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물포고 이전하면 "뿌리를 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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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물포고 이전하면 "뿌리를 잃는다"
  • 이병기
  • 승인 2011.01.13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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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 이슈] 송도 이전계획은 '지역 불균형 심화' … 시민사회 반발


제물포고등학교 정문

취재: 이병기 기자

요즘 인천 지역사회에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른 것 중 하나가 '제물포고등학교 이전 문제'다. 옮길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하지만 많은 시민들은 제물포고마저 이전하면, '지역 공동화'를 부채질하는 건 물론 '지역 균형개발'에도 크게 어긋난다며 야단이다. 그 속내를 들여다 봤다.

    
60여년 동안 한 자리에서 인천의 인재를 배출했던 제물포고가 인천시교육청의 송도 이전계획으로 '뿌리'를 잃어버릴 위기에 처했다.

시 교육청은 지난달 '제물포고 이전·재배치 기본계획'을 발표하고 오는 2014년까지 인천경제자유구역 송도3지구로 이전을 완료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시 교육청은 "개발사업에 따른 인구이동으로 기존 도시지역 공동화 현상이 발생하고 유휴교실이 증가하고 있다"면서 "기존 도시지역에는 고교생이 지속적으로 줄어드는 반면, 신개발지에는 고등학교 신설 수요가 늘고 있다"고 추진 배경을 설명했다.

그러나 상당수 시민들은 구도심에 학생 수가 줄어든다면 인구유입 정책으로 학생을 늘릴 계획을 세워야지, 지역의 명문학교를 옮긴다는 건 구도심 개발을 포기하는 일이라며 비난하고 있다. 또 제물포고가 지닌 상징적 의미 역시 이전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전통을 무너뜨리는 '구도심 재개발' 포기

안병배 시의원은 "시민들의 지지를 받아 당선된 단체장들이 구도심 활성화 방안은 내놓지 않고, 오히려 구도심의 상징적인 명문고를 옮기려 하고 있다"면서 "제물포고를 그대로 두고 특성화 방안을 세우거나 지원할 생각은 하지 않고 지역 균형발전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고 있다"라고 꼬집었다.

그는 "구도심에서 추진중인 재개발·재건축 사업이나 내항 재개발 등으로 시간이 지나면 학생들이 늘어나게 될 것"이라며 "거의 2천억원이 드는 인천경제자유구역청 청사 건립비의 1/10만 들여도 학교를 지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안 의원은 또 야구부와 농구부 등 체육시설이 필요한 제물포고가 송도로 이전할 경우 일반 학교의 2배에 달하는 터가 필요하기 때문에 지구단위계획 변경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중·동구 학생 수 감소의 경우에도 이전만을 목표로 예측을 잘못하고 있다고 한다. 안 의원은 "동구의 경우 재개발로 아파트가 건설되면서 젊은층 유입이 예상되고, 중구에도 주거환경사업이 끝나는 2020년이면 학생 수 증가로 다시 학교를 만들어야 할 상황"이라고 말했다.

기초자치단체들도 학교 이전에 강한 반발을 보이고 있다.

중구와 동구, 남구 의회 의장단은 지난달 23일 기자회견을 열고 "제물포고가 송도로 옮겨가면 학교를 따라 주민들도 빠져나가게 될 것"이라며 "이는 구도심 지역 침체를 더 부추기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하승보 중구의회 의장은 "제물포고는 지역에서 유일한 공립 고등학교이며, 인천의 뿌리인 중구에서 상징적 의미를 지닌 곳이다"면서 "그동안 많은 기관들이 중구를 떠났고, 그나마 남아서 자존심을 세우던 공립학교마저 떠난다면 지역에서 살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없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2003년부터 제물포고 이전 얘기가 나왔는데, 동기를 보면 순수하다고 볼 수 없다"면서 "추진 주체인 제물포고 동문 전·현직 국회의원들이 '슬럼화한 곳에 제물포고를 놔두면 안 되고, 학교를 발전시키려면 부유한 가정의 자제들을 모아 명성을 찾아야 한다'는 불순한 생각을 갖고 있다"라고 했다.

