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위벌레의 모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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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위벌레의 모성애
  • 은옥주
  • 승인 2019.09.04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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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 은옥주 / 공감심리상담연구소 소장
 
 
 
마음이 찡하게 아파왔다. 수목원 숲 해설사의 숲 이야기를 듣는 중이었다. 잎이 서너 개 달린채 잘려져 있는 도토리 나뭇가지를 손에 든 해설사가 물었다.

 

 

“이 가지를 누가 이렇게 잘랐을까요?”
“다람쥐요”
 
나는 스스럼 없이 자신있게 대답했다.
 
“네, 그렇게 다람쥐가 오해를 많이 받아요”
그는 잘린 가지에 오종총 달려있는 도토리를 보여주었다.

도토리 껍질에는 아주 작은 구멍이 하나 씩 나있었다. 그 작은 구멍은 도토리 거위벌레 어미가 작은 드릴처럼 생긴 뿔로 껍질을 뚫고 안에 알을 낳아 생긴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나뭇잎 3, 4개가 달리게 가지를 똑 잘라서 땅에 떨어트린다고 한다. 가지가 땅에 떨어지면 도토리 속에 있던 알이 부화되어 도토리를 먹으며 애벌레가 된다는 것이다.
 
애벌레는 도토리를 먹으며 자란 후 땅으로 기어오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싱싱한 먹이를 먹이기 위한 어미 벌레의 모성애로 인해 나뭇가지를 자른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여기 저기 무수히 많은 나뭇가지가 흩어져 있고 그곳에 달린 도토리 껍질에는 하나 같이 아주 작은 구멍이 나있었다. 그 작은 벌레가 단단한 도토리 껍질에 열심히 구멍을 뚫고 나뭇 가지도 톱처럼 썰고 또 썰어서 자르는 구나! 이런 모성은 누구에게 배우는 것일까, 본능적인 몸짓일 뿐 일까. 잠깐 숙연해지는 마음이었다.
 
어미의 노력 덕분에 알에서 깨어난 애벌레는 밖으로 나와 땅 속에서 얼마간 살다가 어미 거위벌레가 된다고 한다. 땅바닥에 무수히 떨어져 있는 거위벌레의 모성애를 보면서 또 다른 한 장면이 떠올랐다.
 
어린 시절, 7살 쯤 되었을 무렵, 우리 옆집에는 몸이 자그맣고 부지런한 아지매가 살고 있었다. 그녀는 아들 아홉에 딸 한명, 합이 열 명이나 되는 아이들을 연년생으로 낳아 키웠었다. 그집 아이들은 구멍이 숭숭 뚫린 빛바랜 런닝셔츠를 입고 겨우 가릴 곳 만 기리며 컸다. 식사 시간이면 커다란 바가지에 보리밥과 푸성귀 나물을 넣고 고추장으로 쓱쓱 비벼 숟가락을 푹푹 꽂아 한 바가지에 너댓 명 씩 붙어앉아 밥을 퍼 먹었다. 아이들 이름이 끝자만 달라서 다 외우지도 못했다고 한다. 밤에는 한 방에서 쭉 누운 아이들을 머리 숫자로 세며 확인을 했단다.
 
어느 날, 옆집에서 날카로운 아지매의 비명 소리가 들리고 이어서 통곡소리가 났다. 담넘어 보니 한 아이가 엄마 품에 안겨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아지매는 필사적으로 아이에게 쌀뜨물을 입으로 넣고 아이는 피를 토하며 울었다.
 
비누가 귀했던 그때, 집에서 비누를 만들려고 놓아둔 양잿물을 아이가 마셨다고 했다. 그 독한 것이 입에 닿지 마자 아이 입안이 새카맣게 타들어가 쌀뜨물로 씻어내고 있었던 것이다. 아지매의 애타는 울음소리와 아이를 부둥켜 안고 어떻게든 해보려고 애쓰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엄마에게는 열 명이나 되는 아이들 한명 한명이 다 소중했던 것이다.
 
그 아이는 엄마의 정성 덕분에 살아나 지금은 지역사회에서 중요한 일을 하며 살고 있다. 누가 가르치주지도, 배우지도 않은 모성애는 사람이나 미물이나 참 다를 것이 없는 것 같다. 생각해보면 내가 아이들을 키울 때에도 아이가 몹시 아플 때 대신 아파주고 싶었고, 대신 목숨이라도 주고 싶은 순간들이 참 많았다. 한 생명을 키워내는 일은 참 위대하다는 생각이 든다. 거위벌레도, 나도, 내 딸도 한 생명을 키워내느라 참 애썼고 지금도 애쓰고 있구나. 우리의 작은 어깨들을 토닥토닥 다독여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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