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사랑을 살고 떠난 시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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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사랑을 살고 떠난 시인들
  • 최일화
  • 승인 2019.10.11 0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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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시단] 인천 작고 시인들 회상하며 - 최일화 / 시인

 

지난 10월 3일 채성병 시인이 세상을 떠났다. 인천에서 오래 살다가 수원으로 이사한 시인이다. 뇌졸중으로 고생하다가 이승을 하직하였다. 백세시대라 일컬어지는 시대에 병마와 싸우며 고생하다가 저승으로 떠났다. 죽음을 보는 관점에 따라 죽음에 임하는 방식은 다 다를 것이다. 시인이 어떻게 준비하고 어떤 희망을 품고 세상을 하직했는지 짐작할 수 없지만 함께 오랫동안 어울렸고 희로애락을 함께 했던 동년배 시인을 떠나보내는 마음은 착잡하다.

 
부음을 듣고 이튿날 김영승 시인과 함께 수원 장례식장으로 갔다. 장례식장에 도착하니 포천에서 박정규 소설가 내외분이 먼저 와 있었다. 박정규 소설가는 채성병 시인의 고려대 3년 선배이자 인천에서 오래 함께 어울렸던 문단의 동료였다. 사모님 되시는 정진영 화가는 새를 즐겨 그리는데 <걸어다니는 새 그림전>에 간 적이 있다. 꽤 오래 전 해안동의 한 화랑 전시회에 채성병 시인, 강만수 시인과 함께 간 것이다. 이때 최승자 시인을 만나 함께 기념 촬영을 하기도 했다.
 

채 시인 빈소는 조용하기만 했다. 조문객이 거의 없었다. 우리는 함께 채 시인에 대한 추억담을 나누며 한참 머물다가 박 소설가 내외분 먼저 떠나고 김영승 시인과 나는 30여 분 더 있다가 인천으로 출발했다. 떠나면서 채 시인 아들에게 아버지 잘 모시고 납골당 번호를 문자로 알려달라고 부탁을 했다. 나중에 수원 지나갈 때 잠깐 들러 친구 시인을 추억하리라.
 

평화 / 채성병
 
날이 흐린다
비는 오지 않고 그저 날만 흐린다
가을들판 날만 흐려도
눈에 보이는 색깔들이 너무도 선명하이
 
반성의 김영승 시인은 날더러 자꾸 평화를 써 보라구
글쎄 눈에 보이는 이것이 평화지 뭐
가을들판 누렇게 벼들이 고개 숙이고
소래 가는 길목엔 코스모스 꽃잎들 저리도 휘날리는데
저녁엔 술이나 한 잔 할까 우리
소래역사 울타리 쳐진 벽을 넘어서
철도 길에 퍼질러 앉아 두꺼비표 소주나 딸까
통통하게 살 오른 망둥이나 안주 삼아 우리
 
다시 날이 개인다
날이 개이니 가을 하늘 더욱 좋고
평화는 이게 바로 평환데
오늘은 아무래도 취할 것 같으니

 
인천에서 함께 어울렸던 동년배의 시인 여러 명이 유명을 달리했다. 송서해 시인(1948~1993), 이효윤 시인(1949~1997), 이영유 시인(1950~2006)이 그들이다. 채성병 시인(1950~2019)이 또 고인이 되었다. 1985년 내가 첫 시집을 내고 인천문협 회원들에게 시집을 보내면서 인천 문인들과 어울리기 시작했다. 내 시집 발문은 랑승만 선생님이 쓰셨다. 랑 선생님은 한국잡지기자협회 이사회에 참석했다가 쓰러져 오래 병석에 계셨다. 나는 당시 인천에 문인협회가 있는지도 몰랐다. 아니 인천에 시인 소설가가 있는지 조차 몰랐다. 문단에 문외한이었던 내가 아는 문인은 교과서에 나오는 문인, 일제시대나 해방 전후의 문학사에 나오는 문인들이 고작이었다.
 
