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에게 학급임원 선거는 어떤 의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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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에게 학급임원 선거는 어떤 의미일까?
  • 최광일
  • 승인 2019.08.28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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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5화 - 최광일 / 인천가현초교 교사





우리 학교는 학급임원 선거와 함께 2학기를 시작한다. 학급 회장과 부회장 제도가 있는 전국 초등학교의 모든 교실에서 벌어졌을 광경이기도 하다. 개학 첫날 종례시간에 내일 학급임원 선거가 있음을 알렸다. 3학년 1학기에 이어 두번째 선거라고 학급임원이 무엇인지를 묻지 않는다.

1학기 때 학급임원이 무엇인지를 묻는 질문을 받고 답하기 곤란해서 학급회장 선거라고 얼버무렸다. 또 다른 아이가 질문한다. “학급회장은 무슨 일을 해요?” 무엇이라고 답해야 하나? 그래서 '반장'이라고 했다. 그제야 질문한 아이가 학급임원 선거의 의미를 알아듣는다. 아이들은 이해하지만, 선생님은 궁금하다. ‘학급회장’이 공식적인 말이고, ‘반장’은 옛 말인데 아이들이 어떻게 알까? ‘반장’이 ‘학급회장’보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반의 장’ 선거라는 ‘장’ 문화가 남아있기 때문일까?

학부모가 개입하거나 학생들끼리 과열되지 않아 차분한 분위기에서 선거를 진행한다. 그럼에도 학급임원 선거와 후보등록을 말했을 때 반응은 세가지로 나타난다. 학급을 위하여 봉사하고 리더십을 함양하려는 아이, 무관심한 아이, 선거를 외면하려고 애쓰는 아이.

다양한 반응이 일어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이들의 성격 탓이리라. 또한 부모님의 학교에 대한 관심 정도를 반영하기도 한다. 관심은 있지만 외면하려는 몇몇 아이들이 선생님을 아프게 한다. 어떻게 아이들은 임원선거에 나가지 않는 것이 부모님을 도와주는 일임을 본능적으로 알았을까? 학급임원 선거가 변했음에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우리 학교는 학급 회장과 부회장을 한번에 선출한다. 득표수가 많은 학생이 회장, 2번째와 3번째 득표자가 부회장에 당선된다. 23명 중에 후보로 4명이 나와 후보 3명은 회장과 부회장에 당선되고, 한명은 후보에 만족해야 한다. 공약은 비슷비슷하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000입니다. 제가 회장이 된다면 첫째, 도움이 필요한 친구들을 적극적으로 돕겠습니다. 둘째, 깨끗하고 안전한 교실을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셋째, 즐겁고 행복한 반이 될 수 있도록 다정하고 친절한 회장이 되겠습니다. 저를 뽑아 주신다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학급 회장 선거공약 발표)

공약을 발표하는 학생들을 보면서 ‘어린 권력’의 순수함이 초등학교 시절 나를 행복하게 불러낸다. 그와 동시에 의문이 일어난다. 왜 그 때와 지금의 선거 공약이 변하지 않았을까? 학급회장 후보로서 해야 할 말은 공식은 있기 때문일까? 부모님의 도움을 받았기 때문일까? 무엇보다도 문제의식만큼 학급임원 선거를 준비하지 못한 교사의 탓이리라. 민주주의, 리더십, 봉사는 공약 발표나 글이 아닌 경험으로 직접 배워야 한다.

학급임원 선거의 문제는 개표 과정에서 잘 드러난다. 개표 1위를 달리는 학생은 당당하고 아이들은 환호하지만 환호만큼 어두워지는 아이들이 있다. 애써 모로는 척, 아무 일도 아니라는 척하지만, 아이 표정 속에 아픔이 고스란히 전달된다. 학급 임원 선거에 무관심하거나 외면하려는 학생들에게 선거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선거의 의미는 사라지고, 투표는 관습적인 형식으로만 남지 않을까? 역사 속에서 선거는 피와 땀으로 이루어진 값진 승리인데, 교실에서 희화화되고 있지 않는가? 그래서 역사는 한번은 비극으로 한번은 희극으로 반복되는가?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한다.

학교는 한사람 한사람이 모두 귀하고 소중하며, 더불어 살아가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 그래서 학급 회장과 부회장 제도보다는 학급을 위해 많은 학생들이 임원 활동을 경험할 필요가 있다. 아이들이 세상을 더욱 적극적으로 경험했을 때 스스로 자신의 행복과 삶을 찾아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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