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랫마을 진주네, 가좌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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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랫마을 진주네, 가좌동
  • 유광식
  • 승인 2019.10.17 22: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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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가좌동 진주 일대 / 유광식
현재는 철거 진행 중인 가좌4동 라이프빌라(12동), 2017ⓒ유광식
 

서구 지역을 걷다 보면 사람들이 옹기종기 정말 많이 모여 산다는 인상을 받는다. 산 아래 다닥다닥, 어쩜 그리 많이 붙어살고 있을까 싶은데, 그래서 더 재미나고 정감이 흐르는 지역일지도 모른다. 서구의 볕 따뜻한 공간 중 하나가 가좌동이다. 집을 나서서 10여 분 남쪽으로 가면 나오는 가좌동. 머릿속에는 가좌동이 항상 석남중에서 가재울역까지라는 범위로 정의되어 있다. 

가좌동에서 큰 울타리를 지닌 진주아파트부터 유람을 시작한다. 가좌2동의 노른자 격인 진주아파트의 위용은 건물도 건물이지만 그 옆 가좌시장을 지나 보면 새삼 느낄 수 있다. 많은 사람이 오가니 생기는 사연도 가지각색일 테고, 무엇보다 학생들이 많은 것 같다. 그래서인지 산 아래 울적함보다는 학생들의 생기가 먼저다. 순간 아동친화도시라는 서구의 캐치프레이즈가 떠올랐다.  

 
가좌동 조은주택 계단에서 내려다본 무지개아파트, 2018ⓒ유광식

가좌동 어느 주택의 거주 총정리, 2019ⓒ유광식


마을을 돌아볼 때, 여러 가지 기준으로 유심히 관찰하는 것들이 있다. 길의 각도나 높낮이도 중요하지만, 건물이나 상가의 이름이 주는 하모니를 생각해 본다. 진주아파트 주변엔 작지만 중요한 보물이 있을 것만 같은 기대가 컸다. 그런 마음을 돌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가 솜씨 좋은 명장의 손길이 닿은 빵집을 알게 되어 기뻤다. 밤늦은 시간에 인기 있는 빵은 이미 사라졌어도 남아 있는 빵들과 인사하며 요즘 핫한 서로e음카드로 구매를 하고 돌아오면 다음 날 아침이 따뜻한 커피 한잔과 함께 즐겁기 마련이다. 

 
진주아파트 단지 내 맛있는 빵집, 2019ⓒ유광식

 
가좌동 밤거리는 서울의 달동네 풍경과 비슷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시내와는 조금 떨어진 모양새로, 저녁을 즐기고 잠시 술 한 잔할 곳을 찾는 부부의 시선이 닿는 곳들이 있어 보인다. 아이 학원 간 사이 잠깐 먹태와 맥주 한 잔 즐기고 들어가는 적당한 온도의 시끌벅적. 분명 학원비 이야기일 테고 좀 더 비싼 집 이야기는 사악하지만, 낮은 땅 아래 숨 쉬는 사람들의 속삭임이 그래도 많아 보인다는 생각이 가좌동에 머물러 있다. 

 
영업이 끝난 가좌시장 안쪽 거리, 2019ⓒ김주혜


가좌동에는 이제는 낮은 층수로 여겨지는 2층, 3층, 5층의 기다란 건물이 많다. 서로서로 비집고 자리를 차지한 건물들의 모양새가 마치 궁둥이를 내민 모습처럼 재미있다. 아파트 이름을 모아 보면 옛 시절의 시간이 오롯이 담겨 있어 상상이 부푼다. ‘진주’라는 이름이 주는 무게와 소중함이 마을의 분위기를 다소 지키고 있지만, 최근 재건축이니 재개발이니 하며 하나둘 그 부지를 내어주고 새파란 색깔을 뒤집어쓴 새 그림이 그려지는 상황을 가좌동도 피해갈 수 없을 것이다. 오히려 피하면 피할수록 피 보는 일만 생길 것 같다. 

주위에는 예전에 가좌주공아파트에 살았다고 하는 지인들이 심심찮게 많다. 그 기억을 듣다 보면 가좌동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당시의 가좌동 어린이는 이제 학교 선생님으로, 예술가로, 가게 사장으로 변신해 있는 것이다. 신진말 코스모화학 공장은 싹 다 밀린 후 새로운 환경의 건물들이 조각조각 속속 들어서고 있다. 300년 넘은 고택도 새롭게 단장하고 있어 기대가 크다. 그렇지만 오밀조밀한 가좌동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시간이 많이 남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서구의 남쪽 구석진 곳에 있어 조금 비켜나 있다고 생각되지만, 그놈의 자본은 생활 곳곳에 침투한다. 보이지 않게 적재적소에 공격을 퍼부을 수 있는 드론 공격과 같은 건 아닐까? 드론의 시각은 사실 좀 그렇다. 

 
가좌동 청송 심씨 300년 넘은 고택. 현재는 마을박물관으로 변모 중이다, 2018ⓒ유광식

현재는 ‘코스모40’으로 운영되고 있는 옛 코스모화학 공장 중 일부, 2018ⓒ유광식


동암에서 버스를 타고 집에 가는 길에 보니 어느새 가좌4동 라이프빌라, 한신아파트, 로얄타운 건물이 텅 비어있었다. 순간 내 맘도 텅 비어버렸다. 빨간 벽돌 마감이 인상적이었던 3층 높이의 라이프빌라 단지는 한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품었던 곳이었다. 그 옆 한신아파트나 로얄타운 또한 너른 부지에 옛 정취의 시간을 느끼기엔 안성맞춤이었다. 부지 넓이만큼 너른 구역의 그늘과 자연을 담당했던 나무들이 모조리 베어져 나간 자리가 싸했다. 며칠 후 찾은 한글날 휴일에 건설사 직원들이 바깥 울타리를 치고 있었다. 순식간에 기다란 벽을 만드는 그들의 솜씨도 놀라웠지만, 그렇게 버릴 풍경이라면 왜 지었을까 싶은 원망의 벽도 함께 세워지는 날이었다.
 

현재는 철거 진행 중인 가좌4동 한신아파트 놀이터(개구리 시소), 2019ⓒ유광식

현재는 철거 진행 중인 가좌4동 로얄타운과 잘려 나간 나무, 2019ⓒ유광식


어디나 변하기 마련이겠지만, 받아들일 시간이라는 ‘더딤’이 있었으면 좋겠다. 가좌동의 걸음은 아직도 신이 난다. 가좌여중은 왜 석남동에 있고 가정여중, 제물포중, 동인천여중은 왜 가좌동에 위치하는지 의문을 품어 볼 만도 하다. 오르락내리락 막막함으로 다가오는 게 아닌 재미난 미로를 걷는 기분이 들 무렵, 어느새 동네를 아련히 비추고 있는 보름달을 마주하게 된다. 우리가 과연 지켜야 할, 지켜나갈 ‘진주’는 무엇인지 헤아려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정서적 교차가 많이 일어나서일까? 이 마을에는 가좌 인문학 축제가 올해 10월로 벌써 2회째를 맞이하고 있다. 지금 인천에는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의 여파로 많은 축제가 취소된 것으로 안다. 가좌동은 문제없다. 가즈아~! 진주네 마을로! 

 
진주아파트 단지의 늦은 밤하늘, 2019ⓒ김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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