랑승만 시인은 어느 여성지에서 투병생활 관련 기사를 읽고 숭의동 허름한 연립주택으로 찾아가 발문을 부탁드렸던 것이다. 1985년 가을이었다. 선생님은 내 작품을 일일이 읽고 자세하게 평을 하여 주셨다. 나는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을 선생님 나름대로 살을 붙여 평을 해 주시니 내 작품이 한결 돋보이는 것이었다. 시집 출판을 계기로 인천문협에 가입해서 인천문단과 연을 맺게 되었다. 이때 처음부터 반말을 하며 살갑게 다가온 시인이 이효윤 시인과 채성병 시인이다. 우리는 곧 의기투합하여 잦은 술자리를 가졌고 여러 차례 서로 집을 오가기도 하며 지냈다.

 
산 길 / 이 효 윤

이 산길에는 사람이 별로 다니지 않는다
풀잎에 가려 흙이 보이지 않을 정도다
나는 대부분의 날들을 혼자 걸었고
내가 보기에도 이 산길은 사람들의 시선을 끌 길이 아니다
이 산길에도 어김없이 가을이 왔다
소슬바람에 길은 더욱 쓸쓸해 보이고
노랗게 물들어가는 잎새들을 바라보며 우는
풀벌레 울음소리에 자꾸만 가던 길을 멈춘다
이런 산길에도 철따라 꽃이 피고 진다
지금 피어있는 저 꽃의 이름은 산국화라 부른다
이 산길에서는 꽃도 새도 하늘도 공통점이 있다
빛깔도 모양도 소리도 다 슬프다
나는 이 산길을 좋아할 수밖에 없었다
드문드문 나는 간 곳 없고 산길만 걸어간다.
어쩔 수 없이 이 길이 끝날 즈음이면 눈 내리고
나는 다시 오지 못할 것이다
나는 갔지만 산길은 옛 모습대로 남아
훗날 누군가는 이렇게 말해도 좋으리라
이 산길을 내가 걸어간 것이 아니라
어두운 시대가 걸어간 흔적일 뿐이라고

 
나도 술을 좋아했지만 이 시인, 채 시인은 과할 정도로 술을 마셨다. 그 부인들이 골머리를 앓는 모습을 여러 번 봤다. 가족들도 도저히 말릴 수가 없는 것 같았다. 이효윤의 부인은 아무 것도 먹지 않고 술로 산다며 하소연을 했다. 채성병의 부인도 근무 중인 내게 전화로 부탁을 하여 어렵게 짬을 내 술에 취한 채 시인을 서울 보훈 병원까지 데려다 준 일이 있다. 결국 두 시인 모두 술로 인해 병을 얻어 회복하지 못하고 떠났으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동년배의 작고 시인 중에 송서해 시인이 있다. 건강이 좋지 않아 늘 초췌해 보였다. 술은 한 잔도 못하면서 술자리엔 빠지지 않고 참석하여 끝까지 함께 하곤 했다. 몸은 여위고 약해 보였지만 그 표정만은 항상 밝고 낙천적이었다. 덕적도 출생으로 아버지가 인하대 교수를 역임한 걸로 알고 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덕적도의 교육열이 무척 높아 훌륭한 인물이 많이 배출되었다고 한다. 송서해 시인의 시는 위트와 재치가 넘치고 해학이 풍부하다. 현대 문명의 허점을 날카롭게 비판하는 목소리가 담겨 있어 읽으면서 마음이 뜨끔뜨끔하고 속 시원하게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되는 시편들이 많다.

 
만화가게 / 송서해
 
밤을 새워가며 만화를 보는 사람들
방안 벽에 즐비한 만화책 오천 권은 되리라
시를 사랑하고 밤을 새워 시집을 읽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면 시인들은 오죽이나 좋을까
그래서 만화가들은 바쁘고 돈도 잘 벌겠지만
그래서 만화가들이 부러웁다
밤을 새워가며 만화를 보는 사람들
새벽 두 시쯤이면 배가 고프니까 과자도 우두둑
씹어 먹더라 컵라면도 꿀꺽 삼키면서
눈은 여전히 책에서 떼지 않는다.

