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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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 것인가”
  • 한인경
  • 승인 2019.10.22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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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살다, Living』



<한인경의 씨네공간>은 2016년부터 ‘그해 주목받은’ 또는 ‘다시 주목하는’ 영화들을 선정하여 평론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2019년 3월부터는 미추홀구의 예술영화관 '영화공간주안'과 한인경 작가와의 협약 하에 <인천in>에 게재합니다. '영화공간주안'이 상영하는 예술영화의 의미를 되새겨 볼 수 있는 기회를 나눕니다.



 출처 : 영화 『살다』

 
“메멘토 모리 Memento Mori”
 
『살다, Living』
 
“어떻게 살 것인가 ”

개봉(제작) : 2004. 04. 16(1952)(142분/일본)
감 독 : 구로사와 아키라
출 연 : 시무라 타카시, 오다기리 미키, 타나카 하루오
장 르 : 드라마
등 급 : 15세 이상 관람가
 


영화 『살다』 포스터
 
 
1.
 
영화는 다양한 삶의 모습을 담고 있다. 그 안에서 들리는 삶의 이야기는 자신의 그것과 자연스럽게 오버랩되면서 재미, 반성, 감동, 배경 지식 이해, 철학적 사유 등을 이룬다. 특히 그 영화가 시간이나 의식의 흐름, 삶과 죽음 등 본질을 다루는 영화일 경우 영화가 담고 있는 감독의 메시지는 내적 충만이라는 보너스가 되기도 한다. 물론 탄탄한 서사구조와 빙의에 가까운 출연진들의 열연은 기본이지 싶다. 오늘은 오래전 제작된 영화이지만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내용은 세월 감에 따라 더욱 곰삭아가는 영화 한 편을 선정했다. 마치 LP판을 듣고 있는 듯한 흑백필름의 영화 『살다』를 함께 하고자 한다.
 
2.
 
영화 속 주인공 와타나베 씨는 시청, 시민과에서 근무하는데 그를 포함한 직원들의 근무 모습은 복지부동의 전형을 보인다. 그러던 중 과장 와타나베 씨가 위암 말기로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진단을 받으면서 갈등 구조가 벌어진다. 몇 달이라는 시한부 삶 앞에서, 홀로 외아들만 바라보며 살아왔지만, 아들의 외면, 돈만 벌었지 돈을 어찌 쓰는지조차 모르는 자신을 돌아보며 화도 나면서 절망에 빠진다.
 
영화를 만든 故 구로사와 감독은 고전 문학을 영화 속에 녹여 내어 연출하는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이번 영화에서도 괴테의 『파우스트』와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 두 작품의 그림자가 뚜렷이 보인다.
 
청천벽력 같은 진단을 받고 병원을 나선 와타나베 씨는 사무실도 집도 아닌 선술집에 앉아 있다.
 손님으로 앉아 있던 소설가에게 돈 쓰는 법을 알려 달라며 자신의 돈으로 술을 마셔 본 적이 없다고 한다. 소설가는 지나간 시간을 찾아 주겠다며 인생을 즐기는 것은 인간의 의무라고 말하면서 와타나베 씨를 술, 여인, 춤, 음악이 있는 곳으로 데려가서 하룻밤을 즐기게 해준다. 자칭 대가를 바라지 않는 착한 메피스토라는 소설가의 안내, 와타나베 씨는 환락가에서 실망하고 만다. 다음으로 그는 항상 에너지 넘치는 여직원 오다기리와 여러 차례 만나면서 어떻게 그리 생기 넘치고 즐거운지 이유를 알고 싶어 한다.



 출처 : 영화 『살다』
 
 
죽음을 앞두고 남을 위한 일을 해야겠다는 깨달음을 얻게 되면서 생의 최후 업무로 주민을 위한 놀이터를 완성하고 그는 눈 내리는 밤 놀이터에서 그네를 타며 인생을 짧다며 사랑을 하자라는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마지막 순간을 받아들인다.

위암이라는 불행은 그에게 인생에 눈을 뜨게 해줬고, 인생의 노예였던 그가 인생의 주인이 되도록 방향을 정해주었다. 허락된 짧은 시간, 자신의 지나간 시간을 돌아보며 인생의 의미를 알고 죽음을 받아들이는 모습에서 ‘이반 일리치’가 겹쳐진다.
 
파우스트 박사가 근심의 영에 의해 눈이 안 보이게 되었지만, 마음의 눈은 더 밝아졌고 메피스토와 약속한 말을 하며 스스로 죽음을 택한다. “멈추어라 순간이여, 정말 아름답구나.”
 
이반 일리치는 3일간의 극심한 고통 속에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되며 정리하게 된다. 위선적이었던 자신의 언행과 가족에게 친절하지 못했음에 용서를 빌면서 비로소 고통에서 벗어나게 되었고, ‘죽음은 끝났어, 이젠 죽음은 없다.’며, 그는 마지막 숨을 들이쉬었다.
 
와타나베 씨는 병풍처럼 쌓인 서류 더미 속에서 근무한다. 직원들이 내미는 서류에 도장을 찍곤 하며 근무 시간을 보낸 사람이다. 아들만을 바라보며 살았지만, 아들, 며느리는 아버지의 퇴직금에 더 관심이 많다. 설 곳을 잃었고 방황했지만, 인생 처음으로 남을 위한 일을 실천했다.

