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삶을 나누는 공동체여서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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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삶을 나누는 공동체여서 기쁘다"
  • 이혜정
  • 승인 2011.01.12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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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in이 만난 사람] '내일을 여는 집' 이준모 목사


'내일을 여는 집'의 이준모 목사.

취재 : 이혜정 기자

인천 계양구 계산동에 있는 '해인교회'는 추운 겨울이면 더 힘들어지는 소외계층을 위해 쉴 틈 없이 일을 한다. 그 중심에는 이준모(46) 목사가 있다. 노숙인을 비롯해 홀몸노인, 여성, 청소년 등 취약계층 가족이 되기 위해 팔을 걷어붙이고 있는 것이다.

지난 1998년 'IMF 환란'으로 많은 실직자가 길거리에 내몰렸다. 이때 이 목사가 운영하는 해인교회 인근 계양산과 공원에는 상당수의 실직자가 모여 있었다. 심지어 해인교회에 다니는 30여명의 교인 중 절반 이상이 실직해 거리에 나앉게 된 상황이었다. 보다 못한 그는 '실직자를 위한 교회'를 세우겠다며 일단 '노숙인 무료급식소'를 운영했다.

"1998년 당시 많은 실직자가 계양산과 싸이클 경기장 등에서 노숙을 하고 있었어요. 심지어는 교인 중 상당수가 실직을 당해서 교회에서 함께 지냈어요. 처음에는 노숙인들이 오지 않아 전단지를 뿌리며 온 동네를 다녔지요. 그랬더니 나중에는 10여명에서 120명까지 늘었어요." 

노숙인들의 방문이 잦아지면서 교회 겸 무료급식소로 사용한 50평 남짓 공간이 부족할 정도였다. 무료급식소를 지속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그는 부모님, 친인척, 친구 등 할 것 없이 돈을 빌렸다고 한다.

그러나 3개월 만에 모든 재정과 물품에 동이 났다. 이 목사는 어릴 적 어머니가 동태 대가리를 얻어다 죽을 만들어준 기억이 떠올라 자장면집, 빵가게, 떡가게, 야채가게 등 인근 상점을 돌아다니며 후원을 부탁했다.

해인교회 무료급식소 소문이 나면서 노숙인들이 몰리고, 물품후원이 조금씩 늘어나기 시작했다. 1998년에는 노숙인을 위한 쉼터 '내일을 여는 집'이 문을 열었다. 10여 년 동안 이곳을 거쳐 간 노숙인만 해도 수천 명. 이를 시작으로 홀몸노인, 소년소녀가장, 재가 장애인 등 어려운 이웃들에게 먹을거리를 제공하려고 계양구 푸드마켓과 푸드뱅크도 열었다.

이 목사는 노숙인들뿐만 아니라 그들의 가족까지도 함께 품었다. 어느 날 동구청 관계자가 IMF로 인해 길거리에 내몰리게 된 6식구를 데리고 내일을 여는 집으로 찾아왔다. 이곳에서 생활하는 노숙인들은 모두 남자들뿐. 그래서 이 목사는 1999년 여성 노숙자를 위한 쉼터를 마련했다.

"노숙자 쉼터를 운영한 지 반년도 채 되지 않았을 때 한 가족이 쉼터에 오게 됐어요. 아이들과 엄마를 다른 노숙자들과 함께 지내게 할 수 없어서 여성 노숙자를 위한 쉼터를 따로 만들게 됐지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아이들을 위한 공간인 무료탁아소와 공부방도 만들게 됐어요."

IMF 이후 대량 실직사태가 발생하면서 가정파탄으로 남성 노숙인과 함께 여성 노숙인들도 증가했다. 주로 여성 노숙인들은 가정폭력에 시달리다 내몰려 성폭행을 당하고 임신을 하거나 정신질환을 앓기 일쑤였다고 한다. 이들을 보호하다가 같은 해 가정폭력상담소를 운영했다.

'내일을 여는 집'은 단순히 무료급식과 쉼터만 제공하는 곳이 아니다. 노숙인들이 다시 경제활동을 할 수 있도록 일자리를 제공한다. 여기선 노숙인 자활을 위해 사회적기업인 계양구 재활센터와 도농직거래상생사업단을 운영한다. 특히 계양구 재활센터는 기탁하는 재활용품에 대해 노숙인 스스로 무상수거와 수리, 판매를 통해 자활의 교두보 구실을 하고 있다.

'내일을 여는 집'은 남성과 여성 노숙인 쉼터를 시작으로 지역아동센터, 가정폭력상담소, 계양구 재활용센터, 도농직거래상생사업단, 푸드뱅크 및 푸드마켓, 무료급식소 등을 운영하며 사회취약계층의 사람들이 다시 사회로 나갈 수 있도록 통합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이 목사는 지난 2001년 '인천쪽방촌상담소'를 열었다. 여기서는 복지와 행정 등에서 사각지대에 놓인 저소득층 사람들이 생활고를 견디다 못해 노숙인으로 전략하는 걸 막으려고 상담, 취업알선, 생활편의 서비스 등을 제공한다.

어떻게 이렇게 많은 일을 할 수 있는지 궁금했다.

"저는 많은 일을 하고 있는 게 아니에요. 단지 실천하는 신앙을 행하고 있을 뿐입니다. 만약 21세기에 예수님이 계셨더라면 저와 같은 일을 하셨을 거예요. 단지 저는 주님의 길을 따라갈 뿐입니다. 제가 해야 할 일이예요. 교회를 통해서 모든 사람들이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에 작게 시작한 것들이 10여년이라는 시간이 지나서 다양한 사람들에게 여러가지 서비스를 제공하게 된 거지요."

목사가 세 명이 있는 집안에서 자란 그는 집안 분위기 영향을 받아 중학교 2학년 때 신학대에 진학하길 간절히 바랐다. 그러나 장손인 그에게 부모님은 목사를 하기보다는 다른 길을 걸으라고 권유했다. 서강대 독문과에 들어가 부전공으로 종교학과를 택한 그는 그러나 '목사의 꿈'을 접기 힘들었다. 그래서 다시 한신대 신학대학원에 진학했다. 대학원 시절 안산노동교회에서 목회실습을 하던 중 그들의 고충을 알았고, 사회구조적으로 힘든 이들을 위한 교회를 만들겠다고 다짐을 했다고 한다.

이준모 목사는 1994년 해인교회로 왔다. 1986년 인천지역 노동자들이 세운 해인교회는 교회를 중심으로 노동운동을 하던 이들이 산업현장으로 돌아가면서 텅 비어 있었다. 그가 처음 왔을 때 전기와 수돗물 등은 모두 끊어져 있었고, 여름이었지만 겨울에 쓰던 난로가 그대로 굴러다녔다.

이 목사는 그런 교회를 깨끗이 청소하고, '내일'을 설계했다. 이곳을 민중을 위한 '삶을 나누는 공동체'로 만들어 보자는 그의 꿈은 어느새 현실로 바뀌었다.

"내일을 여는 집은 상담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겐 상담, 음식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먹을거리, 잠자리를 필요로 하는 사람에겐 잠자리를, 직업을 원하는 사람에게 일자리를 줄 수 있는 곳이죠. 이곳을 찾는 모든 이들을 섬깁니다. 이들과 함께 예수님의 길을  걸을 수 있어서 제가 오히려 행복합니다."

이준모 목사는 '내일을 여는 집'을 찾는 이들이 예수님을 만나 새로운 내일의 희망을 느끼고 체험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했다.


계양구 계산동 해인교회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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