같은 또래인 이영유 시인 생각도 난다. 시인으로서도 탁월했지만 연극 연출에 뛰어난 능력을 보여 주었다. 시보다 연극에 더 매진한 듯도 하다. 인천문협에 열심히 참여하곤 했는데 회장선거에 한번 출마한 이후론 발길이 뜸했다. 이석인 시인 빈소에서 채성병 시인. 이영유 시인과 함께 밤새도록 술을 마시고 새벽녘에 목욕탕으로 몰려가 뜨끈뜨끈한 물에 몸을 담그며 술기운을 씻어내던 일이 생각난다. 한번은 종합문화회관 건너편 한 지하공간에서 열심히 연극을 지도하고 있던 이영유 시인을 찾아갔다. 연극 단원들과 진지하게 연습에 몰두하고 있던 이 시인에게 연습 끝나고 술이나 한 잔 하자고 했더니 연극 일정이 촉박하여 시간을 낼 수 없다는 대답이었다. 그때 마지막으로 이영유 시인을 보고 다시 못 보았다. 나중에 부음을 듣고 빈소에 갔는데 유명 연극배우, 탤런트들이 여러 명 조문하는 걸 보고 연극계에서 이영유의 위상을 새삼 확인하게 되었다.
 

혼자서 또는 둘이서 6 / 이영유
 
신포동 골목시장에 꽃이 핀다 바람꽃이 핀다 바다
에서 오는 것들 육지에 닿자마자 맥없이 쓰러지고
또 일어서고 신포동 시장 좌판에 나앉은 죽은 몸뚱
이들, 산몸뚱이 틈새를 비집고 다니고 바람맞고 신
포동 시장에 어둠이 깔리고 불 꺼진 돌체극장 앞길로
도망치듯이 숨는다 주인이 몇 번 바뀌고 또 손님도
그만큼 바뀌고 섬 넘어 저 깊은 바다에서 불어오는
대로 바람은 사납게 일으켜 세우고 또 일으켜 세웠
다 쓰러트리고

주위 많은 사람들이 세상을 하직하였다. 사람은 언젠가는 떠날 죽을 운명의(mortal) 소유자들이다. 정말 믿기지 않을 만큼 많은 주위 분들이 세상을 떠났다. 죽음을 회피할 수 없다면 현명하게 대비하는 지혜를 모색해야 한다. 나는 지난 봄 서울대 의대 정현채 박사의 죽음학 강의를 여덟 차례에 걸쳐 들었다. 많은 서적이나 영화에 나타난 죽음 이후의 모습, 각 종교의 죽음에 대한 이해와 극복 방안 등 광범위한 자료를 수집하여 죽음의 정의, 죽음에 대한 바람직한 대처, 사후의 세계 등 매우 감동적인 강의를 했다. 죽음을 불길한 것, 알 수 없는 것으로 두려움의 대상으로만 여길 것이 아니라 생명의 유한성을 깨달아 훌륭한 삶을 살고 훌륭한 죽음을 맞이할 준비를 미리 해야 한다.
 
우리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인천의 시인들, 한때는 세상이 내 세상인 양 호기롭게 어울리던 벗들이 지금은 세상을 하직하였다. 그들이 비록 문학사에 굵직한 족적을 남긴 것은 아니더라도 한때 어울려 지낸 사람들에게 그들의 존재는 소중하다. 조국의 안녕과 세상의 평화를 누구보다 염원하던 시인들, 몸은 저승에 있어도 이 세상에 대한 사랑을 여전히 놓지 못할 동지들, 그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지난날을 회상하고 있다. 그들의 시집을 앞에 놓고 한 편 한 편 읽고 있다. 언제라도 다시 만날 것만 같다. 그곳에서 잘 지내다가 가끔 놀러오면 좋겠다. 술 좋아하는 시인들과 허름한 대포집에 둘러 앉아 소주 한 잔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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