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자치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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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자치란 무엇인가?
  • 이김건우
  • 승인 2019.07.22 0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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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칼럼] 이김건우 / 서울시립대 2학년, 교지 편집장


대학에 와서 친구를 잘(못) 사귄 덕에 계속 듣는 말이 있다. 학생자치. 처음에는 멋있는 말 같았다. 그래서 나도 학생자치를 자주 부르곤 했다. 학생자치. 학생자치! 학교 대의원회에 가면 수십 명이 학생자치라는 말을 수백 번 쓰는 모습을 본다. 학생자치! 학생자치! x 100. 그러나 가만히 들여다보면 각자가 생각하는 학생자치의 뜻은 너무나도 다른 것 같다. 학생자치의 현황을 점검하고 새로운 청사진을 그려보겠다는 학보 기사에서도 학생자치가 무슨 뜻인지는 다루진 않는다. 학생자치. 들으면 들을수록, 말하면 말할수록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학생자치. 학생자치. 학생...? 자치...?

‘학생자치’라는 기표는 어떤 기의를 담고 있는가? 혹은 어떤 기의를 담아야 하는가? 두 가지 분석이 필요하다. 먼저 ‘학생자치’라는 기표를 해부하여 원래 담아야 하는 기의를 알아봐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 기표는 한 가지 기의로만 쓰이지 않는 것만 같다. 그러므로 학생자치의 계보를 추적하여 왜 이 말을 각자 다른 의미로 쓰는지 알아봐야 할 것이다.
 
먼저 해부를 해보자. 학생자치란 학생과 자치의 합성어로 학생이 자기 일을 스스로 다스림을 뜻한다. ‘자치’를 또 다시 뜯어보자. ‘스스로’와 ‘다스림’이 만난 이 말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다스림’은 여러가지 의미를 갖고 있기는 하나, 어떠한 집단에서의 다스림을 말할 때에는 국가나 사회, 단체, 집안의 일을 보살펴 관리하고 통제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한편 ‘스스로’는 ‘자기 자신’, ‘자신의 결심에 따라서’, ‘자신의 힘으로’라는 3가지 뜻을 동시에 갖고 있다. 따라서 자치는 ‘자기 자신을 자신의 의지와 자신의 힘으로 다스림’이라는 구체적인 의미를 갖는다 할 수 있다. 이 구체적인 의미를 바탕으로 자치의 필요 조건을 도출해보면 ‘학생자치’라는 기표가 원래 담아야 하는 기의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① 자기 자신을

우리는 생각보다 ‘자치’하는 경우가 많지 않다. 왜냐하면 자신의 일이라고 여기는 경우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오늘 일과를 한번 돌이켜보자. 혼자 사는 자취방에서 아침을 차려먹기 귀찮아 집 앞 분식집에 간다. 분식집에서 아점을 해결한 다음 상가 화장실에 간다. 그런 다음 토익학원에 간다. 이 세 공간에서 나는 소비자일 뿐 자치하지 않는다.

나는 왜 이 공간들에서 자치하지 않는가? 나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치는 자기 자신의 일이라고 여길 수 있는 생활의 중심에서만 가능하다.

 
② 자신의 의지로

자신의 일이라고 여긴다 하더라도 항상 자치가 가능한 것은 아니다. 자치하려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 그럼 이 의지는 언제 생길까? 먼저 자신의 일에서 부당함 또는 합의의 필요성을 느껴야 한다. 토익학원을 만족하며 다니고 있다면 어떤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를 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학원을 다니면서 불편함을 느낀다고 해도 자치하는 일은 없다. 왜냐하면 자치는 피곤하기 때문이다. 다른 수강생들과 협의하여 그 문제를 직접 해결하려 하기 보다는 고객센터에 전화하는 편이 훨씬 간편하다. 이처럼 자치보다 더 효율적인 방법이 있다면 사람들은 굳이 자치하려 하지 않는다.

 
③ 자신의 능력으로

자치가 효율적인 방법이라는 생각이 든다면 사람들은 자치를 할 것인가? 그렇지 않다. 자치의 비용을 지불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자신의 문제를 고민하고 직접 해결하기 위해서는 시간과 정보가 필요하다. 하지만 일이 끝나면 돌아와서 잠들기 바쁜 사람들은 이 비용을 지불할 능력이 없다. 결국 자기 자신의 문제라고 여기고, 자치의 필요성을 느낀다고 하더라도 시간이 부족한 사람들은 자치할 수 없다.
 