고교평준화 이전 선발고사를 통해 학생을 뽑았던 명문고로 돌아가기 위해서 소위 '부자동네'로 옮겨 인재를 모아야 한다는 말이다. 하승보 의장은 "중구나 남구 등 구도심에 살면서 이전을 논의하면 말도 하지 않겠다"면서 "송도국제도시에 학교가 필요하다면 제물포고를 빼가지 말고 도시에 맞는 국제학교를 만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인구가 줄어든다고 말만 하지 말고 구도심을 살리기 위한 정책을 만들어야지, 학교를 옮기겠다는 발상은 구도심 개발을 포기하는 일"이라며 "100여년의 역사를 지닌 학교의 전통을 무너뜨려도 되냐"라고 덧붙였다.

학생 수 감소로 이전이 불가피하냐?


시 교육청이 송도에 고등학교를 신설하지 않고 제물포고를 이전하려는 이유는 정부 방침 때문이다. 정부는 특정지역에 학교 신설이 필요하더도, 동일 학교군에 여유교실이 있을 경우 학교 신설예산을 지원하지 않는다. 따라서 시 교육청은 기존 제물포고 부지를 매각해 부족한 재원을 마련하겠다는 의도로 해석할 수 있다.

현재 1학군에는 남구와 중구, 동구, 남동구, 연수구가 속해 있다. 그런데 시 교육청이 제시한 '고등학교(일반계) 지역별 수용능력' 자료에 따르면 남구에는 2010년 1만108명에서 2015년 6923명으로, 중구에는 4073명에서 3118명으로 학생이 줄어들어 각각 2곳과 1곳의 학교를 감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연수구의 경우 2010년 1만1313명에서 2015년 1만1118명으로, 기존 30명이 넘었던 학생 평균 수를 30명 이하로 했을 때 3개 학교가 추가로 필요하다는 게 시 교육청의 설명이다.

이용학 인천시교육청 학교설립기획단 수용계획1팀장은 "일부에서 고등학교 이전이 지역발전 저하로 이어질 것으로 우려하는데, 대학교라면 동의하지만 고등학교에는 여파가 미미하다"면서 "학교가 나가고 어떤 기관이 들어오는가가 문제고, 오히려 지역상권도 활성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팀장은 학교의 상징성과 관련해선 "예전에 인천여고나 인천고, 대건고 등은 이미 구도심 지역에서 이전한 바 있다"면서 "다 같은 내용으로 봐야지 제물포고만 '상징성'을 말한다"라고 했다.

인천시 전체 학생들의 교육여건을 위한 정책을 펼쳐야지 지역만 운운하는 건 맞지 않다는 얘기다.

그는 "신도시에 인구가 유입돼 학생 수가 늘어나면 학교를 만들어야 하는데, 소요 예산이 250억원~300억원 필요하다"면서 "전에는 학생 수가 늘어나는 지역마다 교과부에서 지원했지만, 현재는 같은 학군 내에 교실이 남는 학교가 있으면 재배치하도록 돼 있다"라고 말했다. 학교 신설에 어려움이 따른다는 것이다.

이 팀장은 또 제물포고를 다니는 학생 중 중구에 사는 이들은 30%도 안 되고, 남동구나 서구, 연수구 등에서 한 시간 이상 걸려 다니는 학생들이 대부분이라고 했다. 올해 제고를 1지망으로 선택한 학생 수도 130명이나 미달돼 후순위에서 겨우 채워진 만큼 여건이 좋지 않다고 그는 지적했다.

이 팀장은 "내항 개발은 인구 증가요인으로 볼 수 없고, 언제 될지도 모르는 일"이라며 "도시개발사업의 경우도 시간이 오래 걸린다"라고 말했다.

제물포고 동문회도 학교 이전에 찬성하고 있다.

윤대희 인중제고 총동창회 회장은 "한때 거론됐던 기숙형 공립고 유치도 특정지역 특정학교를 위해 예외를 둘 수 없다는 정부 방침이 확인된 이상 더 이상 미련을 가질 수 없다"면서 "동문과 많은 사람들이 활력을 잃어가는 제물포고를 안타깝게만 바라볼 수밖에 없는 현실이었다"라고 말했다.

