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레미 구름 골짜기, 백운역 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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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레미 구름 골짜기, 백운역 일대
  • 유광식
  • 승인 2019.10.04 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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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백운역 일대(부평3동) / 유광식
이 주변의 주요 통로인 백운고가교 아래, 2019ⓒ유광식
 

부평은 그 넓이만큼이나 많은 역이 밀집해있다. 자주 이용하는 역은 부평역, 동암역, 부평구청역인데 여기에 하나를 추가하라면 백운역이다. 인근 주민들 외에는 특별한 일이 아니고서야 백운역을 이용할 일이 드물다. 그런데도 이 일대를 내가 자주 드나들게 된 것은 동네 군데군데 은밀하게, 그리고 대단하게 드러나 있는 흔적들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였다. 

 

함봉산 중턱에서 바라본 구) 송학사 부지에 들어선 부평아트센터, 2018ⓒ유광식
 

흰 구름이라는 뜻을 지닌 백운白云역 일대에는 부평의 대표적 문화시설인 부평아트센터가 있다. 센터는 과거 인천 기무사 터(송학사)에 살포시 자리하고 있어, 가끔 얼굴이 하얗게 질릴 것도 같다. 이곳은 한남정맥 줄기의 함봉산과 법성산 사이에 자리한 부평과 주안의 중요한 갈림길이 되는 언덕배기인데, 함몰되어 감추어져 있는 모양새가 역력해 보이기도 한다. 그 연유로 군부대가 자리하고 낮은 계층들이 모여 살 게 된 건 아닐까 조심스레 짚어 본다. 백운공원 안에는 이웃 십정동에 살며 나병 시인이라고 불렀던 고 한하운 시인의 《보리피리》 시구절이 적힌 비가 세워져 있다. 공원 운동장에서는 피리 불며 놀고 싶을 초등학교 축구부 아이들이 축구 지도를 받고 있었다.

 

부평아트센터 십자 횡단보도 앞, 2019ⓒ유광식
 

백운공원 내 자리한 고) 한하운 시인의 비, 2019ⓒ유광식
 

백운역은 1호선 직통열차가 서지 않고 통과하는 일반역이다. 에스컬레이터도 한줄서기 용이라, 뜀박질해서 1등이 아니면 급히 오르고 내릴 수 없다. (계단을 이용하자!) 역 주변의 이야기라면, 건너편 신촌마을 이야기가 먼저 풍겨 온다. 신촌 일대는 과거 미군 부대의 영향으로 미제의 흔적이 깊은 장소이다. 이와 연관해 부평은 음악으로 지역 가치를 높여가고 있는데, 올해 부평풍물축제가 아프리카돼지열병의 여파로 취소되어 안타까움을 더했다. 그 앞 부평공원이 부대 자리였고, 쌍굴(철도교)을 사이로 그 너머에는 해방촌이 있다. 공원 입구 앞에는 강화의 이름들을 단 횟집들이 긴 호를 따라 이어지고, 매일 저녁 반상회 분위기가 무르익는다. 

 

백운역 2번 출구 앞, 2018ⓒ유광식
 

백운역에서 동암역 사이는 철도 노선이 90도로 꺾이는 구간이다. 꺾이는 지점이 늘 위태로운 절벽이어서, 어렸을 때 서울에서 막내 이모네 집(동암역 하차)에 갈 적마다 혹시 무너지지는 않을까 걱정했던 기억이 있다. 실제로도 그랬는지 옹벽 공사를 지난하게 했던 것 같고, 몇 년 전에는 아예 다리 상판을 올려 그런 걱정을 불식 시켜 놓기는 했다. 그런데 야외음악당으로 활용하겠다던 다리 상판 위에는 잡목들의 웅성거림만 있을 뿐 황량하기 그지없다. 야외음악당은 지양했으면 좋겠다.   

 

지금은 사라진, 백운고가교 아래 버스 차고지, 2010ⓒ유광식
 

백운역 한쪽 편은 현재 철거수순을 밟고 있는 백운2주택재개발 구역이다. 3층 규모의 주택들이 대다수 있었던 완만하고 평평한 지대가 최근 다 이사를 가 버렸다. 현재는 몇몇 집들만 남아 거주를 증명하고 있다. 가장 규모가 컸던 ‘상해연립’이 본보기였는지 철거되었고, 곳곳의 진입 봉쇄조치로 이제는 드나들거나 관통해 걷기가 어렵게 되었다. 전에는 부평아트센터로 가는 좁고 시끄러운 인도 길을 대신해 조용한 골목길로 걸어갔었는데, 이젠 빨간 벽돌집들이 주는 따뜻함과 지름길 같은 짜릿함을 던져버려야 하기에 아쉬움이 커졌다. 한편 법성산과 함봉산의 송전탑 사이로 송전선로가 가로지른다. 뭔가 수상하지만, 문화적 상상으로 송전선로 중간에 그네를 하나 달면 어떨까 싶기도 하다.  

 

괴물이 된 커튼에 삼켜진 주택, 2019ⓒ유광식


건물주의 절절한 마음을 대신한 작품 시위!?, 2019ⓒ유광식
 

모두 이사를 하고 비워진 상해연립 마당에서, 2019ⓒ김주혜
 

부평생활문화센터 ‘공감168’(옛 송학사 건물) 우측 편에는 6.25 전적비가 세워져 있다. 한국전쟁 당시의 부평지역 전투를 기리는 전적비는 사실 너무나 오랜 세월이 흐른 2008년에야 세워졌다. 한편 부평도서관도 인근에 자리해 있다. 도서관치고 오래된 형님뻘인 이곳은 산 아래에서 은근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도서관이다. 곳곳에 숨겨진 장소가 많아서일까? 넓지 않은 언덕배기에 여러 요소가 옹기종기 모여 지내고 있는 구름 송송 문화지대! 재밌는 곳이다.  

 

“여보게, 우리 모여서 얘기 좀 할까?”, 2019ⓒ유광식


개인적으로 백운역은 부평의 문화발전소 정문으로 보인다. 신·구문화의 단면을 살펴볼 수 있는 첫 발걸음을 뗄 수 있는 곳이니 말이다. 부평지역에는 문화예술인이 많은 것으로 안다. 음(音)의 도시로 발돋움 하려는 부평! 그 시작과 기준이 되는 장소로서, 백운역 일대를 손꼽아 보게 된다. 기억은 어느새 백운2주택재개발 때문에 인근으로 이사 간 <서울식당> 묵은지 닭볶음탕의 맛에 이끌린다. 또한 근처 <산동포자>와 <기차길>에서의 시간은 나도 모르게 흥얼거리며 자음(自音)을 만들어 낸 것인지도 모른다. 애틋해지면 다가온다고 한다. 가까이는 아니더라도 부평에서 사는 날이 올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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