곡동이다. 대곡천 상류인 이곳은 항공사진에서 파란색 사각형들이 선명하다. 공장들이다. 공장들이 대곡천 주변, 가현산 기슭을 점령하기 시작한 지 오래다. 대곡로를 따라 가현산을 시계방향으로 돌면 작은 구릉지들과 작은 기슭들을 서너 개 만난다. 얼마 전까지 길옆으로 ‘대곡도시개발추진위원회’ 컨테이너가 있었다.

 대곡천은 공장이 빼곡하게 들어찬 가현산 기슭에서 시작된다. 구릉을 따라 물길이 나있고 조금 넓은 곳에 이르면 드넓지는 않지만 아담한 그러나 비옥한 논이 펼쳐진다. 높지 않은 가현산 자락은 예부터 사람살기 좋았을 것이다. 습지가 아니라 집짓기 좋았고 사냥터도 멀지 않았고 땔감을 구하기 유리했을 것이다.

청동기시대 선조들은 대곡천이 나진포천을 만나 제법 큰물이 되는 곳에서 물고기를 잡았을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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