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일은 아무도 모르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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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일은 아무도 모르는 거죠.
  • 장재영
  • 승인 2019.09.25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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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 장재영 / 공감미술치료센터 기획팀장


“사람 일은 아무도 모른다.” “인생지사는 새옹지마.” 라는 말처럼 삶이란 정말 변화무쌍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20대 중반 호주에서 워킹홀리데이를 하던 시절, 제가 겪었던 인상 깊은 일이 하나 떠오르는데요. 처음 호주에 도착했을 때, 시드니에서 저렴한 숙소를 찾다가 킹스크로스라는 지역의 여행자 숙소에서 잠시 머물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알게된 사실이지만 그곳은 마약중독자의 천국이라 불리우는 위험한 동네였지요.
 
마침 옆 침대에서 만난 한국인 두 분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고 시드니 시내 한 바퀴를 함께 여행하면서 삶의 깊은 이야기를 나눌 정도로 금방 가까워졌습니다. 낯선 땅에 막 발을 딛은 첫 주간을 좋은 분들과 외롭지 않게 보내다니 참 행운이었지요. 그리고 아쉽지만 한 주 뒤에 한분은 한국으로 또 한분은 다른 지역으로 각자의 길을 떠났습니다.

 
 
<킹스크로스 역 앞의 모습, 낮에는 제법 한산하다>


< 출처: www.ozgekko.com 아침의 하버브릿지와 오페라하우스>


그렇게 시드니에 머물게 된 수개월 동안, 열심히 일도하고 영어공부도 하면서 많은 사람을 만났습니다. 다양한 나라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다양한 삶의 모습을 보면서 가보고 싶은 곳도 점점 많아졌습니다. 그곳의 생활은 즐거웠지만, 언제 올지 모를 기회에 호주라는 나라를 좀 더 경험하고 싶었기에 그동안의 짐들을 가볍게 정리하고 다른 지역으로 떠나게 되었습니다.
 
시드니에서 차로 8시간 거리의 브리즈번이란 도시에 잠시 머물면서 황금빛해변으로 유명한 골드코스트도
여행하고 신바람 나는 두주가 훌쩍 지나갔습니다.
돈은 모으는게 어렵지 쓰는 건 금방이라고 나름 아껴썼던 여행경비도 어느새 간당간당해질 때쯤 그곳을
머무는 여행자들을 통해 토마토 농장에 가면 짭짤한 벌이가 된다는 소문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농장일은 호주에 와서 한번쯤은 꼭 시도해보고 싶었던 이색적인 경험이었고 마침 돈을 꼭 벌어야하는
상황이었기에 남은 경비를 탈탈 털어 토마토 농장이 있는 북쪽으로 향했습니다.

호주라는 나라는 어찌나 땅덩이가 넓은지 ‘Bowen’이라는 토마토 농장까지는 차로 30시간을 가야만 했습니다. 하루 안에 갈수 없는 거리라 2박 3일간을 이동해야했습니다. 지치고 피곤했지만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기대감에 부풀어 농장에 도착하였습니다.

 
 
<토마토 농장 Bowen의 모습>
 
하지만, 저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굉장히 절망적인 2주간이었습니다. 막상 일을 하려면 자리가 날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었고 통장잔고는 점점 바닥을 치닫고 있었습니다. 시간은 많은데 할 일은 없고 남은 돈으로 살아야하니 최대한 돈을 쓰지않고 버텨야 했습니다.
아침마다 일거리가 있는지 농장에 물어보러 다녔지만 일을 잡는 것은 쉽지 않았고 정말 어찌해야할지 걱정이 많이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구세주 같은 인물이 나타납니다.
 