이반 일리치가 용서를 구하면서 더 이상의 죽음은 없다며 고통에서 벗어 낫듯이, 악마 메피스토에게 영혼을 담보로 젊음과 힘을 누렸던 파우스트가 말년에는 개간사업 등 인류애를 펼쳤듯이 와타나베 씨에게로 확장해 본다. 감독은 와타나베 씨에게 주변을 돌아보는 시각을 갖게 했다. 그가 정리한 마지막 시간, 그것은 짧은 시간이었지만 미소 속에서 마지막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출처 : 영화『살다』
 
 
영화에서 그리고 있는 죽음의 모습은 다양하다.
 
잠깐 <한인경의 씨네공간>을 되돌아보니 어느새 3년이란 시간과 함께 했다. 그간 이 공간을 통해 알아본 영화들 중에서 죽음을 어떤 모습으로 그리고 있는지 잠시 되돌아본다. 아래 영화들 중 미처 못 본 영화가 있다면 꼭 감상하시길 권해드리고 싶다.
 
『밀리언 달러 베이비(20180115 게재)』, 주인공 메기(힐러리 스웽크)가 입지전적으로 권투로 성공을 했지만,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아버지 같은 정을 주는 보스도 생긴 그녀였지만 경추 부상으로 그 보스에게 자신을 죽여달라 간청한다. 그리곤 ‘모쿠슈라’라는 아일랜드말의 뜻을 알면서 평화로운 죽음을 맞이한다. 『스틸 라이프(20190625 게재)』는 ‘누구도 혼자 두지 않겠다.’라는 타이틀로 풀어간 영화였다. 흔히 말하는 ‘고독사’를 조명한 영화로, 영화 전 편, 구석구석 ‘고독’이 ‘뚝뚝’ 떨어지는 영화였다. 마지막 존 메이의 무덤 주변으로 그가 생전에 거두었던 영혼들이 한두 사람씩 계속 모여드는 장면으로 그나마 위로가 되어준 영화였다.
인도 영화 『청원(20180620 게재)』에서는 세계적인 천재 마술사 이튼, 독특한 영상미와 사지 마비 환자의 ‘안락사’ 청원이라는 소재를 다루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 죽음을 앞두고 지인들과 벌이는 파티 장면도 기억에 남는다. 임권택 감독의 『축제(20171023 게재)』는 죽음과 윤회라는 철학적 사유를 동화적 비유로 전하고자 한 영화였다. 남도의 특성에 맞춰 상장례 절차를 자막까지 넣어가면서 자세히 보여 주었다.
 
각기 다른 죽음의 모습과 함께 그들이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내용이다. 여기에는 뼈를 때리는 아픔과 심장을 두드리는 감동의 서사구조, 인생 스토리가 있다. 모두 주인공들은 죽거나 죽음을 앞두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더 강력하게 삶에 대한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즉, 더 나은 삶을 위해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영화다.
 
 
3.
 

출처 : 영화『살다』
 

故 구상 시인은 ‘죽음! 너와 나는 한 탯줄에서 한날한시에 태어난 쌍둥이’라고 노래하였다. ‘그림자’를 생각하면 같은 연장선에 ‘빛’이 있음을 이미 알며, ‘시작’이라는 단어 역시 ‘끝’이라는 맞은편을 함께 생각하게 한다. 동전의 ‘앞면’이라고 말할 때 역시 ‘뒷면’과 함께하는 앞면을, ‘손등’ 하면 ‘손바닥’과 함께 한다는 것을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지만 알고 있다. 선과 악 역시 마찬가지. 2분법으로 구분되는 의미의 단어가 아니다.
 
각당복지재단의 김옥라 박사는 ‘묵은 나뭇가지에서 번데기에서 나비가 되어 나간 흔적’을 보면 인간의 죽음이 애벌레가 자기 몸을 죽이면서 고치를 만들고 나중에 다시 태어나는 것과 비슷한 것으로 생각했다. 즉, 죽음을 사라짐, 없어짐이 아니라 옮겨가는 것이라는 엄청난 발견이다.
 
영화 시작하자마자 내레이션이 나오는데 와타나베 씨가 위암 선고 전의 삶보다 그 후의 짧게 지낸 시간에서 인생의 의미를 찾는다는 내용이다. 우리는 모두 잘살기를 바라고 잘살고 있다고 믿고 싶다. 예기치 않게 불행이 닥치면 ‘왜 나인가?’ 하며 부정하는 감정 소용돌이를 겪게 된다. 영화 속 소설가는 불행은 인간에게 진실을 알려 준다며 위암이 와타나베 씨에게 인생의 눈을 뜨게 했다고 말한다.
 
조금 달리 표현해 본다. 죽음 없는 삶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미래의 일을 누가 알겠는가만 확실한 한 가지는 모든 생명은 시기는 모르지만, 미래 어느 시점에 죽는다는 것이다. ‘메멘토 모리 Memento Mori’, 즉, 죽음을 기억하는 생활을 통해서 지금의 유한한 삶이 더 소중하게 생각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 영화는 거의 영혼 없이 복무했던 한 공무원이 회복 불능의 질병에 걸리면서, 자신의 그간의 삶을 후회, 혼란을 겪는 내용이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그러면서 단 몇 달이었지만 의욕적으로 이타적인 과업을 달성하고 죽어간 주인공을 보면서 영화 <살다>의 의미를 되새겨 보게 한다.
 
가을, 수확하고 나누는 좋은 계절이다. 지난 3년간의 <한인경의 씨네공간>을 잠시 되돌아보았고, 더 좋은 삶을 위한 선택으로 ‘메멘토 모리’를 되새겨 본다.
한인경 / 시인 · 인천in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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