윤 회장은 "인천시가 추진하는 구도심 활성화 사업의 마스터 플랜은 제물포고가 이전하는 2015년 이후에나 마련되는 장기사업이다"면서 "그동안 학교이전을 보류하면 향후 4~5년 안에 확실하게 인구가 증가하는 송도신도시 등의 학교 수요증가 문제를 방치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동문에서 연간 모교에 지원하는 돈이 적지 않기 때문에 학교 교사들도 동문 입김에 자유로울 수 없다. 또 교사들의 영향으로 학생들 역시 이전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원우 제물포고등학교 교감은 "학교 이전은 2014년에나 가능하기 때문에 현재 다니는 학생이나 학부모들에겐 해당사항이 없어 별로 관심이 없다"면서 "기존 학생들 중에서도 설문조사 결과 반대가 있었을 것 같지만, 실제 결과는 찬성이 많았다"라고 답했다.

이 교감은 "학교가 더 좋아진다면 자기 아들이 사회생활을 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 학부모들도 찬성하는 이들이 많았다"면서 "동문회도 과거 반반이었던 것과는 달리 지금은 이전하자는 의견이 늘어났다"라고 말했다.

그는 "내가 부임한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얼마간 보니 동문회에서 지원을 많이 해주고 있다"면서 "워낙 교통편도 좋지 않고 구석진 곳에 있다 보니 학교 활성화를 위한 다양한 의견들이 제시되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조인상(2학년) 학생은 "선생님들이 학교가 여기 계속 있으면 학생이 줄어 없어질 수 있다고 했다"면서 "무조건 찬성은 아니고 자신의 판단대로 찬반 설문조사를 작성하라고 했지만, 내 생각에도 이사가는 게 낫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시 교육청은 1월 중 행정예고를 발표하고 상반기 안에 공청회나 설명회를 열어 의견을 수렴한다는 방침이다. 오는 7월에는 세부추진계획을 수립하고 9월 이전재배치 예산 편성, 12월 시의회 예산 의결을 거쳐 내년 7월에는 설계에 들어갈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인천교육의 산실' 제물포고


성덕당

제물포고등학교의 전신은 1935년 인천거주 일본인 자제들을 위한 교육기관으로 설립된 인천부립중학교(인천중학교 전신)다. 이후 1945년 근대교육의 선구자였던 길영희 선생이 인천중학교 초대 교장에 부임하면서 제물포고의 기틀을 닦았다.

1954년 '정신과 학식은 사회의 등불, 양심은 민족의 소금'이라는 교육이념을 바탕으로 제물포고가 설립됐다. 당시 길영희 선생은 '양심의 1점은 부정의 100점보다 아름답다'는 교육철학으로 우리나라 초유의 무감독 시험제도를 시행했으며, 오늘날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제물포고 운동장이 위치한 곳은 인천 최초이자 최대 '스타디움'으로 사랑을 받았던 '웃터골'이다. 일제 강점기 때 인천관측소 밑에 자리잡았던 웃터골 분지는 외국 문물이 도입되면서 1930년대까지 야구와 축구 등 운동경기와 대규모 집회가 열렸던 곳이다.

당시 이곳에서 열렸던 많은 경기 중 사람들의 인기를 끌었던 것은 기차통학생 친목회를 중심의 한인들로 구성된 '한용단'과 일본인 쌀거래소 직원들로 만들어진 미두취인소 소속 '미신'팀과의 야구경기다.

사람들은 한용단의 경기 소식을 들으면 만사를 제쳐놓고 웃터골로 모여 열띤 응원을 펼쳤다고 한다. 1924년 한용단과 미신과의 시합 중 심판의 편파판정으로 한용단이 우승을 놓치자 흥분한 관중들이 본부석으로 몰려가 충돌했고, 당분간 야구경기가 금지되기도 했다. 후에 학생운동의 불씨로 작용하기도 했던 웃터골 운동장은 인천인들의 민족정기를 북돋았던 장소이기도 하다.

일제강점기인 1935년 인천중학교였을 당시 세워진 성덕당(成德堂)은 학교 강당의 기능뿐만 아니라 인천 지역사회의 대형 집회 공간으로 이용된 역사적 건물이다. 2008년 '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 제427호'로 지정된 이곳은 1954년 제물포고가 설립된 이후 강당으로 쓰였고, 학생들이 애국지사의 강의를 들으며 꿈을 키웠던 곳으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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