“혹시 DK형 아니세요? 저는 시드니에서 옆자리에 묵었던.. 이곳에서 만나다니!!.”
“아.. 혹시 매튜?? 아 진짜?? 대박신기하다!!” 
(호주에서는 다들 영어이름을 쓰더라고요.. 오글거림에 주의)
 
허기진 배를 채우고자 들렀던 한인교회에서 우연히 마주친 낯익은 얼굴, 바로 호주 오던 첫 주에 시드니에서
함께 여행하던 그 형이었던거죠. 
우리는 세상이 좁다는 걸 실감하면서 정말 반갑게 인사하고 그동안의 안부를 나누었습니다. 시드니에서 잠시 머물다가 각자의 길을 떠났던 DK형은 이곳에서 꾸준히 일해서 번 돈으로 차도 사고 몇 주 있다 여행을 떠날 준비 중이라고 하더군요.
 
저는 DK형이 너무 부럽고 멋져보였습니다. “할 일 없으면 같이 낚시나 갈까?” 하면서 차를 태워 주고 낚시를 하면서 담배를 한 모금 빨아들이는데 그때의 모습은 의연함 그 자체였습니다.
그날은 맛있는 저녁도 얻어먹고 형이 농장주에게 저를 소개해준 덕에 일도 할 수 있게 되었지요. 완전 은인이 따로 없었습니다. 너무 고마웠죠. 그래서 DK형이 떠나는 날 호주 있는 동안 꼭 만나자고, 다음에 만나면 꼭 내가 밥을 사리라 약속하며 형을 배웅했습니다.
 
그렇게 농장에서 열심히 두달 간 토마토를 따면서 돈을 모은 뒤 파란바다, 아름다운 산호초가 있는 케언즈라는 지역에서 지내고 있을 때쯤 DK형한테 연락이 왔습니다.


 

 
“매튜야.. 케언즈로 여행 갈건데 볼거많아? 나 거기가면 밥은 사주나?”
“그럼요. 형~ 오시면 제가 다 안내 해드릴께요. 밥은 형 하는거 봐서요.”
 
형이 머물던 한 주간 맛있는 밥도 사고 가이드가 되어 고마웠던 마음을 마음껏 베풀었습니다. 힘들 때 나를 도와줬던 사람에게 은혜를 갚는다는 느낌은 참 뿌듯하고 마음이 따뜻해지는 느낌이었죠. 그렇게 기분 좋고 즐거운 한 주가 지나갔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몇 주 뒤에 온 DK형의 연락이었습니다. 다른 지역을 여행하던 중 카지노에서 5000불을 날렸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나라 돈으로는 대략 500만원 정도 되는 돈이었지요. 너무 큰돈을 날렸다는 생각에 조금 놀라기도 했지만, “형.. 그럴수도 있죠 앞으로는 카지노에 안 가는게 좋겠어요.” 하며 형을 위로하였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그동안의 호주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쯤이었습니다. 시드니 돌아와 2주간을 보내던 중 마침 시드니로 돌아왔다는 DK형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수척해진 외모.. 흐리멍텅한 눈빛을 하고 나타난 형은 저한테 이런 말을 합니다.
 
“나 그 이후에도 카지노에서 만불 더 잃었어.. 그래서 차도 팔고.. 농장 다시 가야될 것 같아. 혹시 돈 좀 빌려줄 수 있니?
 
진심으로 고맙고 응원했었던 형의 모습이 많이 안타까웠지만 여행에 모든 돈을 투자한터라 빌려 드릴 만한 돈은 없었습니다. 대신 근처 맥도날드에서 빅맥세트를 라지 사이즈로 크게 사드리고 행운을 빌어드렸습니다. 지금은 어떻게 지내실지 문득 궁금해지네요.
 
이 경험을 통해 깨달은 교훈은 ‘남을 부러워할 필요 없구나.’ 인생지사가 새옹지마라는 말이 너무 와 닿는 경험이었습니다. 그만큼 한 사람의 인생은 언제든지 큰 변화의 물결을 맞이할 수 있고 지금 잘된다고 쭉 잘되란 법 없고 지금 힘들어도 쭉 힘들란 법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다른 사람을 부러워하기보다 자신의 중심을 따라 다른 곳으로 흔들리거나 치우치지 않고 꾸준히 가다보면 스스로 원했던 삶의 모습과 좀 더 가까워질 수 있지 않을까요?

사람 일은 모르는 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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