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아래 숨은 짠맛, 연안부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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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아래 숨은 짠맛, 연안부두
  • 유광식
  • 승인 2019.08.23 08: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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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인천해양공원 일대 / 유광식

인천종합어시장 좌측 입구, 2019ⓒ유광식
 


중구 연안동에 위치한 연안부두는 인천 사람이라면 섬에 가거나 어시장을 방문하기 위해 한번쯤 와봤을 곳이다. 그 중심에는 해양광장이 있는데, 일명 상트페테르부르크 광장이라고 불린다. 뜨거운 여름, 제2의 왜란이 일어난 것처럼 불길같이 밀려오는 일본의 무역 보복이 더위 하나를 추가했다. 일본의 몸짓을 전방위적으로 막아서는 한국의 입장을 보면 흡사 전쟁을 방불케 하는데, 한반도 정세가 정말 불구덩이 같다는 생각이 든다. 말복 날 찾은 연안부두에는 그렇게 여러 나라의 사연 깊은 이야기가 숨어 있었다.

 


어깨 마주 걸고 정박 중인 연안부두의 어선들, 2019ⓒ유광식
 

광장의 가장자리를 걷다 보면 무슨 숨바꼭질을 하듯 여러가지 기념비들을 하나 둘씩 만나게 된다. 제일 먼저 만난 기념비는 우리가 잘 아는 SK와이번스 지정 응원 노래로, 8회초 경기가 끝나면 나오는 김트리오의 <연안부두>를 기념한 노래비였다. 이 기념비를 보면 아마 누구나 한 번, 어쩌다 한 번 따라 부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수많은 어선의 맞닿은 어깨를 따라 게처럼 걷다 보면 지난 1904년 러·일 전쟁 시 자폭했던 러시아 순양함 바랴크함의 승조원 추모비를 만나게 된다. 러시아와 일본의 싸움 끝에 러시아 배가 자폭한 것인데, 이를 두고 러시아가 그 의미를 치켜세우고 있는 것이다. 배의 깃발은 인천에 남아 있다.

광장 무대 옆에는 또 하나의 비가 있는데 배호의 것이다. 기념비에는 불세출의 가수 배호의 흉상과 함께 '비 내리는 인천항 부두' 노래가 새겨져 있다. 젊은 나이에 생을 마쳐야 했던 배호의 음악은 그 잔향이 깊었던 것인지 지금까지도 음악제 등의 행사가 이어지고 있다. 내게는 조금 생소하지만 인천을 노래한 대표 가수임은 틀림없어 보인다. 

 

해양광장 한쪽에 자리 잡고 있는 배호 흉상과 노래비, 2019ⓒ김주혜
 
러시아의 전통 목각인형 마트료시카 조형물, 2019ⓒ유광식

광장은 지하로는 거대한 주차장이고 지상은 연안동 사람들의 그라운드이자 여름에는 아이들의 물놀이장이 된다. 광장 무대에서는 간혹 전국노래자랑이 열리기도 한다. 오후 4시가 넘은 시간에도 뙤약볕이 눈을 뜰 수 없이 광장에 쏟아지고 있었고, 광장 한편에 열린 물놀이장에서는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그늘을 찾아 물놀이장 피서를 즐기고 있었다. 그 모습에 맘 같아선 나도 뛰어 들어가고 싶었지만 잘 참았다.

물놀이장 옆으로는 조업을 마치고 돌아오는 어선들과, 떼를 이루어 이동하는 사람들의 활기찬 모습이 보였다. 그와 동시에 어느 젊은 인생의 마지막을 인도하며 해상장을 치르기 위해 바다로 향하는 유가족의 행렬을 마주하게 되어 조금은 스산한 기운을 느끼기도 했다. 누구에게 안내하는지 모르게 공원 스피커에서는 자꾸만 ‘오늘 팔미도 마지막 유람선이 곧 출발합니다.’라는 음성이 하늘에 쏘아졌다.

 

물놀이장의 시원한 우산폭포, 2019ⓒ유광식
 

광장을 한 바퀴 돌고 나서 광장매표소의 엘리베이터를 타고 7층 전망대에 올라갔다. 덥기도 했거니와 탁 트인 연안부두의 조망을 갈매기의 심정으로 바라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전망대에서는 멀리 인천대교와 영종도, 월미도까지 보였고, 연안동을 대표하는 첨탑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다시 1층으로 돌아왔을 때는 오후 5시경으로, 광장 아래 물놀이시설 운영을 마친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언제 그랬냐는듯 사람들은 일제히 사라지고 없었다.

 

광장매표소 건물 7층 전망대에서, 2019ⓒ김주혜

탁 트인 해양광장, 2019ⓒ김주혜

연안부두에 왔다면 근처 어시장을 빼놓고 갈 수 없다. 삼복더위 속에 늦은 오후에도 해가 작열하여 광장에서 어시장까지의 길이 불구이판처럼 느껴졌다. 더위를 식히기 위해 편의점에 들러 음료만 3개나 사서 벌컥벌컥 마셨다. 불더위를 이기고 도착한 어시장은 활어처럼 싱싱한 활기가 넘쳤다. 어시장 입구 쪽 점포의 한 아저씨는 물까지 베어버릴 기세로 열심히 칼을 갈고 있었다. 생선들이 아마 가장 무서워할 아저씨일 것만 같았다.

어시장 안은 환하고 푸른 기운이 맴돌았다. 얼음이 수북이 쌓여 있어서인지 조금 전처럼 덥다는 생각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살찐 민어와 삼치, 병어 등을 구경하며 입맛을 다셨다. 어시장에는 각종 생선과 건어물, 젓갈류가 풍성했다. 살아 움직이는 생선도 생선이지만 어시장 속의 사람들도 팔딱거리는 것 같았다. 어시장 바로 아래층 지하에는 다닥다닥 붙어있는 식당들이 뻐금뻐금 구내식당을 자처하며 손님을 맞이하고 있다.

 

어시장사거리에서 바라본 아치형 인천종합어시장 건물동, 2019ⓒ유광식

주말을 맞아 어시장을 찾은 사람들, 2019ⓒ김주혜

시원하게 피서 중인 생선 무리, 2019ⓒ김주혜

연안동 숙박 골목 풍경, 2019ⓒ김주혜
 


어시장 앞쪽에는 연안동에서 가장 큰 주거단지인 비취맨션 아파트가 있다. 소위 ‘라이프아파트’라고 더 잘 알려진 이곳은 지금도 풍채가 좋다. 그래서인지 주변에는 ‘라이프’라는 이름을 내걸고 있는 상호가 많다. ‘바다’라는 회사에 나가 고기를 낚고, 이를 육지에 공급하며 사는 사람들. 그 외에도 골목 곳곳에 짠맛 가득한 옛이야기가 잔뜩 녹아 있다.

당시 풍성한 의미로 쓰였던 ‘백화점’, ‘라이프’, ‘맘모스’, ‘올림푸스’ 등의 이름을 보면서 시절에 대해 애잔함이 파도에 밀려와 노래가 되어 정박하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 가 닿은 곳은 여객터미널 방향이었다. 잊지 말아야 할 우리 모두의 기억, 5년 전 이곳 터미널에서 떠난 세월호가 돌아오지 못했다.

 

종합상가 뒤쪽 골목 풍경, 2019ⓒ유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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