이처럼 자치는 자신이 큰 영향을 받는 생활의 중심이어야 할 것, 부당함을 느껴야 할 것, 자치가 다른 방법보다 효율적이어야 할 것, 자치의 비용을 투입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할 것이라는 4가지 필요조건을 모두 충족할 때 가능하다. 한 가지 요건이라도 충족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학생자치가 아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말하는 학생자치는 이 4가지 필요조건을 충족하고 있는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학생자치의 계보를 추적해야 한다.
 
학생자치의 태동은 독재정권 시절 학생운동과 함께 했다. 당시 학생자치는 대학 공간 내의 자유와 민주주의 쟁취와 함께 학교 밖에 민주주의를 요구하였다. 당시의 학생자치가 원활할 수 있었던 이유는 4가지 필요조건을 모두 충족하였기 때문이다. 대학 진학률이 지금처럼 높지 않아서 대학생이라는 신분이 개인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큰 요인이었고, 또한 대학 밖 커뮤니티가 크게 활성화되지도 않았기 때문에 대학생들에게 대학은 자신에게 큰 영향을 끼치는 생활의 중심이었다.

추상적으로는 군사독재정권이라는 단일하고 뚜렷한 적, 구체적으로는 자신들을 감시·통제하는 학원경찰들이 있었기 때문에 부당함을 지금보다 더 잘 느낄 수 있었다. 이에 대학생이 저항할 수 있는 방법은 학생운동과 학생자치가 유일했기 때문에 자치로의 유입이 더 원활했다. 마지막으로 당시 대학생들은 엘리트 계층인 경우가 많았고 졸업 후 취업 역시 비교적 쉬웠기 때문에 자치의 비용을 기꺼이 투입할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알다시피 대학사회는 점점 이 요건들을 충족하지 못하게 되었다. 전두환 정권의 졸업정원제 실시 이후 학생운동은 주춤하였다. 왜냐하면 이전처럼 수업을 빼먹고 학생운동에만 매진하면 졸업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많은 사람들이 자치의 비용을 투입할 수 없었다.

민주화 이후에는 어떠한가? 군사독재정권이라는 뚜렷한 부당함이 사라지면서 많은 학생들이 학생운동·학생자치에 관심을 거두었다. 또한 대학 밖에도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이 더 많아지면서 꼭 학생자치가 아니더라도 더 효율적인 다른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IMF 이후에 대학은 생활공간의 의미를 점차 잃어갔고 취업을 준비하는 공간이 되었다.
 
오늘날 대학은 자치할 수 있는, 자치하는 공간이 아니다. 이 공간은 대학생 자신이 가꿔나가는 공간이 아니라 소비자로서 취업준비 교육을 소비하는 공간이 되었다. 대학생들이 소속감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은 대학 밖에도 점점 더 많아졌다. 대학 안에 소소한 부당함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이 부당함을 해결하기 위해 자치하진 않는다. 굳이 피곤하게 자치하지 않더라도 민원을 넣으면 된다. 민원을 넣어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는 많지만,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치의 비용을 투입하기엔 오늘날의 대학생은 너무 바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생자치’라는 이름은 여전히 남아있다. 다만 이 필요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지금의 학생자치는 자치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들을 하고 있다. ‘학생자치’라는 이름을 달고 학생들의 민원을 받고, 간식 행사를 진행한다. 하지만 이러한 사업을 하는 학생회가 정말 학생자치기구라고 할 수 있는가? 고객센터처럼 민원을 받아 소소한 문제를 해결하고, 고객 대상 이벤트를 진행하는 일은 동네 마트도 한다. 결국 오늘날 ‘학생자치’는 자치가 아닌 것을 부르는 말이 된 것이다.
 
학생자치라는 말을 해부하고 또 계보를 추적하면서 이 말이 어떤 뜻을 담아야 했고, 또 지금은 어떤 뜻을 담고 있는지 알아보았다. 학생자치의 미래를 고민하는 사람들은 많이 봐왔지만, 학생자치라는 말이 도대체 무엇을 뜻하는지 고민하는 사람들은 본 적이 거의 없다. 당장 학생자치가 무너지고 있는데 한가한 고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학생자치’가 무엇인지, 혹은 무엇이어야 하는지 합의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학생자치의 미래를 논하는 일은 얼마나 공허한가? 오히려 ‘학생자치’라는 이름이 원래 의미하는 바를 찾고, 그 이름에 걸맞게 학생자치를 고치거나, 고칠 수 없다는 판단이 선다면 학생자치를 과감히 버리는 편이 더 낫지 않을까? 물론 한가한 고민을 하고 있는 사람이 당장 해답을 줄 수는 없다. 하지만 최선의 해결책을 찾을 수 있는 실마리를 줄 수는 있을 것이다. 이 글이 실마리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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