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나라 소정방은 덕적도로 왔을까?
상태바
당나라 소정방은 덕적도로 왔을까?
  • 이한수
  • 승인 2019.07.26 08:5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7) 권우상 장편소설 [일본이 탄생한 건국비화]



2018년 개통된 덕적도·소야도 연도교
 

최근 덕적도와 이어지는 연도교가 놓이면서 소야도가 주목을 받았다. 덕적도, 소야도는 삼국시대 역사 유적지로 알려져 있고 특히 소야도라는 섬 이름이 당나라 장수 소정방의 성씨에서 따온 것이며, 나당연합 때 당나라 군대가 덕물도(현 덕적도)로 들어왔다고 다들 알고 있다. 소래포구도 당나라 소정방이 산동반도 래주(萊州)에서 출발해 신라 땅으로 들어온 곳이라 하여 소래(蘇萊)라는 지명이 생겨났다고 하니 인천은 나당연합에 의한 삼국 통일 역사의 현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설(異說)도 많다. 소야도는 원래 새곶섬, 사야도 등으로 불렸으며 소래 또한 원래 이름이 솔내(松川 또는 좁은 내)였다는 설이 있다. 부끄러운 사대주의(事大主義) 산물이라니 따져보지 않을 수 없다. 먼저 당시 동아시아 역사 대강을 살펴보자.  

 
소래산 정상에서 바라본 인천항
 
 
중국 대륙이 한나라(BC 202 ~ 220) 이후 위·촉·오 삼국, 5호16국, 위진남북조로 이어지는 분열기를 겪을 때 서북아시아 지역은 남흉노와 북흉노, 동북아시아 지역은 고구려와 백제, 신라 삼국으로 분열되었다. 이 분열기에 만주 몽골 지역에서는 흉노와 북위, 고구려 사이에서 패권 다툼이 벌어졌고 그 중 고구려가 최강국이었으나 연개소문 집권 말기 내부 분열로 고구려 국력은 크게 약화되었다.

중국 본토와 한반도에서는 당나라와 백제, 신라가 다툼을 벌이게 되고 당나라가 신라와 연합하면서 패권을 장악하게 된다. 동아시아 주도권을 잡기 위해 경합한 훈족과 선비족, 부여족은 혈통 상 친근성이 있는 북방 유목 민족들로 정주성이 약한 이동성(노마디즘)을 특징으로 하는 문화를 갖고 있어 주변 족속과의 접촉과 통합이 활발했다.

이들 종족들은 400여 년 분열기를 거쳐 7세기 경 당나라가 한족과 부여족을 제압하고 천하를 통일하게 된다. 당나라가 패권을 장악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은 백제였다고 하는데 고구려에 밀려 한성(서울)에서 웅진(공주)으로, 다시 사비(부여)로 천도할 만큼 전라도 한 귀퉁이로 위축된 백제가 고구려를 제압한 당나라에게 그리 큰 위협이 되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무슨 감춰진 사연이 있는 것일까.
 
백제의 역사는 일본과 중국에 의해 많이 왜곡됐으며 실제 백제는 중국 대륙 동쪽 절반과 일본 열도, 동남아시아까지 지배한 대제국이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사료(史料)가 많이 발견되고 있다. [송서(宋書)], [양서(梁書)], [남제서(南齊書)] 등 중국 사서의 기록들을 종합하면 백제는 요서 지역(중국 요동반도 서쪽)에서 건국되어 중국 대륙 남쪽과 한반도 남쪽으로 진출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주몽이 졸본 지역 소서노 집안의 도움을 받아 고구려를 건국하고 본처 자식 유리를 태자로 삼자 후처인 소서노가 자식을 데리고 남하하여 백제를 건국했다는 우리 설화의 스토리 구조와 일치하기도 한다. 중국의 사서와 일본의 사서에는 이 설화가 역사적 사실임을 입증하는 서술이 다수 남아있다.

위대한 백제의 역사는 신라계 사학자 김부식의 [삼국사기]에 의해 왜곡되기 시작해 일본의 임나일본부설과 중국의 동북공정으로 완전히 멸실될 위기에 처해 있다. 재야 사학자들이 대륙백제설을 제기하고 이문열이 대하소설 [대륙의 한]을 발표하는 등 점차 관심을 모으고 있지만 진실이 모두 밝혀지기까지는 아직 먼 듯하다. 먼저 이 의문점을 풀어보고 싶다. 소정방이 쳐들어와 백제와 일전을 벌였던 백강이 과연 금강 하류 백마강일까?

 
당나라 시대 함선
 
 
[삼국사기]에는 “소정방이 성산에서 바다를 건너 서쪽 덕물도에 도착하였다(蘇定方引軍自城山濟海 至國西德物島)”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소정방이 1,900척의 배에 13만 대군을 실어 황해를 건너왔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고대시대의 중국 함선이었던 누선은 노를 젓는 배로 해류가 복잡한 황해를 건널 수 없다는 것이 윤명철 교수의 땟목 탐험으로 입증되었다.

