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가 아닌 박사학위 연구자들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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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가 아닌 박사학위 연구자들의 길
  • 윤현위
  • 승인 2019.10.21 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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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칼럼] 윤현위 / 자유기고가





- 학문후속세대를 위하여


학문후속세대라는 용어가 독자분들께는 어떤 느낌으로 다가올지 모르겠다. 말 그대로 학문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 중에서 비교적 젊은 연구자들을 의미한다. 범위를 넓게 하면 석사과정에 다니는 학생들까지 포함할 수 있고 좁은 의미로 하면 박사학위를 딴 5년 이내의 연구자로 볼 수 있다. 학부에서 석사과정에 진학하려는 학생들 중에서 대학원에 오면 직업선택의 폭을 넓힐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오기도 하는데 사실 도피성이거나 합법적으로 학생신분을 연장하려는 의도가 더 많았던 걸로 기억한다. 현실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경영학이나 경제학 분야까지는 모르겠지만 필자가 공부했던 분야에서는 아마도 그랬던 걸로 기억한다. 대학원 진학은 전문성을 갖추기 위한 과정이지 진로 자체가 넓어지지는 않는다. 교수가 되거나 국책연구기관 아니면 지방정부에서 설립한 연구소에서 일하는 정도로 분류할 수 있겠다. 물론 전공에 따라서 이 보다 더 다양한 일을 할 수도 반대로 아닐 수도 있다.

중요한건 그것이 교수든 연구원이든 4대 보험을 받으며 일할 수 있는 정규직자리가 그렇게 많지 않다는 거다. 정규직을 제외하면 4대 보험이 되는 비정규직과 4대 보험도 되지 않는 서류상으로 취업상태로 보기 어려운 상태가 존재한다. 4대 보험이 되지 않는 박사급 연구원들의 경우 인문사회계열의 경우 대학에 더 많이 존재한다. 인문학 전공자들은 연구소에서 수요가 매우 드물기 때문이다.

그럼 교수가 아닌 박사학위 소지자들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대학과 국가에서는 이들에 대해서 어떤 방안을 갖고 있을까? 앞선 칼럼에서 이야기했지만 시간강사법은 강사들을 도와줬다기 보다 오히려 강사들과 학생들에게 어려움을 가중시켰다. 강사법 자체가 악법이란 뜻이 아니라 대학이 이를 악용했다는 뜻이다. 돈을 핑계로 강의를 줄이면서 강의를 할 수 없는 강사들이 늘어났고 학생들은 교양과목의 수가 줄어들어서 강의선택의 폭이 줄어들고, 더 많은 인원이 수강하는 강의를 들어야하는 상황을 당장 이번 학기부터 맞이하고 있다.

재정이 부족하고 지난 몇 년간 등록금을 올리지 않았다고 많은 대학들이 항변한다. 그러나 솔직하지 못한 답변인 듯하다. 사립대학들도 그동안 국립대 수준의 지원금을 받아왔고 학부등록금은 올리지 않았지만 대학원등록금은 계속적으로 올려왔다. 다만 대학원에서는 이를 문제시하기 어려운 구조이기에 크게 기사화되지 않았을 뿐이다. 정말 돈이 없는 게 아니라 혹시 대학들은 그동안 다른데 더 신경을 쓰지 않았냐고 묻고 싶다. 그러니 대학의 본질적인 기능인 교육에 쓸 돈이 없는 건 아닌가 싶다.

대학에서의 강사는 의료보험을 보장받지 못하는 3대 보험수급자이다. 그나마도 1년에 8개월 동안만 3대 보험을 적용받는다. 따라서 국민연금도 1년에 8개월씩만 납부된다. 웬만하면 강의만으로 생계를 해결할 수 없다. 만약 그게 가능하다고 해도 그 삶은 아름다운 과정은 아마도 아닐게다.

과학기술부 산하에 한국연구재단이라는 곳이 있다. 대학과 연구자들의 연구를 국가차원에서 지원해주는 기관이다. 이 기관은 개인 연구자는 지원해 주지 않는다. 어떠한 형식이든 대학이나 기관에 소속되어 있어야하고 그렇지 않으면 그냥 박사학위를 소지한 시민으로 간주하고 지원하지 않는다. 사실 법 자체가 그렇게 만들어져 있다. 이 재단에서는 1년에 수많은 연구과제를 공모한다. 연구자들은 제안서를 써서 채택 되면 연구사업이라는 이름으로 과제를 수행하고 인건비를 받게 된다. 구체적인 과정은 대학에 있는 산학협력단에서 수행한다.

문제는 이러한 연구사업을 수주한다고 하더라도 연구자들이 4대 보험을 적용받기는 대단히 어렵다는 점이다. 장기과제를 수행하는 대학 내 연구소에 소속되거나 이러한 과제를 수주한 연구소에서 낸 채용공고를 통해서 임용되지 않으면 실질적으로 인문사회계열에서 4대 보험을 받으면서 연구를 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흔히들 포닥(post doc.)이라고 불리는 박사후 연수과정은 박사를 받은지 5년 이내의 연구자들만 지원할 수 있고 이 기회도 최대 2년간 2회뿐이다.

장기 연구과제를 수주한 대학연구소들의 상당수는 박사급 연구원을 채용하기 위해서 공고를 내는데 공고상의 연봉을 보면 3000만원인 연구소가 대부분이다. 아마도 설마 그렇게 적을까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을 거다. 물론 일부 연구소에서는 연봉을 4000만원으로 책정하는 연구소가 있기는 하다. 그러나 대부분은 3000만원이다. 처음 연구사업을 설계할 당시 박사급 연구원의 인건비를 3000만원 이상이라고 책정했는데 이 규정 때문에 다들 3000만원만 주고 있다. 3000만원이 적다고만 할 수 없는 것이 공고를 내면 정말 많은 박사들이 지원한다. 그리고 50대 이상의 교수들은 ‘우리 때는’으로 시작하는 과거의 인건비에서 대해서 이야기한다. 3000만원이라는 인건비는 4대 보험이 포함된 금약이다. 이게 15년이 되어간다.

이러한 조건에서 좋은 연구와 강의가 나오기를 기대한다면 무리다. 나올 수 없다. 필자는 무조건 박사들에게 안락한 삶을 살기위한 현실적인 인건비를 달라고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기본적인 삶에 대한 이야기다. 기본적인 삶을 유지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주어야 연구자들은 자신의 전공을 심화시킬 수 있고 이를 바탕으로 심도 있는 논문을 만들 수 있고 대학이라는 이름에 맞는 강의를 이끌어 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정규직 트랙에 든 사람과 들지 못하는 사람들 간에 격차가 점점 더 커지고 이 둘의 포지션이 한번 정해지면 격차를 좁히기가 사실상 힘들다는 건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그래서 사회구조를 바꾸려는 시도보다는 차라리 자식들을 좋은 대학에 보내고 아버지나 집안이 가지고 있는 네트워크를 활용해서 자식들을 정규직군에 보내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지 않은가. 사회를 구성하는 모든 분야들은 각기 소중하고 역할이 있다. 학계도 그 역할이 분명히 있다. 이 상황에서는 공부를 더 하고 싶다는 어린 학생들에게 그렇게 하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없다. 이 문제는 대학만의 문제도 아니고 대학만이 스스로 해결할 수도 없다.

이제 학령인구수가 본격적으로 줄어든다. 대학들은 지금보다 연구중심대학으로 전환하게 될 확률이 높다. 연구자들의 문제가 본격적으로 수면위로 들어날 때다. 문제가 더 커지기전에 안전장치와 그를 위한 방안들을 마련해야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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