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배의 섬, 이젠 힐링의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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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배의 섬, 이젠 힐링의 섬
  • 홍승훈
  • 승인 2019.07.23 0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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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돌아온 교동도


<대룡시장>

 

교동도는 왕족들의 유배지로 선택되곤 했는데 유배를 보내고 감시도 해야했기에 한양와 가까우면서도 나오기 어려워야 했다. 교동 섬은 그 목적에 적합했다. 그래서 고려의 희종, 조선의 연산군과 광해군 등 왕족들의 유배지가 되었으며, 섬 곳곳에 유배지로 추정되는 증거들이 남아있다.

교동도는 또 한양으로 들어가는 길목이었다. 그 군사적 중요성 때문에 조선시대 경기수영의 본영이 있던 곳이기도 하다.

육지와 떨어진 섬이라는 이유, 접경지로서 민간인 통제구역이라는 이유로 교동도는 외부와 오랜 시간 단절되었었다. 그 덕분에 1960~70년대의 모습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대룡시장이나 교동방앗간 같은 곳도 쉽게 만날 수 있는 곳이 되었다. 오염되지 않은 자연이 남아 있는 곳이기도 하다.

2014년 교동대교가 개통했다. 대룡시장은 시설이 개선됐고 관광안내소인 교동제비집도 운영된다. 많은 인파가 몰려 자연 훼손과 오염이 우려되지만, 자연의 고구저수지 연꽃단지, 서한리 습지 및 동산리 담수지에 ‘물길풍경정원’등이 조성되어 주말이면 1만여 명이 찾을 정도로 힐링하기 좋은 관광지로 떠오르고 있다.

•대룡시장

1950년 6.25 전쟁 때 황해도에서 교동도로 월남하였던 황해도 출신 실향민들이 휴전 이후 북으로 갈 수 없게 되자, 황해도를 추억하는 마음으로, 황해도 연백군에 있다는 연백시장을 본따서 만든 재래시장이다.

•교동읍성

1629년(인조 7년)에 경기수영을 설치하면서 같이 만든 것으로, 둘레는 870m였다고 한다. 과거에는 동/남/북쪽에 성문을 세웠으나, 현재는 남문(홍예문)만 남고 나머지 문과 성곽 모두가 사라졌다. 현재 남은 남문(홍예문)도 문 주변의 석벽과 입구만 남고 나머지는 모두 사라져 사실상 껍대기만 남았다. 2018년에 홍예문 문을 복원하였다.

•망향대

황해도 출신 실향민들이 이 곳에 비를 세우고 주기적으로 제사를 지내고 있다.

•남산포

고려시대에는 벽란도로 가는 중국 사신들이 드나들던 곳이며, 조선시대에는 인조가 수군영통영을 설치하면서 군사적 목적으로 사용된 곳이다.

•교동향교(인천유형문화재28호)

 
향교는 지방의 유학 교육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곳이다. 고려 충렬왕 12년(1286)에 안향은 원에 사신으로 갔다가 공자의 초상화를 가지고 돌아와 이곳에 모셨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향교이며, 인천 유형문화제 28호로 지정된 곳이다.
 


<고수저수지 연꽃단지>


<교동향교>


<교동 스튜디오>


<교동읍성>


<교동제비집>


<대룡시장>


<대룡시장 벽화>


<대룡시장 황세환 시계방>


<망향대>


<서한리 백로 서식지>


<서한리 습지>

<연산군 유배지>


<화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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