[삼국사기]의 기록 중에는 지리적 조건과 맞지 않는 부분도 다수 있다. [삼국사기 백제국본기]에 “의자왕 16년(656년) 백제의 충신 성충(成忠)이 목숨을 걸고 의자왕에게 간한다. (전략) 반드시 난리가 있을 겁니다. 무릇 용병하는 법은 반드시 그 지형을 살펴 택해야 하는 것이니, 강의 상류로 나가서 적을 대항해야 보전할 수 있을 것입니다.” 라는 구절이 대표적인 예이다.

당나라 병선은 금강 하구 기벌포로 들어왔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기벌포는 도성 부여의 하류에 있으니 이 기록은 사실로 믿기 어렵다. 재야 사학계는 이밖에 여러 근거를 제시하며 소정방이 인천 앞바다로 들어온 것이 아니라 중국 산동성 백마하로 내려와 백제 왕성을 공격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당시 백제 왕성은 전라도 부여 사비성이 아니라 중국 산동성 제성(諸城)이라고 보는 것이다.

 
충남 논산 황산벌
 
 
부여에서 발견된 지석(誌石)에는 도성의 이름이 ‘사비성’으로 기록되어 있지 않고 ‘내지성’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 뿐만 아니라 여러 사서에 기록된 백제 지명이 부여 공주 지방에는 하나도 남아있지 않은 것도 큰 의문이다. 그런데 중국 산동성에는 석문(石門), 대방(帶方), 석성(石城), 평원(平原), 황산(黃山), 大山(太山), 제성(諸城), 동명(東明), 백마강(白馬河), 주류성(周留城), 항성(項城), 동성(桐城) 등 백제국의 지명이 지금도 그대로 쓰이고 있다.

삼천 궁녀가 몸을 던졌다는 백마강, 계백의 오천 결사대가 목숨을 바친 황산벌이 중국 산동성에도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왜 잘 모르고 있을까. 고대사 실증이 아직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았다 하더라도 이런 사실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만으로도 우리 후대의 역사의식에 큰 보탬이 되지 않을까.

 
중국 산동성 지도
 

대륙백제 역사를 형상화란 소설로는 이문열의 [대륙의 한]이 많이 알려졌고 나라백제(일본) 역사를 다룬 소설로는 최인호의 [잃어버린 왕국]이 유명하다. 이 작품들이 우리역사 왜곡을 극복하는 데 많이 기여한 것은 분명하다. 대하소설이라 좀 부담스러울 수도 있지만 꼭 읽어보기를 권한다. 좀 가볍게 역사 서술에 충실한 작품을 고른다면 권우상의 [일본이 탄생한 건국비화]를 추천하고 싶다. 이 작품은 중국 대륙에도 신라와 백제가 있었고 대륙백제가 멸망할 때 많은 유민들이 일본열도로 이주하여 일본을 건국하는 과정을 역사적 사실을 근거로 충실하게 그려냈다.

[삼국사기]에는 백제의 마지막 왕을 의자왕으로 기술하고 있지만 [구당서], [신당서] 등에는 부여풍을 마지막 왕으로 기술하고 있고 [일본사기]에는 천지천황이 백제 부흥을 위해 2만7,000명의 지원군을 보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런 기록들을 종합하면 백제 유민들이 일본에서 강력한 세력을 형성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소설은 이런 역사 사실을 바탕으로 백제 멸망사를 그리고 있는 것이다.
 
소설에서는 나당연합군의 대륙백제 침공을 다음과 같이 그리고 있다. “656년 소정방의 당나라군은 중국대륙 하남성 낙양 서북쪽 황하면(黃河邊)에 있는 협주(陜州)를 6월 18일 출발하여 물길을 타고 동으로 내려왔다.(서해 바다가 아니라 상류 하류가 있는 큰 강으로 추정) 그리고 6월 21일 강 하류에 있는 덕물도에 도착했다.(3일 만에 서해를 건너는 것은 당시 선박이나 항해술로는 불가능하다. 따라서 3일 만에 건너왔다는 것은 바다가 아니라 강을 말한다. 따라서 백마하로 추정된다)” 현재 산동성에는 ‘덕물’이라는 지명이 없지만 황하가 한때 덕수(德水)로 불렸으며 강 하류에는 평원군 덕주(德州)라는 지명이 아직도 남아 있으니 이곳을 덕물로 추정할 수 있지 않을까.
 
덕물도 역사 기행이 어쩌다 보니 중국 산동성에까지 와 닿았다. 산동성과 한반도는 참 인연도 깊다. 삼국이 통일되고 신라, 발해의 남북국시대에 들어서면서 산동반도는 장보고의 해상기지가 세워졌던 곳이기도 하다. 한반도 서해안을 타고 올라오는 쿠로시오 해류가 인천 앞바다에서 크게 방향을 틀어 중국 산동성으로 흘러가서 선사시대 때부터 황해는 하나의 문화권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지금은 주변국과의 갈등과 긴장으로 멀게 느껴지지만 언젠가는 남북 뿐만 아니라 일본 열도를 포함한 황해권 전역이 하나의 문화권으로 친근해질 것이라 믿는다. 최근 고조되고 있는 동북아시아 긴장 국면이 하루 빨리 해소되기를 바란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시민과 함께하는 인터넷 뉴스 월 5,000원으로 소통하는 자발적 후원독자 모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