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들의 급식을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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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들의 급식을 생각하며
  • 고재봉
  • 승인 2019.11.20 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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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칼럼] 고재봉 / 자유기고가



몇 해 전 칼럼 한 편으로 인해 속상해하는 후배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이는 중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었는데, 학교 급식을 비판하는 글이 도리어 교사들을 힐난하는 댓글로 넘쳐나 자괴감을 느낀다고 토로하였다. 그래서 그 글을 찾아 읽어보니 가관이었다. 학교 선생님들이 학생들과 다른 음식을 먹는 것에 대해 다소 침소봉대하여 쓴 글 같았다.
 
내용인즉, 몇몇 학교에서는 여전히 교사들에게 더 좋은 음식을 제공하고 학생들은 그에 한참 못 미치는 급식을 먹는다는 글이었다. 교육관계에서 학교를 감사하는 분이 쓴 칼럼이니 이런 식의 비판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글을 읽어보면 처음에는 모범적인 급식 사례를 소개하며 이런 급식이라면 다시 학생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다소 감상 어린(?) 내용이 나왔다. 하지만 바로 뒤이어 나온 내용은 학생들 몰래 선생님들이 ‘소갈비찜’ 따위의 특식을 제공받는 ‘나쁜’ 학교의 이야기였다. 내게는 다 큰 어른이 좋은 급식 때문에 다시 학교를 다니고 싶다는 저 앞 절의 이야기는 뒤에 올 반전 드라마를 꾸미기 위한 장식품처럼 보였다.
 
물론 칼럼의 내용이야 사실을 기반으로 쓴 것이겠지만 그 순서와 꾸밈새가 얄궂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 밑에 댓글을 보니 역시 급식 제도의 문제점에 대한 이야기는 별로 없었다. 대신에 온통 교사 집단을 싸잡아 비난하는 민망하기 짝이 없는 글들로 가득 차 있었다. 공정을 표방한 글이지만 나는 그 자극적인 글의 모양새와 애꿎게 뭇매를 맞는 선생님들을 생각하면 그 글이 과연 도덕적인지 아직도 의심이 간다.
 
하지만 그 칼럼의 더 큰 문제점은 바로 “교사와 학생이 똑같은 급식을 제공받으면 해결된다”는 어처구니없는 결론에 있다고 본다. 기실 인천의 경우 실제로 거의 모든 학교가 이 칼럼의 주장처럼 교사와 학생이 같은 급식을 먹고 있다. 다만 다른 점이라면 학생은 국가가 제공하는 무상급식이고 교사들의 경우는 당연히 사비를 지출하여 먹는 유상급식이라는 점뿐이다.
 
문제는 “모두가 똑같은 것을 먹어야 한다”는 그릇되고 속된 평등의식의 지향에 있다고 본다. 학교 여건을 따져서 조정해야 할 일이지만, 교사와 학생이 같은 음식을 먹는다는 것 자체가 근본적으로 불합리하고 평등의 가치와도 무관하다. 왜냐하면 교사와 학생은 기본적으로 동일선상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신체적 조건에서 심하게 차이가 난다.
 
학생들이야 한창 뼈가 자라고 근육이 만들어질 때이기 때문에 급식에서 흔히 나오는 밀가루 음식이나 튀김류를 섭취해도 큰 문제가 없다. 몸에서 나오는 성장호르몬 덕분에 그야말로 쇠도 씹어먹을 만큼 혈기왕성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이가 서른, 마흔을 넘어서는 교사들은 사정이 다르다. 배가 나오기 시작하고 해가 갈수록 고혈압이나 당뇨와 같은 대사증후군을 걱정해야 하는 것은 비단 교사만의 고민이 아니라 많은 대한민국 성인들의 공통된 문제이다.
 
하지만 급식이라는 제도 자체가 학생들을 위한 것이니, 메뉴 선정 역시 학생들의 입맛을 따를 수밖에 없다. 유난히 교사라는 직업에 ‘스승’이라는 전근대적이고 지극히 이상적인 도덕적 잣대를 들이미는 대한민국에서 교사를 학생보다 우선하거나 혹은 최소한의 배려를 하는 식단을 구성한다는 것은 상식 밖의 일이다. 그러므로 교사들이 학생들과 같은 식사를 하는 것은 현실적인 차원에서 비난을 피하기 위한 “울며 겨자 먹기”인 셈이다. 혹은 건강을 포기하는 대신 대한민국 사회가 바라는 저 높은 ‘스승’의 길을 택한 것이니 말 그대로 살신성인(殺身成仁)이라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기껏 먹는 이야기로 유난을 떤다고 할 수도 있지만, 교단과 책상의 높이를 일률로 맞추려고 하는 일그러진 평등의식은 문제라고 본다. 모두가 똑같은 것을 먹어야 평등하다고 생각한다면 이야말로 비인간적이고 무서운 사회가 아닐까? 마치 사회주의 국가에서 시도하였다가 끔찍한 결과로 이어진 ‘기계식 평등’이 저런 발상과 무엇이 다를지 곰곰 생각해보아야 할 일이다.
 
나는 학교 다니던 시절 도시락 반찬을 두고 잘사는 집 아이들과 형편이 넉넉지 못한 아이들이 편이 갈려 먹던 풍경을 기억한다. 이에 비하면 무상급식이라는 제도는 정말 선한 제도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며칠 전 건강을 염려하여, 혹은 좋게 말해 몸매를 관리하느라 급식 먹기가 부담스럽다는 교사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몇 해 전 앞에서 언급한 저 칼럼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시절이 좋아져서 이제는 휴대폰에 프로그램만 깔면 웬만한 학교들의 급식 메뉴들을 확인할 수 있다. 그래서 졸업한 모교의 급식을 확인해 보니, 역시 돈가스나 피자 따위의 메뉴가 즐비했다. 학생들이야 3년이 지나면 졸업하는 학교지만, 저 급식을 드시며 이제는 백발이 성성해지셨을 은사님들을 생각하니 개운치 못한 마음이 들었다.
 
수업의 질이 교사의 질을 초과할 수 없다는 것은 상식 중에 하나이다. 그러니 교사들의 건강을 배려해달라는 호소보다, 양질의 수업을 위해 저 높은 도덕의 잣대를 그만 거둬달라고 하는 것이 더 현실적일까? 일선에 계시는 선생님들께 짧은 생각의 이 글이 행여 누가 되지는 않을지 걱정을 하며 글을 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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