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의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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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의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다'
  • 이병기
  • 승인 2010.01.27 00: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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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in이 만난 사람] 김종현 장수동 새동네프로젝트 단장

김종현 장수동 새동네프로젝트 단장

한때 '개지옥'이라고 불리며 많은 사람들의 질타를 받던 남동구 장수동이 주민들의 힘으로 새롭게 거듭났다. 담장의 벽화와 길가의 꽃들은 지나가던 사람들의 발걸음을 멈춰 세운다. 귀엽고 앙증맞은 문패에 시선이 이르면 절로 미소가 번진다. 마을을 변화시킨 '장수동 새동네 프로젝트' 중심에 김종현(43)씨가 있다.   

현재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을 비롯해 수도권 내 학교에서 예술강사를 맡고 있는 김씨는 서울예전에서 연출을 전공했다. 이후 일본에 건너가 공부를 마치고 1999년 귀국했다. 당시는 주로 서울과 경기도에서 활동했기 때문에 그에게 '집'은 잠만 자는 장소에 불과했다.

그러나 2006년 초 그가 살던 장수동이 '개지옥 사건'이란 이름으로 인터넷을 달구면서 김씨는 동네에 관심을 갖게 됐다. 이 사건은 개 사육장 주인과 남동구가 사육장 시설 이전을 두고 갈등을 빚으면서 시작됐다. 100여 마리의 개들이 오물투성이의 사육장 안에서 참혹하게 살아가는 모습이 퍼지면서 장수동의 이미지는 급속히 나빠졌다. 

이런 과정 속에서 그는 동네 이미지를 바꾸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기 시작했다.

"얼마 전까지는 공공미술 프로젝트가 유행이었어요. 국가가 예산을 지원하고 지역이 정해지면 전문 예술가들이 찾아가 벽화 등 문화활동을 벌이는 거죠. 하지만 예술가들이 떠나면 원위치로 되돌아가기 때문에 반쪽 성공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예술가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 시작하면 자생력이 있을 것 같았죠."

장수동은 인천대공원과 인접해 공원을 찾는 사람들이 종종 자동차를 주차하곤 한다. 여기서 김씨는 동네를 다시 살릴 아이디어를 찾았다.   

처음에 부정적으로만 생각했던 시민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목수가 되고 화가가 됐다.

"공식적으로는 2008년도에 장수동 새동네 프로젝트가 시작됐어요. 골목에 꽃을 심거나 문화센터에서 그림을 배우는 주부의 도움으로 담장에 그림을 그렸죠. 지나가던 사람들이 흥미를 보이고 블로거들과 인터넷 뉴스에 소개되면서 입소문이 퍼졌죠. 1년을 마무리하면서 축제도 열었구요."

축제는 주민들의 경제적 이득으로 돌아왔다. 큰 돈을 번 것은 아니지만, 먹을거리와 벼룩시장으로 가능성을 본 주민 몇몇은 카페와 국수집을 차리기도 했다. 축제가 공영방송에 소개되면서 장수동 새동네 프로젝트는 전환기를 맞게 됐다. 주변에서는 동네를 구경오고 싶다는 전화가 폭주했고, 찾아오는 시민들도 늘어났다.

새동네 프로젝트는 작년 정부의 희망근로 프로젝트와 결합되면서 절정을 맞았다. 김종현씨는 동사무소 직원의 권유로 기획서를 제출, 6~11월까지 희망근로 프로젝트에 참여한 35명의 주민들과 함께 새동네 프로젝트의 본격적인 가동에 들어갔다. 희망근로가 길가의 쓰레기를 줍는 일 등이 대부분이지만, 장수동에서 진행되는 희망근로는 진정한 '희망'을 만들게 됐다.

희망근로 참가자들은 오래된 담장을 허물고 새로 짓거나, 꽃 심기, 우물 만들기, 문패와 이정표 달기 등 김씨를 중심으로 조금씩 마을을 변화시켰다. 처음에는 '난 못해요'라는 말이 먼저 나왔던 참가자들은 목수가 되고 화가가 됐다. 사람의 손길이 필요했던 동네 곳곳은 희망근로의 도움으로 새 옷을 갈아입었다.

지난 10월 열린 제3회 장수동 새동네 가을축제

처음에는 '될까?'란 의문을 가졌던 희망근로 참가자들이 점점 일에 익숙해지고 보람을 느끼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태도는 중반이후 변하기 시작했고, 끝날 무렵엔 웬만한 일은 스스로 찾아했다.

김종현씨는 새동네와 희망근로 프로젝트 6개월을 마무리하는 차원에서 연극을 준비했다. 인천청소년수련관(관장 최제형) 연극반 청소년들과 함께 공연한 마지막 연극제는 모두의 노력이 모여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 난생 처음으로 무대에 올라간 희망근로 참가자들은 잊지 못할 추억을 남겼다.

그러나 장수동 새동네 프로젝트가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마을을 아름답게 만들고자 했던 일들이 주민들의 경제적 이득으로 이어지면서 일부 주민들은 형평성을 강조했다. 다른 집이 달라진 만큼 자신의 집도 변화하길 원했다. 그러나 인력과 예산이 한정돼 있기에 사람들이 자주 다니는 큰 골목부터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다. 급기야는 주민 간 불신의 벽이 높아져 서로를 비난하기도 했다. 

"새동네 프로젝트의 진정한 목적은 우리 집만 아름답게 만들자는 것이 아니었어요. 살기 좋은 동네를 만들기 위한 거죠. 희망근로 예산이 많지 않아 사람들이 많이 보는 길부터 신경을 썼는데, 어떤 분들은 '내가 낸 세금으로 하는 건데 왜 똑같이 하지 않냐'고 항의했죠. 심지어는 내가 뒷돈을 받는다는 말까지 나왔으니까요. 중간에 포기할까도 생각했죠."

또한 전원주택가인 장수동에 빌라를 짓기 위해 눈독을 들이는 건설업주들도 시련으로 다가왔다. 새동네 프로젝트 초창기에 참여했던 한 주민도 집값을 후하게 쳐준다는 건설업자의 제안에 미련없이 마을을 떠나다. 남아 있는 주민들은 그나마도 많지 않은 전원주택들이 팔리고 고층의 다세대 주택이 들어서면, 동네가 삭막해지지 않을지 걱정한다.

"작년에는 장수동 새동네 프로젝트가 큰 변화를 겪었어요. 올해부터는 단장이랍시고 주도적으로 끌고가는 대신, 자생력을 찾을 수 있게 업무를 나눠 줄 생각이에요. 또 덩치는 키웠으니 내실을 다져야 할 때라고 생각해요. 주민들과 불화 없이 행복하게 지내면서 '장수동 새동네 프로젝트'가 잘 되길 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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