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한 섬, 크랩아일랜드 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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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한 섬, 크랩아일랜드 기행
  • 은옥주
  • 승인 2019.07.24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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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 여유와 쉼, 공동체적 삶 - 은옥주 / 공감심리상담연구소 소장
 
 
오래 전 아주 낯선 섬에 다녀온 적이 있다. 말레이시아의 쿠알라룸프르를 여행하던 중 중국인 친구의 소개로 우연히 들르게 된 곳이다. 쿠알라 선착장에서 통통배를 타고 1시간 30분 정도 가니 멀리 섬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곳은 전체적으로 짙은 브라운 색을 띄고 있었고, 그 흔한 맹그로브 나무 한그루 보이지 않았다. 아열대 섬에 대한 나의 아름다운 환상이 여지없이 무너졌다. 선착장에 내리니 차분한 중국 여성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이름이 ‘한’이라는 그녀는 마침 동갑내기여서 우리는 금방 친구가 되었다. 선착장에서 마을로 난 길은 갯벌 위에 나무 봉을 박아서 그 위에 얼기설기 판자를 얹어 만든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모든 집이 굵은 봉을 갯벌 위에 깊이 박아서 3m정도 위에 지어놓았다. 길도 집도 갯벌 위로 높이 솟아올라 있어 공중에 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크랩 아일랜드라는 그 섬은 땅이 한 평도 없는 섬마을이었다. 그녀의 집으로 가는 길은 걸을 때마다 ‘삐걱삐걱’소리를 내며 금방 무너질 것처럼 위태로워 보였지만 아이들은 그 위로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고 있었다.

'한'의 게스트하우스는 중국풍으로 잘 꾸며져 있었고 판자로 엮어 만든 넓은 마당도 있었다. 배고픈 나를 위해 그녀는 커다란 킹그랩을 세 마리나 내어 놓았다. 붉은 크랩은 속살이 야들야들하고 쫄깃해서 참 맛있었다. 이곳 섬에서 잡히는 크랩은 말레이시아 특산품이라서 외국으로 전량 수출된다고 했다.
 
우리는 오후에 마을 구경을 나섰다. 길 양옆으로 집들이 있었고 길 중간에 화분이 가득한 곳이 있었는데 그곳은 마을 사람들이 공통으로 가꾸는 공원이라고 했다. 작은 화분 공원 안에는 다양한 식물들이 자라고 예쁜 꽃들도 피어 있었다. 군데군데 쉬어가는 나무의자가 놓여있었다. 나무 널판지 길이 이어지다가 갑자기 시멘트로 만든 길이 나타났다. 그곳은 부촌이어서 집도 시멘트로 지은 양옥집이 많았고 경계선이 뚜렷했다. 이 작은 섬에 빈부의 격차가 보이는 것이 좀 신기하고 이상스러웠다.

 
<말레이시아 크랩빌리지>
<사진출처 : https://www.klook.com/ko/activity/1437-crab-village-rural-adventure-tour-kuala-lumpur>

 
19세기 경 가난한 중국인들이 정착할 곳을 찾아 배를 타고 떠돌다 주인 없는 이곳 갯벌 위에 둥지를 틀었다고 했다. 처음에는 3,4가구가 집을 짓고 살았는데 점점 다른 가족들이 합류해서 마을을 이뤄 중국인 마을이 되었다고 했다.
 
지나는 길에 만나는 모든 사람들은 다 서로를 알고 있는 듯 반갑게 인사를 했다. '한'은 젊은 시절 대만과 홍콩에서 여행가이드를 하며 살다가 근육이 굳어져가는 희귀병에 걸려 고향으로 돌아왔다고 했다. 그녀는 공회라는 글씨가 쓰여진 작은 집으로 나를 데리고 갔다. 그 집은 그녀의 할아버지가 새로 이주해 오는 중국인들을 위해 지은 집이었다.

3개의 공회 중 가장 오래된 곳으로 이곳에서 이주민들이 공동생활을 하며 열심히 돈을 벌어 집을 지어 나가면 또 다른 사람들이 와서 산다고 했다. 그녀는 할아버지의 공로 덕분에 고향 사람들이 병들고 외로운 자기를 받아주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했다. 그녀와 2박3일 동안 마을을 돌아다니며 야시장에서 국수를 사먹거나 전통 배 만드는 공장을 둘러보기도 하며 느리게 느리게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특히 석양에 물든 황홀한 바다를 바라보며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밤이면 집 아래로 바닷물이 밀려들어오는 소리를 듣고 밤하늘에 총총히 뜬 별을 바라보았다. 아침이면 바닷물이 모든 것을 다 가지고 빠져 나가서 마을 아래쪽이 깨끗하게 청소되는 이곳은, 지금까지 한 번 본적도 상상해본 적도 없는 신기한 마을이었다. '한'이 들려준 그들의 서로 돕고 사는 이야기도 내 가슴에 큰 여운을 남겼다. 자기민족에 대한 자부심과 사랑으로 약자들을 보호하며 책임지는 그 문화가 멋지게 느껴졌다.
 
여름이 되니 문득 생각난다. 그곳에서의 여유와 쉼, 그들의 공동체가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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