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정물 자판기를 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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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정물 자판기를 아세요?
  • 김정희
  • 승인 2010.12.06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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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칼럼] 김정희 / 시인


구정물 자판기

아프리카가 물 부족으로 신음하고 있다는 내용과 함께 물가에서 여인네나 아이들이 흙탕물을 양동이에 퍼 담는 사진이 이따금 신문지면을 장식하곤 한다. 삼천리금수강산의 후예답게 물을 맘 놓고 쓰는 우리로서는 생소한 광경에 불과하여 대개의 사람들은 화보로서의 가치 그 이상을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지난 가을 유니세프가 서울 강남역 부근에 등장시킨 희한한 물건(?)은 아마도 일거에 많은 사람의 이목을 집중시켰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름 하여 ‘구정물 자판기’. 이는 구정물을 마시면서 고통스럽게 연명하다 죽어가는 아프리카 빈민의 아이들을 살려내고자 유니세프가 대우증권과 손잡고 내놓은 것인데, 시민이 구정물 한 병을 천원에 구입하면 대우증권이 9천원을 더해서 한 명의 아프리카 어린이가 1년간 깨끗한 물을 마실 수 있게 된다.

지난 10월에 이명박 대통령은 녹색성장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우리처럼 물값이 싸고 함부로 다루는 나라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것은 곧장 세인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며 ‘수도요금 인상의 사전 포석’이라거나 ‘수도 민영화사업 조기 추진을 위한 발판을 놓는 거’라는 등의 볼멘소리가 이어졌다. 다수 국민들의 뜻을 무시한 채 4대강 사업을 강행하고 여러 국가사업들을 민영화하는 데 앞장서는 대통령이므로 그 말의 배경은 익히 짐작할 수 있으나, 말 뒤에 숨겨진 진의에 대해 따지고 들기 이전에 그 발언을 떼어놓고 본다면 틀린 말이 아니다. 

물은 목숨과 직결되는 물질이다. 해서 예부터 동서양을 막론하고 임금들은 치산치수를 국가 경영의 최대 덕목으로 삼고 물 확보에 심혈을 기울였는데, 이는 현재 진행형이면서 근 미래에는 국가의 흥망을 가르는 기준이 될 것이다. 과도한 산업화와 생태계 파괴로 지구환경에 이상이 생기면서 지구촌의 물이 빠르게 고갈되어 가는 데다 물 분배의 불균등 문제로 각국 간의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물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어서 존 F 케네디 대통령까지 “물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은 노벨평화상과 과학상 두 개를 타게 될 것”이라고 한 걸 보면 그 심각성을 가늠할 수 있다. 유엔도 물로 인한 국제분쟁 해결에 앞장서 왔지만 국가 간에 양보가 이루어지지 않아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다. 그런 와중에 21세기에 접어들면서부터는 다국적 기업들의 물 시장 장악으로 확대되면서 물의 무기화 조짐까지 나타나는 두려운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물 문제에서 자유로운가. 대표적으로 산이 많은 강원도의 물 부족현상이 사회문제로 부각되고 있고, 내륙지방은 반복되는 가뭄현상으로 상수원 및 하천수가 고갈되어 해마다 생활, 공업, 농업용수 부족으로 허덕인다. 이런 걸 보면서도 우리는 끄떡없다고 호언장담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현재 자연이 파괴되고 사라지는 속도를 본다면 그 말을 온전히 책임지기 어려울 것이다. 대통령의 말을 뒷받침하듯 우리 사회에서 물을 ‘물 쓰듯’하는 현장을 보는 것은 어디서나 가능하다. 호화 목욕업소들, 초대형 물놀이 시설, 수영장, 세차장이 증가하고 있는데다 가정, 공장, 농촌, 공공장소에서 물 낭비는 지속되고 있다. 그뿐인가. 이 정부가 들어서면서 여의도 면적의 18배나 되는 산지가 골프장으로 둔갑해 물 부족 현상을 가중시키고, 관광명소들은 지하수를 무단 사용하고, 대기업들은 저마다 물장사에 뛰어들어 지하수 뽑아내는데 혈안이 되어 있는 것을. 

현대가 아무리 소비가 미덕이고 능력인 사회라지만 이제는 물 소비에 대한 인식을 바꿔야 한다. 오일쇼크보다 더 크고 무서운 재앙이 될 워터쇼크가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지금 받아들이지 않으면 우리의 후손들이 고통을 겪게 될 테니 말이다.

우리가 무감각하고 무절제하게 물을 사용하는 동안 지구 반대편의 누군가는 물 부족으로 죽어가고 있다. 이 비극이 계속되지 않도록 힘을 보태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도리다. 유니세프의 행사가 촉매제가 되어 보다 많은 사람이 아프리카의 고통에 관심을 갖고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주기를 기대한다. 탈무드는 말한다. “하나의 생명을 구하는 자는 세상을 구하는 것”이라고.


김정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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